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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가리고 아웃

업무의 압박이 심하다. 나는 일 잘 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해야 할 일을 곧잘 미루고, 발등에 불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급히 불을 끄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너무 잦은 불은 피곤하므로, 수업 준비는 늦지 않게 하는 편이나, 담임에서 업무교사로의 전환은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나는 일을 겁냈던 게 아닌가 싶다. 요즘에는 겁이 나면 고개를 땅에 쳐박는 타조가 이해가 된다. 당장 코 앞만 보고 일을 하니, 먼 계획은 세울 수가 없다. 한 해의 계획을 세워야지 생각하니 이미 늦었다. 그저 지난해 예상해 둔 계획을 수행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오늘 밤에야 들었다. 오미크론이 창궐하는 월요일 아침답게, 선생님 몇 분은 학교에 올 수 없었고, 부랴부랴 우리 일과 선생님은 수업 바꾸고 대강 ..

나와 약속을 잡습니다

다 좋지만, 오랜만에 방바닥에 얇은 이불 하나를 깔고 자니 잠자리가 불편하다. 게다가 갑자기 비염은 왜 도진 건지 밤에 누웠는데 콧물이 난다. 상당한 시간 동안 괜찮았는데, 봄이 오면 봄이 오는 대로 불편함이 생긴다. 어린 시절에는 생각하지 못한 불편함이 마음을 자꾸 건드린다. 그래도 아침에 빗소리를 들으며 대청마루에 나가 앉았다. 반바지를 입은 채, 겨울 재킷을 대충 두르고, 준비해간 드립백으로 커피를 내렸다. 대청마루에 앉아서 비가 오는 것을 본다.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간다. 새벽부터 내린 비 덕분에 농월정 오토캠핑장 케빈 앞은 물이 제법 차 올랐다. 산불이 심한 지역에도 분명 도움이 되겠구나, 밭에서 산에서 농작물을 키우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겠구나. 어릴 때 비는 그저 우산 쓰고 걸어야 하는 불..

집 떠나면 여행

오랜만에 농월정. 좋은 날씨라 캠퍼가 많다. 텐트치지 않아도 되니, 좋다. 도착하자마자 식었더라도 맥주 한 캔을 뜯는다. 아이들과 물가에서 좀 논다. 오늘 낮기온은 20도까지 올랐는데, 바람이 불어 여기는 시원하기만 하다. 돌알 줒고 던지고, 나무를 줍고 던지고. 집 나오니 여행이다. 거리유지, 넘치는 확진자 덕분에 마음은 어느때보다 움츠려 있었다. 밖으로 나와 가슴은 편다. ‘타이탄의 도구들’을 해먹에 누워서 한번 더 읽었다.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만큼은 “나도 더 생산적인 인간이 될 수 있겠다.” 착각하게 된다. 그래도 이 책 덕분에 헤르만 헤세늬 ‘싯다르타’를 읽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 고기 굽는 냄새에 늘 이 동네 고양이들이 몰려들었다. 이번에는 아들이 간식을 준비했다. 해가 지기 전에는..

여행/국내 2022.03.12

피베리 브라더스 에스프레소

선물받은 쿠폰이 있어서, 지난 수요일 원두를 사러 피베리 브라더스에 갔다. 피베리 브라더스 라는 이름 이전에도 커피숍 자리였던 것 같은데, 그때는 이름이 무엇이었을까? 찾아보니 내가 2019년 3월에 갔던 사진이 있다. 그때는 육아휴직을 하고 있던 중이라, 아이들 유치원,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는 수영장을 다녀 오면서 저 커피숍에 들렀던 것 같다. 그때보다 지금 그 커피숍이 여러모로 발전(?) 한 것 같다. 원두 두 개를 골랐다. 사진으로는 포장이 커보이지만 딱 100그램 포장되어 있다. 가격은 9,000원, 8,000원 정도였던 것 같다. 100그램을 담아놓고 거의 만원에 파니까 되려 비싸게 느껴졌다. 아직 뜯어서 마셔보지 못했다. 학교에서 도저히 느긋하게 커피를 마실 여유가 없다. 에어로 프레스나 드..

