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씀, 권미선 옮김. 민음사(2004)
사람의 몸에는 불의 씨앗이 있다. 한 번에 너무 활활 타버리면 주변의 모든 걸 태울 수 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마치 요리책 같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은 모두 여성이다. 음식을 만드는 절차에 대한 묘사는 대단할 것이 없지만, 사건과 사건 사이, 쉼과 쉼 사이에 끼어드는 조리의 현장은 이 작품 전체에 풍미를 더한다. 이 책을 고를 때, 책 제목이 익숙해서 들었다. 그리고 처음 몇 페이지를 읽는데, 빠져 들 수밖에 없어서 골라서 집으로 왔다. 일터에서는 쉬는 시간 따위는 없기 때문에, 잠들기 전 집에서만 읽을 수 있었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는 티타를 둘러싼 사건에 마음을 졸이고, 그녀가 내놓는 음식을 상상했다. 좋은 작품을 읽고 나면, 달리기를 하고 마친 것처럼 큰 숨을 내쉬게 된다. 그리고 다시 맑은 숨을 들이마시며 내가 지금 무얼 끝낸건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이 가깝게 느껴진 건, 얼마 전 보았던 영화 Julie & Julia의 영향일 수도 있다. 존경하는 미국인 프랑스 음식가의 요리책에 담긴 레시피를 하나씩 따라가며, 블로그를 쓰는 Julia의 이야기 속에서도 음식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식은 요리를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꾸 도전할 것을 권한다. 살아 있는 식재료를 만지고 다듬고, 건물을 쌓아 올리듯 음식을 쌓고 묶어야 한다. 음식은 늘 실패할 수 있으나, 완성된 음식은 재료의 합을 늘 뛰어넘는 풍미를 가진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여럿 등장하는 멕시코 여성들의 이름을 보면서, 나는 똘똘하게도 가계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일종의 액자소설 방식으로 화자 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다. 엄마로부터 전해 들은 티타 할머니의 삶이 가장 중요한 이야깃거리다.
이야기 속에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생긴다. 여러 가지 의문스러운 죽음이 그렇고, 사랑을 나누던 사람이 불에 휩싸여 사라지는 것이 그렇고, 죽었던 마마 엘레나가 나타나 불꽃이 되어 누군가를 불태우기도 하는 일이 그렇다. 하지만, 전해진 이야기는 각색될 수 있고, 그 각색은 진실의 중요한 요소를 반영한다.
1월부터 12월까지 하나씩 요리를 소개하고, 소설 속에는 참으로 많은 결혼식이 나온다. 애초에 결혼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엄마를 돌봐야 하는 막내딸 티타의 삶을 엿듣기 시작하면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다행히 그녀는 용감하게 살아남고, 아름답게 사그라 진다.
누구에게 이 책을 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책은 격정적이고 뜨겁고 격렬하다. 슬프고 잔잔하고 위안이 되면서도 아린다. 그런 감정들은 레시피에 섞여 맛으로 다가온다. 한두 페이지를 읽을 때마다, 숨을 들이쉬며 소설의 맛을 음미하게 된다.
이 책 덕분에 앞으로는 세계문학전집 코너에 더 머무를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면, 더 오래 더 많이 사랑받았던 것에 관심을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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