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책, 읽은 책, 읽을 책 128

화장실에 두기에는 시집이 최고

부부화장실 변기 위에는 작은 공간이 있고 거기에는 책이 일곱 권 꽂혀 있다. 나는 앉아서 볼 일을 봐야 하면 책을 하나 빼드는 데, 최근에는 시집을 빼들고 있다. 그전에는 '새'에 대한 책이었다. '새'에 대한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자꾸 시집을 빼들고 읽고 있다. 화장실에 두기에는 시집이 최고다. 나는 시를 잘 모르고, 읽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화장실에 두고 같은 시집을 읽고 또 읽다 보니, 좋다. 일단 짧게 앉은 동안 하나의 완결된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오래 앉아 있는 스타일은 아니고, 그렇다고 화장실에까지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시집은 길어도 두 세 페이지다. 내가 앉아 있는 시간은 길어도 두 세 페이지다. 한 시인의 시집을 다 읽었고 이제 어던 시집을 넣어둘까..

“시 읽는 법” 김이경

내 작은 공간. 아직도 ‘시’는 잘 읽지 않고 읽지 못 하는 나는 이런 책이 도움이 된다. 읽어야지 하는 책(’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이 책에서 또 권하고 있어서, 알라딘 장바구니를 다시 살펴본다. ’보르헤스의 말‘에도 시인들이 많이 언급되는 데, 이제는 진짜 시를 읽어야 할 때인 것 같다. 너무 쉬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읽다 보면, 책에 또 다른 책이 이어진다. “시 읽는 법” 김이경 지음. 유유출판사.

한 권의 책에 대한 주인

오랜만에 서점이다. 아들은 어제도 열이 났고, 오늘도 집에 있어야 한다. 딸과 함께 진주문고로 왔다. 딸은 책을 고르고 나서는, 학용품 코너에 가서 자기 용돈 2000원으로 채울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가리기 위해 바쁘다. 얼마전에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한 박스 샀지만, 그건 마치 싱크대에 가닥찬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는 것처럼, 너무 장바구니에 오래 담긴 책들은 해소 해주는 일이다. 그 책을 다 읽지 못 했지만, 그 책들을 사야 했던 이유들은 제법 차갑게 식어버렸다. 다시 나를 끌어들이려면, 나는 우리집 책장 앞에서 책들을 대면하고 시간을 좀 보내야 한다. 서점에 와서 얼굴을 드러낸 책을 보다보면, 나 좀 데리고 가라는 책들이 있고. 잠시 서서, 자시 앉아서 읽은 그 맛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 이럴..

‘만화 그리는 법’을 읽고 만화 그려 버리기

추석 연휴 ‘거의’ 마지막 말이다. 내일도 쉬는 날이지만, 그 다음 날에는 출근을 해야 하니, 내일은 아마 아껴 쉬려다가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날이 되지 않을까. 이제 가을이지 싶어서 산책을 해야 게다고 나갔는데, 생각보다 더워서 실패한 날이다. 아천 북카페에서 쉬기라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제대로 실패한 산책이 되었을 것 같다. 진양호 주변 둘레길은 바람막이는 꼭 챙겨 입어야 하는 기온 정도가 되었을 때 다시 시도해야 겠다. 아무튼 아천북카페에서 저 책을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유유출판사에서 나온 책인데, 얇아서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만화 그리는 법’이라니.. 만화라고 생각하는 것을 그린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저자의 조언은 ‘그림 그리기’나 ‘글쓰기’에 대한 방법을 묻는 사람들이 듣게 되는 ..

앞으로 올 사랑. 정혜윤

책을 읽는 일은 얼마나 까마득한 일인가. 재미있다 생각하면서 책을 읽다가, 이 책은 다시 읽고 싶다 생각하면서 끝까지 읽고도 다시 뒤를 돌아보면, 이 책을 읽었던가 기억이 희미하다. 출발한 곳은 책의 표지이고, 끝난 곳은 거기서 한 꼬집 정도 떨어진 지점인데도, 아주 먼 곳으로 가서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나는 책의 첫 장과 마지막 페이지를 연결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럴 때에는 그저 다 기억하지 못해도, 이 책의 이야기는 분명 나를 통과했다. 라고 나를 설득하기가 이롭다.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음악을 알려면 많은 음악을 들어야 하고, 그림을 보려면 많은 그림을 봐야 하고, 책을 읽으려면 많은 책을 봐야 한다. 그러기 귀찮아서 혹은 빠르게 가려고, 누군가의 책 추천*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나는 정혜..

