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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딸의 취학통지서와 나의 국민학교

딸의 취학 통지서


내년이면 딸이 초등학교에 간다. 오빠를 보고 혹은 오빠의 말을 듣고, 벌써 공부 많이 하는 건 싫다고 말하는 딸이지만, 돌아서서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욕심쟁이다. 책가방 살 생각에 설레고, 자기 방을 만들고 침대도 들일 생각에 설렌다.

아이들의 성장은 늘 놀랍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의 변화는 대단하다. 유치원 때까지의 삶의 반경은 가족+유치원 친구들과 선생님이다. 하지만, 유치원 친구들과의 유대는 초등학생들 사이의 우정과는 그 모습이 분명 다르다. 유치원생들은 솔직하기는 하지만, 자기 마음이 어떤 지 잘 모르고, 서로 좋아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서로 배려할지 잘 모른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사람 사귐의 기술은 고도로 발달하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힘들어하기도 하겠지.

https://www.gov.kr/portal/service/serviceInfo/174100000020

 

취학통지서 발급 | 정부서비스 | 정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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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gov.kr


취학통지서 쯤은 정부 24에서 출력이 가능하다. 다양한 서비스가 온라인으로 가능하니 품 들일 일이 적다. 모두 책상에 앉은자리에서 처리할 수 있으니 편리하기는 한데, 계속 편리만 추구해도 되는가 싶은 생각에 잠시 고개를 갸웃한다.

아무튼 취학통지서를 받아왔고, 나는 내가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입학 하던 때를 생각한다. 손수건을 곱게 접어서 가슴에 매달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사진을 볼 수는 없지만, 초등학교 입학식 날 나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미끄럼틀 앞에서 동생과 차렷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막연한 비장미가 느껴진다랄까.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줄 몰랐으면서도, 무언가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리에 휩쓸리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애쓰는 건 인간의 중요한 본능 아닐까. 사회적 인간에게 늘 닥치는 과제는 바로 ‘관계’다. 국민학교라는 넓은 공간으로 가면서 나와 같은 나이의 다른 사람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나는 제법 혼란스러웠으리라.

기억 속의 나는 늘 내 또래만 바라 보았고, 세상은 내가 보는 시선에서 가장 정확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혼란한 세상을 이해하려고 혼자 궁리하는 사이, 나는 내가 이해하는 세상을 설명해야 할 때도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마치 내 자아는 변함이 없는 것 같지만, 몸이라는 틀에 갇힌 적이 없이 늘 자라났다. 마치 허물을 찢고 나오듯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나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막연하게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데, 그때의 그 ‘잘한다’는 건
- 그저 친구들과 잘 지내고
- 밥 잘 먹고, 잘 뛰어 놀고
정도겠다. 초등학교 입학생에게 기대되는 바는 딱 그 정도 아닐까.
물론 부모는 아이가 하나하나 해낼수록, 더 많은 것들을 바라고 또 도와주고 응원하기는 한다.

초등학생이 된 딸의 모습은 어떨까? 새치머리를 자르고 있는 나에게 와서 아빠는 백 살까지 살아야 해라고 말하는데, 지금도 충분히 멋진 사람이니, 이제 점점 더 멋진 사람이 되리라 확신하고 기도한다. 이래저래 기도할 게 많은 날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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