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책, 읽은 책, 읽을 책 128

도망가기 좋은 책으로 도망가기

인기있는 책은 역시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읽어야 제 맛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구석은 먼지가 날리기 마련이고, 그 먼지가 가라앉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사람 많은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사람들이 물러간 자리여야 찾아가서 앉는다. 일이 많은데, 잘 하지는 못 해서, 나는 한 주 내내 책 속으로 도망갈 생각을 했다. 다음 날을 위해 일찍 잠들어서, 아이폰은 나에게 잠자는 시간을 잘 지켰다며 칭찬을 했다. 정말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나 생각하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1분, 신호를 기다리는 30초도 책을 읽을 수는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한다, 책값이 비싸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저 책이 해야 할 일의 순위에서 자꾸 ..

티타가 끓여내는 스튜 같은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씀, 권미선 옮김. 민음사(2004) 사람의 몸에는 불의 씨앗이 있다. 한 번에 너무 활활 타버리면 주변의 모든 걸 태울 수 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마치 요리책 같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은 모두 여성이다. 음식을 만드는 절차에 대한 묘사는 대단할 것이 없지만, 사건과 사건 사이, 쉼과 쉼 사이에 끼어드는 조리의 현장은 이 작품 전체에 풍미를 더한다. 이 책을 고를 때, 책 제목이 익숙해서 들었다. 그리고 처음 몇 페이지를 읽는데, 빠져 들 수밖에 없어서 골라서 집으로 왔다. 일터에서는 쉬는 시간 따위는 없기 때문에, 잠들기 전 집에서만 읽을 수 있었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는 티타를 둘러싼 사건에 마음을 졸이고, 그녀가 내놓는 음식을 상상했다. 좋은..

도시의 흉년 중 -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해 읽고

리디 셀렉트에서 박완서 작가님 작품만 쭉 읽어도 본 전은 되겠다 싶다 생각하며.. 10년 넘게 부모로 살고 있고, 40년 넘게 자식으로 살고 있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늘 변하고 변하여 충분히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늘 다시 느낀다. 박완서 작가님의 도시의 흉년을 느끼면서, 나는 작중 화자인 수연이를 통해서 갖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 40년 넘게 자식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나를 대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부모님의 모습에도 열심히 적응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내 부모님에게 자식이 나뿐인 것은 아니라 다행이다. 엄마는 딸들과는 거의 매일 통화하는 것 같고, 아빠도 나보다는 누나나 동생에게 더 자주 전화를 한다. 내가 그래도 가장 가까이 있으니 손이 필요한 경우에는 내가 도와드리지만, 아빠가 ..

쌈채소 먹기 같은 ‘소설 읽기’

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아직도 책을 ‘많이 읽지’ 못하고 있지만, 소설은 손이 가지 않는다. 서점에 가도, 도서관에 가도 인문, 사회, 과학, 자기계발서까지는 아주 차근차근 살펴보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다. 왜 일까? 지은이의 말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설가는 ‘내 소설은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이러이러한 주제를 전하고자 한다.’ 라고 밝히지 않는다. 독자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내용과 주제를 밝혀내고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얻는 내용과 주제라는 것이 실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소설이 아닌 책의 경우, 저자의 말을 듣고, 책의 목차를 꼼꼼이 보고, 책 중간 쯤을 펴서 읽어보면 된다. 실패와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른다. 소설을 혼자서 선택하게 되면, 실패하기 쉽..

또 다른 글쓰기 책이 가리키는 그곳

제목 : 하버드대 까칠교수님의 글쓰기 수업 원제 : Unless It Moves the Human Heart: The Craft and Art of Writing 저자 : 로저 로젠블랫 돋을새김. 2011 2022.01.03 - [책/읽는 책, 읽은 책, 읽을 책] - 오랜만에 글쓰기 책 : 마흔의 글쓰기 (명로진) 명로진 작가님이 자신의 책에서 언급한 책이라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온라인 서점에는 '품절'이라고 나오는데, 인기가 없어서 절판된 것이겠지. 40년 이상 글쓰기 강의를 하고 거기서 얻은 이야기를 써낸 책이다. 등장하는 학생들은 저자가 만난 학생들의 일부와 일부가 만난 조합물이 아닐까. 주로 학생들과 대화하는 식으로 이어지는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준다. 그 목적으로 충분하다...

