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왜 아빠는 미안하단 걸까

타츠루 2023. 11. 30. 20:09

우리 아빠

아빠는 미안하단다. 원해서 다친 것도 아니고 원해서 수술을 또 해야 하는 게 아니고, 와중에 아빠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미안하단다. 나에게 잘못한 게 없고, 아빠는 내게 빚진 것도 없는 데 미안하단다. 아빠는 어떠해야 내게 미안하지 않을까.

아빠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벌써 2년째 바뀌지 않고 있다. 아래에는 '역시 자연이 좋아.'라고 적혀 있지만, 아빠는 2년간 산에 가 본 적이 없다. 두 발로 힘차게 걷지 못하고 있다. 1톤짜리 무게에 깔려 그 형태를 잃었던 우리 아빠의 발은 그래도 수술 덕분에 발등까지는 모양을 제법 갖추었다. 하지만 지난번에는 발가락뼈를 덮고 있는 살이 부족해서 피부가 자꾸 탈이 났고, 그래서 또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좀 잘라냈다. 마치 손발톱을 자르듯 이렇게 수술을 해도 되는가. 아빠는 별 수 없이 수술을 결심하고 이겨냈다. 엄지발가락 수술은 잘 끝났나 싶었더니 이제는 세 번째, 네 번째 발가락 쪽에서 피부가 자꾸 터진다. 아빠에겐 이제 새끼발가락은 없다. 의사는 수술을 권했다. 나도 가서 의사를 만나봤고 그날은 아무런 결정은 하지 않고 돌아왔다.

오늘 엄마는 아빠가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고 문자가 왔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잘 결정했어.' 라고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말을 생각나지 않아 그 말을 했다. '아빠, 그날 오후에는 수업이 없으니 아빠 병원에 내가 데리고 가고 싶어.' 라니 아빠는 '신경 쓰지 마라.' 란다. 신경 안 쓰면 속상할 사람이 아빠면서 신경을 쓰지 말란다. 그리고 '미안하다.'라는 데, 아빠는 이해 못 하는 말을 한다. 뭐가 미안한지 곰곰이 생각해 봐도 답을 찾을 수가 없다.

혹시라도 아들을 걱정하고 염려하고 마음 쓰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걸까. 그렇다면 미안할 일이 없는 일이다. 아들은 아빠를 그간 훨씬 여러번 걱정시키고 염려하게 만들고 마음 쓰게 만들었다. 사랑을 아래로만 흐른다는데, 사랑에도 중력이 있나 보다. 그저 당연한 듯 여기며 아빠나 엄마를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나를 나는 쉽게 합리화해왔다.

아빠가 퇴직하면 같이 자전거도 타고 여행도 다니지 않겠나 생각했지만 아빠는 퇴직한 게 아니라 산재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노동, 일, 돈벌이. 아빠를 하루 종일 닳게 만들고 소주 한 병과 잠들게 만들고 다음날 숙취와 함께 일어나게 만들었던 노동, 일, 돈벌이. 그걸 놓치고 나니 아빠는 누우면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빠는 내게 미안할 게 없다. 나는 자꾸 내가 아빠를 마음 아프게 했던 순간을 떠올려 본다.

내가 아빠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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