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17

아들의 사춘기가 움트다

아들은 벌써 중학교 입학을 준비한다. 한창 갖고 싶은 게 혹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아들에게 계속 돈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엄마가 지칠 때까지 뭔가를 계속 이야기 하는 바람에 이제 아들 물품 쇼핑은 내 몫이 되었다. 롯데몰 나이키 매장으로 갔다. 군인 가방처럼 생긴 가방인데, 나도 마음에 들고 아들도 마음에 들어했다. 가격은 119,000원. 흠. FILA에서 본 책가방은 15만원이니 이 정도면 저렴하다고 해야 하나. 다른 곳에서도 보고 같이 본 가방이 모두 마음에 든다고 했다. 결정은 하지 못했으니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시원시원하게 돈을 쓰지는 못하는 나라서, 가방이 비싼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도 결국 아들이 원하는 걸 사주기로 했다. 아들은 산타에게 학원 가방을 선물 받고 싶단다. ..

왜 아빠는 미안하단 걸까

아빠는 미안하단다. 원해서 다친 것도 아니고 원해서 수술을 또 해야 하는 게 아니고, 와중에 아빠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미안하단다. 나에게 잘못한 게 없고, 아빠는 내게 빚진 것도 없는 데 미안하단다. 아빠는 어떠해야 내게 미안하지 않을까. 아빠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벌써 2년째 바뀌지 않고 있다. 아래에는 '역시 자연이 좋아.'라고 적혀 있지만, 아빠는 2년간 산에 가 본 적이 없다. 두 발로 힘차게 걷지 못하고 있다. 1톤짜리 무게에 깔려 그 형태를 잃었던 우리 아빠의 발은 그래도 수술 덕분에 발등까지는 모양을 제법 갖추었다. 하지만 지난번에는 발가락뼈를 덮고 있는 살이 부족해서 피부가 자꾸 탈이 났고, 그래서 또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좀 잘라냈다. 마치 손발톱을 자르듯 이렇게 수술을 해도 되는..

아빠의 퇴원과 한상 차림

엄마는 아주 한 상을 차렸다. 봄동, 파래무침, 콩잎,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 아빠가 좋아하는 고기. 병원에서 흰쌀밥만 먹었다며 아빠는 잡곡밥이다. 11월 26일에 사고를 당하고 입원했다가 거의 세 달을 병원에서 보내고 아빠가 오늘 퇴원했다. 다행히 별다른 일정이 없어서 퇴원 시간에 맞춰 가서 퇴원 수속도 도와주고 내 차에 태워서 부산 집으로 갈 수가 있었다. 엄마가 차려주는 맛있는 밥도 먹고. 세 달을 지내면서 아빠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발가락을 잃은 게 제일 크지만, 거기에는 더 천천히 적응을 해야 한다. 양말을 신고도 작은 아빠의 오른발에 나도 모르게 눈이 간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던 것은 아닌데, 아빠의 작아진 발을 보게 되었다. 그래도 발이 남아 있어서 어딘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발목까지 잘..

아빠는 싱겁다

이제는 정말 일찍 잠을 자야 하나 보다. 어제 12시를 넘긴 나는 오늘 아침 아침밥 먹으라는 소리에 깼고, 아침밥을 먹고 다시 잠들었다가 점심밥 먹으라는 소리에 다시 일어났다. 아내는 3시부터 시작되는 재난안전교육을 신청해뒀고, 우리는 이른 점심을 먹고 합천으로 출발한다. 요즘 차 안은 제법 평화롭다. 늘 다투던 아들과 딸은 이제 제법 대화하며 놀기 때문에 아내와 나도 대화가 가능하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기능이 있는 아내의 차를 타면 운전도 더 수월하고, 급히 가려는 마음도 없어진다. 음악을 틀고 간식도 조금씩 먹으며 드라이브를 즐긴다. 조금 기다려서 교육이 시작된다. 집에서 지진 발생 시 행동요령에 대해 듣고 아파트 주방처럼 꾸며진 세트장으로 들어가서 지진이 발생하면 식탁 밑으로 몸을 숨기고, 지..

몸쓰기의 기술 전수 : 간지럼 참기

딸은 눈을 위로 뜨더니 쌍꺼풀을 만들어 엄마를 웃긴다. 나도 질세라 옆으로 가서 눈을 위로 희번덕 뜨고 쌍꺼풀을 만들어 본다. 딸의 쌍꺼풀은 상큼하고 나의 그것은 기름지다. 이제 딸은 콧방울 양 옆으로 주름을 잡는다. 이건 당최 나도 따라 할 수 없다. 나는 혀를 말아서 딸에게 보여주며 따라 해 보라고 한다. 이번에는 혀를 옆으로 세워서 보여주며 딸을 이겨먹으려고 한다. 우리는 자기의 몸과 놀고, 몸에 익숙해진다. 하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더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보라, 내일 내가 아플지 아닐지 알 수가 없고, 코로나 주사를 맞고 얼마나 아플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간 자신의 몸과 친숙해 진다. 어릴 때에는 추운 건과 서늘한 것과 시원한 것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감기에 자주 걸..

