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 816

사물 글쓰기 강의 엿듣기

사물은 거기에 있고, 우리는 거기 주변에 있다. 우리가 있어야 사물은 의미를 가지지만, 우리가 주는 의미 없이도 사물은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사물 가까이에 있어서, 사물을 들여다 봄으로써, 거기에 묻어난 우리의 흔적을 벗겨낼 수 있다. 무엇으로든 은유가 될 수 있어 사물을 쳐다보고 언어로서 사물에 닿아보려 애쓸 수 있다. 애는 쓰지만, 언어는 우리의 조력자이자 최후까지 살아남는 방해꾼 최선을 다해 사물에 다가가려 하지만, 노력은 거기까지 가장 피상적인 사물의 속성에서 시작하지만, 그 사물의 속성에서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나를 포함한, 나의 논리에 동조하는 사람에게만 일부 진실일 수 있는 그 머나먼 속성, 또 다른 사물을 찾아내는 게 최선 객관은 가깝지만, 객관은 새롭지도 흥미롭지도 않아 이야기가..

코로나 3차 접종과 진주문고

1차, 2차 백신까지만 맞으면 끝날 줄 알았지. 부스터 샷은 필요없다고 할 때,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어제 아침 일찍 동네 소아청소년과에 전화를 했다. 화이자만 있다고 했고, 나는 1, 2차를 화이자로 맞았다. 10시까지 가니, 어린이 환자들은 없고, 코로나 백신을 맞으러 온 사람들만 가득했다. 1, 2차 때도 주사 맞은 팔이 약간 묵직한 것 빼고는 별 이상이 없었다. 그렇다고 3차를 맞으면서 전혀 걱정이 안 되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2차보다 3차가 힘들었다는 사람도 있고. 어제는 별 일 없이 잘 보냈다.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으며 낮에는 잠을 조금 잤다. 오늘도 통증 같은 것은 없었다. 2차 때보다 팔이 뻐근한 것도 덜 했다. 하지만, 그냥 침대에 누워 ..

내 작은 도토리의 큰 세상

딸의 뒷모습을 찍으려는데, 셔터 소리에 자꾸 딸이 뒤를 돌아본다. 돌아보지 말라고 해도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돌아본다. 오랜만에 둘이서만 외출을 했다. 나는 아침에 코로나 백신 3차(화이자)를 맞고 아내의 허락(?)을 얻고 잔뜩 누워 있다가 오후에는 몸이 근질거려 대출한 도서 반납하기라는 심부름을 하기로 했다. 아들은 피아노 연습하느라 나가지 않는다고 하고, 딸은 기꺼이 같이 가주기로 했다. 가족 네 명의 카드로 빌린 책을 모두 들고 가니 어깨가 무겁다. 날이 차기는 하지만, 덕분에 공기는 청명했다. 아침 식탁에서 딸은 밖을 보면서, 저렇게 날이 좋은데 어떻게 추워.라고 했다. 그래. 너무 맑은 날은 밖으로 나가면 마치 따뜻할 것 같다. 우리 마음속에 맑은 날은 따뜻한 날과 짝을 맞추어 다닌다. 책을 반..

잘못한 게 없지만, 용서 받지는 못하는

산드라 블록의 영화 ‘언포기버블’을 보고 잘 보는 영화와 좋은 영화 나는 존 윅, 테이큰, 아저씨, 페이백처럼 아저씨 혼자서 다 부시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영화들이 좋은 영화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전혀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영화를 보면서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선과 악이 명확하고, 따라서 나는 ‘선’의 편에 서서 ‘악’을 응징하는 모습을 감상하면 된다. 고민이 필요없다는 지점에서, 내가 갈등할 부분이 없다는 점에서 아무런 생각없이 볼 수 있는 영화다. 좋은 영화는 이제 나의 마음을 괴롭힌다. 조마조마 해서 영화를 멈추게 되고, 나는 저 사람에 비해 어떠한가 반성하게 한다. 무서워서 멈추고, 걱정이 되어 멈추고. 이제 집에서 보는 영화가 일상화 되었고, 영화의 재생..

올란도 요소수 보충하면서 요소수 기능 살펴보기

요소수 대란이 이어지고 나는 약간 불안에 떨었다. 27000 정도 거리를 달린 올란도를 중고로 구입하고 33000km 정도가 될 때까지 요소수를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란 중에 요소수가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뜨면 어쩌다 걱정했다. 다행히 요소수 대란은 지나갔고, 내 올란도는 잘 참다가 때마침 요소수 부족 메시지를 보냈다. 요소수 부족 메시지가 뜨면, 앞으로 얼마나 더 운행할 수 있는 지 나온다. 메뉴얼을 보니 요소수 부족 메시지가 뜨면 되도록 빨리 요소수를 보충하라고 되어 있다. 메시지가 뜬 지 며칠 되었지만, 1600km 정도 남았다는 메시지를 보고 오늘에야 요소수를 보충했다. 요소수 보충은 어디서? 주유소 주변 주유소에 요소수 보충이 가능하다면 주유소에서 넣으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직접 주문해서 ..