내가 안보면 이길 것 같아서

어제 투표가 마감 되었을 때 쯤에 개표생방송을 틀어 뒀지만, 어떤 예측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안보면 국가대표팀이 축구경기에서 이기고는 하는 징크스를 갖고 있지 않나. 내가 그냥 일찍 잠에 들면 여러모로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히 새벽에 잠을 설치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우선 뉴스를 확인했다. 나는 이미 이명박을,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가졌던 적이 있다. 그 시간은 길기만 했던 것 같은데, 그들 덕분에 바빠졌었던 것일까. 시간은 제법 빠르게 흘러갔다. 대통령의 의미는 중요하지만, 나랏일이란 대통령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 후보와 당은 이기기 위해 공략을 내뒀고, 이제 사람들은 그 공약의 이행을 지켜볼 것이다. 소수점 이하의 차이로 당선이 결정되다니...

티타가 끓여내는 스튜 같은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씀, 권미선 옮김. 민음사(2004) 사람의 몸에는 불의 씨앗이 있다. 한 번에 너무 활활 타버리면 주변의 모든 걸 태울 수 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마치 요리책 같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은 모두 여성이다. 음식을 만드는 절차에 대한 묘사는 대단할 것이 없지만, 사건과 사건 사이, 쉼과 쉼 사이에 끼어드는 조리의 현장은 이 작품 전체에 풍미를 더한다. 이 책을 고를 때, 책 제목이 익숙해서 들었다. 그리고 처음 몇 페이지를 읽는데, 빠져 들 수밖에 없어서 골라서 집으로 왔다. 일터에서는 쉬는 시간 따위는 없기 때문에, 잠들기 전 집에서만 읽을 수 있었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는 티타를 둘러싼 사건에 마음을 졸이고, 그녀가 내놓는 음식을 상상했다. 좋은..

대통령은 브루스 놀란이 아니다

오늘 아침은 투표로 시작했다. 아들은 자꾸, 나와 아내에게 누구를 찍었냐 물었다. 아내는 비밀투표라며 말해주지 않다고 결국 아들 귀에 대고 작게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끝끝내 말하지 않았다. 초등학생도 관심많은 이번 대선. 역대 가장 비호감 대선이라는 데, 나도 동의할 수 밖에 없다. 개표방송의 시민 인터뷰를 보니, 모두들 살기 좋은 세상을 말한다. 그게 모두 살기 좋은인지, 나만 살기 좋은 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우리가 뽑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욕망이 반영된 것 아니겠나. 어느 지역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었다 이런 것은 소용이 없고, 맞는 말도 아니다. 국민은 개별 시민의 총합은 아니지만, 개별 시민의 의사가 반영된 하나의 덩어리이기는 하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대통령이라도, 우..

모이고 싶어 모인 수행평가 사례 나눔

학교에서 일을 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다. 나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은 질색이다. 그러니 재미있는 일을 하거나, 해야 하는 일을 재미있게 만들어야 한다. 수업 준비를 할 때에도 도구를 바꾸어 가며 하는 게 바로 그런 이유다. 도구가 낯설어지면, 과제는 재미있어 진다. 작년 같은 학년을 하면서 한 달에 한번 정도 모여서 수업 이야기를 하던 선생님들과 지난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자고 이야기했다. 수업도 수업이지만, 수행평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 선생님들도 좋다고 해서, 일을 조금 크게 벌였다.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를 더 많은 분들도 와서 들을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교내 메신저로 선생님들에게 알렸다. "수행평가 사례 나눔을 하고자 합니다. 오시고 싶은 분 신청해주세..

진주문고가 다가온다

주말엔 서점에 가기 좋다. 진주에 이사 와서는 아주 자주 평거동까지 가서 진주문고에서 시간을 보냈다. 딸은 아내와 그림책을 사고, 스티커를 하나 골랐고, 아들은 자기 책을 얼른 골라 빨리 계산해 달라고 보챘다. 아내가 아이들을 맡아주는 사이 나는 잠시 3층으로 올라가서 책을 구경하며 주섬주섬 책을 고르며 시간을 보냈다. 진주문고 혁신점이 생기고 나서는, 자전거로 가기 딱 좋은 거리라 토요일이 되면 딸을 끌고, 아들은 앞에 두고 자전거를 타고 진주문고 혁신점으로 갔다. 자전거에서 내려 일단 같은 건물에 있는 팔공티에 들어가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가 진주문고로 들어가서 딸은 머리핀을 고르고 아들은 또 자기 책을 두세 권씩 골라와서 계산해 달라고 보챘다. 그리고 이제 초전동에도 진주문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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