우크라이나의 전쟁일기

전쟁일기 올가 그레벤니크 전쟁은 건물을 무너뜨리고, 가족들을 갈갈이 찢어놓는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동화를 쓰던 작가는 자신의 피난길을 일기로 남긴다. 그림이라고 하지만, 충분히 편한 자세로, 충분히 생각하며 그린 그림은 아니다. 지하에서 대피하며 잠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남편을 우크라이나에 남겨두고, 버스에서 남편을 바라보다 기억을 더듬어 그리고, 집 창문에 모두 X자 모양으로 테이프를 발라둔 것을 급히 그린 것 일기 만으로 부족한 참상을 빠른 그림으로 그려냈다. 누군가의 기록, 가까이서 전쟁을 경험하며 그린 개인의 기록들이 이 전쟁이 끝나게 되면 더 쏟아져 나오겠지. 인류는 여러차례 전쟁을 경험했음에도, 새로운 단계로의 평화로 내닿지 못했다. 서로 끈끈한 무역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발화와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시험기간이지만, 우리 학교 행복연구부에서 멋진 특강을 준비했다. 진주문고 행사에서 종종 이름을 보고는 했던 허경 교수님의 특강이다. 최근 신작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를 내고,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땅히 모두 듣고 질문도 했어야 했지만, 아들을 치과에 데리고 가야 해서 특강도 다 듣지 못하고 왔다. 그래도 특강 전에 저자사인을 받았다. 하하. 강의를 듣기 전에 우선 책을 반쯤 읽었다. 우리 시대의 내로남불에 대한 저자의 생각 혹은 내로남불에 대한 철학적 의견을 들을 수 있었는데, 거의 어렵지 않았다. 내로남불에 이미 너무나 익숙하게 노출되어서 그럴 수도 있고, 저자가 어려운 내용을 쉬운 부분만 쉽게 설명해서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

어린 기린 해부학자

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 군지 메구. 더숲. 2021. 아이의 마음을 갖고 어른이 될 수 있을까? 3년 전 일 수도 있고, 5년 전 일 수도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이의 마음을 아이였던 기억을 생생하게 가지고 있는가? 에 대해 생각하고는 했다. 그런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본 게 너무 오래되었다. 왜 일까? 이제 나는 어른의 일만 생각하게 된 것일까?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다가 기린을 생각해 낸다. 저자는 운이 좋다. 교실 안에 앉아 있는 많은 학생들 중, 내가 질리지 않고 오랜 시간 좋아하던 것 을 생각해 낼 수 있는 학생이 많지 않다. 저자는 용케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냈고, 끝까지 그 마음을 간직해 냈다. 아직도 진행형인 사람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자꾸 이 사람을 부러워 하게 된다. ..

책과 함께 사라지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어려운 작가의 이름 이 정도면 니코스 카잔차키스 만큼이나 어려운 이름이다. 보후밀 흐라발. 책의 제목은 기억하되, 과연 나중까지 이 저자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은 아주 한참 동안 내 눈을 끌었고, 내 귀에 웅웅 거렸지만, 너무 평이 좋은 영화에 끌리지 않는 것처럼, 너무 평이 좋은 책을 일부러 집어 들지 않게 된다. 어줍짢은 허영심의 발로가 아닌가. 하지만, 아름다운 꽃이 사람의 눈을 끄는 것처럼, 이 책을 열어보게 되었고, 나는 여러번 읽게 될 첫문장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스토리다. 러브스토리와 장례사 그는 여러 개의 러브스토리를 들려준다. 그 중 가장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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