질병은 우연이지만 환자됨이 필연은 아니다

미야노 마키코, 이소노 마호 지음, 김영현 옮김.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다다서재 2021. 이 기묘한 편지를 써보자고 말을 꺼낸 사람은 바로 저, 미야노 마키코입니다. 처음 기획할 때만 해도 꽤 폭넓은 분야를 아우를 예정이었지만,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결국 생과 사를 둘러싼 다큐멘터리이자 생과 사를 함께하는 사람들의 해후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혹은 병에 걸린 한 철학자가 '영혼의 인류학자'에게 기대며 내보낸 말들을 기록한 책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이 책을 쓴 두 저자 중 한 명인 미야노 마키코는 책의 들어가는 말을 저렇게 시작했다. 그녀는 거의 숨을 거두기 직전에 이 책의 들어가는 말을 썼다. 두 저자 사이의 편지를 보건데, 거의 마지막 즈음(이라고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미..

선입선출 - 가끔 책을 보내야

나의 집은 크지 않고, 내 책장의 책들은 아이들 책과 다투느라 그 자리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지난번 새 책꽂이를 들이고 나는 내 책을 꽂을 생각에 기뻤지만, 어디서 온 것일까, 아이들의 책이 그 책꽂이의 2/3를 차지했다. 이미 읽은 책들 중 고전이나 명작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을 이제 고르고 있다. 충분히 좋았던 책이지만 두고두고 읽을 것 같지 않은 책도 한 권씩 고르고 있다. 그렇게 그 책들은 떠나가게 될 것 같다. 지난 해 읽은 책들 중, 읽은 책 목록에 기록하지 못한 것들을 찾느라 책장을 뒤적이다 이 책들을 꺼냈다. 좋은 책은 많으나, 가지고 있을 책들도 많을 수는 없다. 집의 벽을 모두 서가로 채우고 살 수 있다면 훨씬 여유가 있을텐데... 이 책들을 조금씩 옮기는 것은 어떨까. 내가 열쇠를 받..

나의 권리와 타인의 권리를 모두 살피는 방법

내 권리는 희생하고 싶지 않습니다 김지윤 지음 아마도 내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 분을 몰랐던 것 같다. 백분토론 진행도 하셨다는 데, 나는 이 분의 얼굴도 이름도 낯설었다. 정치분야에 대한 관심도 없었던터라 더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유튜브영상에서 이 분을 알게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궁금해서 책이나 영상을 찾다가 김지윤 님의 채널을 보게 되었다. https://youtube.com/c/%EA%B9%80%EC%A7%80%EC%9C%A4TV 김지윤의 지식Play #국제정치 #미국문화 #역사 MLB 광팬, Jazz 매니아 김지윤 박사가 역사, 인문, 영화, 음악, 미국 정치까지 깨알같이 풀어드립니다. www.youtube.com 영상을 여러개 보지는 못했지만,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긴장 ..

가정에서 시작하는 독서, 학교에서 완성되는 독서 - 도란도란 책모임(백화현)

내가 좋아하는 건 분명 책 읽기라는 걸 독서모임 4년 만에 확신하게 되었고, 이제는 학생들과, 동료 선생님들과, 가족과도 책모임을 해보고 싶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책모임을 하고, 학교에서는 특히나 어떻게 학생들과 책모임을 해갔는 지 궁금하다. 이 책은 2013년 발행되었고, 백화현 선생님이 그 이전부터 실천해온 독서 모임을 꾸준히 기록하고 발전시켜 온 결과물을 엮은 책이다. 이렇게 한 학교에서의 다양한 독서 동아리가 이슈화 되는 일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이미 7년 전의 책이지만, 아직도 전국적으로 학교 독서모임이 전파된 것은 아니니, 학교에서 함께 책 읽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건 확실하다. 책의 내용을 보자면 최근에 읽었던 독서동아리 100개면 학교가 바뀐다(서현숙,..

최재천 교수님의 - 호모 심비우스

부재 : 이기적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는가?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읽어버린 두 번째 책. 이음출판사, 2011년. 이기적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다.라기 보다는 우리 이제는 서로를 돌보며, 지구를 돌보며 살자라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어떻게? 지구상의 동물들이 (의도가 있든, 그렇지 않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지에 대해 여러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협력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최재천 교수가 생각하는 새로 정립해야 할 인류의 이미지인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공생인)로 이야기를 끌고 가기 전에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식물들의 생활상을 이야기 한다. - 경쟁 - 포식 - 기생 - 공생 모든 종의 동물들은 자연히 그들의 생계수단(자원)에 비례하여 증식하며, 어느 종도 그 이상으로 증식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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