처음 그린 아빠는 누워 있다

어제 낮에는 주사를 맞기 위해 바늘을 간호사가 바늘을 연결해뒀는데, 자꾸 바늘이 막혔다. 그래서 왼팔과 오른팔을 번갈아 가며 바늘을 찔렀다. 그렇게 네 번은 새로 바늘을 찔렀다. 급기야 오른팔은 좀 부어올랐다. 아빠는 조금 남은 무통 주사를 떼어내어 버렸다. 무통주사는 언제든 다시 꽂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제저녁 통증이 심해졌으나 무통주사를 맞을 수가 없었다. 아빠는 진통제 주사 세 대를 맞으며 밤을 보냈다.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있었을 리가.. 너무 잘 참는 아빠라서 마음이 아프다. 짜증내고 약한 모습 봐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지 싶은데, 힘든 내색 안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또 마음이 아프다. 아빠는 서울에 있는 동생가족이나 인천에 있는 누나 가족이랑, 혹은 진주에 있는 우리 아이들이랑 영상 통..

엄마, 내가 돌봐줄게.

"아들, 아들 때문에 엄마가 더 힘낼게" 엄마는 내가 안아주자 그렇게 말했다. 나는 엄마에게 힘내라고 말하며 엄마 등을 토닥였다. 힘껏 안아주고 힘내라고 했다. 서울에 계신 외할머니가 최근 급속도로 몸이 안 좋아지셨다. 폐에서부터 암이 시작된 것 같은데, 한 달 전에는 나이가 많으신 분이라 암도 진행이 빠르지 않다고 했었다. 하지만, 엊그제부터는 의식을 잃고 호흡도 힘들어하신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는 어제인 금요일에 별 일이 없었다면 비행기를 타고 할머니를 보러 갈 계획이었다. 이야기 나누지 못해도 옆을 지키고 싶어서. 하지만, 큰일이 생겼고 엄마는 서울로 가지 못했다.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복잡할까. 곧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연락을 몇 번 받았지만, 그때마다 간이 졸아드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나는 아빠..

아빠에게 아빠가 되어줄게.

1교시. 엄마의 전화를 받고, 최근 들어 건강이 급속도로 안 좋아지셨다는 외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 데자뷰를 경험하는 것처럼, 아침에 울리는 발신자 ‘엄마’의 전화는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아빠 사고 났데.’ 그 순간,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을 모두 머릿속에 꺼내보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어떻게 처리 할 지 생각하고, 지금 부산까지 가거나 아빠가 이동하고 있다는 진해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릴지를 생각했다. 늦잠을 잔 덕분에 오늘 아침 출근은 차로 했고, 기름이 없으니 가득 채우고 출발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일하는 곳은 진해에서 가깝고, 아빠를 실은 구급차는 일단 진해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엄마는 회사에서 나왔으나 차도 없이 진해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걸릴테..

10월의 다이소는 핼로윈을 준비하는 데..

10월의 다이소는 핼러윈을 준비하는데. 10월은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신혜철의 목소리로 듣는 “When October Goes” 가 떠오르는 달. 10월이 지나고 나서야 애타게 찾게 되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그리고 오늘은 갑자기 핼러윈데이. 전혀 연관성 없는 것들을 묶어서 이건 10월입네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다. 사람은 무엇이든 카테고리에 집어넣으려고 하고, 그렇게 집어넣고 나면 모쪼록 안심하는 기분이 된다. 복잡한 개인 대신에 국적이나 언어로 스테레오 타이핑하는 건 인간의 그런 속성 때문일까. 그러면서도 차별하지 않아야 하니 인간의 발달한 뇌는 살아가며 고려해야 할 게 정말 많고 복잡하겠다. 오늘 교무실에서 젊은 선생님들과 핼러윈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젊은 선생님들은 핼러윈 파..

너를 사랑하려고 아빠는 태어났어.

딸은 아직도 독재자다. 내가 등을 보이면 늘 엎히고, 나를 이리오라 저리가라 한다. 먹다가 남는 건 나에게 버리고, 내가 먹는 맛있는 건 뺏아먹는다. 안으려고 하면 등을 돌리다가도 '싫어'하는 데도 날 와서 안는다. 사진을 찍으려면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나를 찍으면서 웃는다. 아침에는 '아빠 간다' 해도 쳐다보지도 않다가, 잠자러 갈 시간이 되면 나에게 쪼르르 와서는 '나, 좀 옮겨줘~.' 라며 나무처럼 곧게 서 있는다. 내일이 딸의 일곱살 생일이라 오늘은 편지를 썼다. 길게 쓸 수도 있지만, 너무 길면 읽기 힘들어할까봐 '잘 커줘서 고맙다는 말' 조금, '사랑한다는 말' 많이 넣어 간단히 썼다. 내일은 아무 약속도 없고, 딸이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게 내가 되도록 옆을 지키고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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