일상사/Stuff 2021.12.13

38317과 삐삐

식사를 하고 학교 한 바퀴를 돈다. 이번주에는 내내 따뜻한 날이 이어지고 있어서 걷기에 좋지만, 잠시만 걷고 들어가야 한다. 학교에는 여러 선생님이 있고, 참 많은 나이차가 나는 선생님들끼리도 서로 존대하며 이야기한다. 선생하기 좋은 때는 나이를 떠나서 좋은 동료를 사귈 수 있을 때이다. 어떻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까? 삐삐 이야기가 나왔다. 내 기억에 나는 아마도 고등학교 2학년 때 삐삐를 사용했던 것 같다. 부모님께는 알리지도 않고 용돈으로 샀었던 것 같은데, 그 용돈은 도대체 어디서 구했던 것일까? 그다지 급한 연락도 없었는데, 그때 나는 삐삐로 누구와 연락을 주고 받았을까. 어쨌든 그때 삐삐는 없으면 안되었고(지금 학생들에게 휴대폰은 더 중요하겠지), 서로 연락하는 일이 없더라도 삐삐번호는 교환하..

일상사/Stuff 2021.12.08

딸의 취학통지서와 나의 국민학교

내년이면 딸이 초등학교에 간다. 오빠를 보고 혹은 오빠의 말을 듣고, 벌써 공부 많이 하는 건 싫다고 말하는 딸이지만, 돌아서서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욕심쟁이다. 책가방 살 생각에 설레고, 자기 방을 만들고 침대도 들일 생각에 설렌다. 아이들의 성장은 늘 놀랍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의 변화는 대단하다. 유치원 때까지의 삶의 반경은 가족+유치원 친구들과 선생님이다. 하지만, 유치원 친구들과의 유대는 초등학생들 사이의 우정과는 그 모습이 분명 다르다. 유치원생들은 솔직하기는 하지만, 자기 마음이 어떤 지 잘 모르고, 서로 좋아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서로 배려할지 잘 모른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사람 사귐의 기술은 고도로 발달하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힘들어하기도 하겠지. ht..

뜯으니 살아난 타임 타이머

몇 년 전 우리 아이들 생활 습관을 잡아주기 위해서 샀던 구글의 타임 타이머. 타이머를 맞추면, 빨간 부분이 사라지면서 긴장감을 조성한다. 시간을 정해놓고 무언가 하려고 할 때, 시각적으로 표시되어 좋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효과는 없었다. 여러 번 타이머를 맞추고 벨소리를 들으려고 다시 0으로 옮겨놓다가 어느새 고장이 나버렸다. 일요일에 그냥 한번 뜯어봤다. 배터리는 새로 갈고. 그러고 났더니 정상작동한다. 이제 아이들한테는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일렀다. 그냥 뜯었다가 조립했는데, 다시 작동하는 요상한 시계. 내가 가진 문제, 내가 부딪히게 되는 문제도 그냥 풀었다가 조립하면 아무렇지 않았던 듯 제대로 모두 작동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지만, 우선 숨겨진 나사를 찾아야 하겠구나.

일상사/Stuff 2021.12.07

불편한 목과 마음이 출근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목이 뻐근하다. 잘 자고 일어났는데, 목이 아프니 억울하다. 잠이 인풋이면, 개운함이 아웃풋이어야 하지 않나. 지난 일주일은 아버지 사고 때문에 아주 정신이 없었고, 몸은 피곤했고, 마음은 괴로웠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월요일이 다가오는 게 싫었다. 그래도 ‘학교 가기 싫다’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쁜 생각은 잘 말하지 않는다. 내가 들으니 그렇다. 내가 말하고 내가 들으면, 나는 내 말을 더 믿게 된다. 나쁜 말, 좋지 않은 생각에는 확신이라는 물을 주어서는 안 된다. 하루 종일 아픈 목에 신경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때마침 오늘이 야간자율학습 감독이었고, 꼼짝없이 나는 14시간 학교에 잡혀 있었다. 일부러 학교에 좀 더 일찍 갔고, 컴퓨터를 켜고 메시지를 열어보니..

산타가 없다구요?

작년부터 아들은 산타의 존재를 의심해 왔다. 그리고 올해에는 산타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우리에게 선물을 요구했다. 가타부타 말은 않고 아들이 원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문했다. 산타는 있을까? 아들과 산타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도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짧으면서도 강력하게 산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에게 산타는 믿음의 문제다. 산타가 있느냐 없느냐는 논의의 주제가 되지 못한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서 그렇다. 산타를 믿는 사람에게 산타는 있고, 산타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산타는 없다. 우리는 실제로(이 단어 선택 자체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달리 다른 단어를 쓸 수 없어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많이 믿는다.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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