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산타가 없다구요?

타츠루 2021. 12. 5. 21:36

어린이 산타

작년부터 아들은 산타의 존재를 의심해 왔다. 그리고 올해에는 산타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우리에게 선물을 요구했다. 가타부타 말은 않고 아들이 원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문했다.

산타는 있을까?

아들과 산타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도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짧으면서도 강력하게 산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에게 산타는 믿음의 문제다. 산타가 있느냐 없느냐는 논의의 주제가 되지 못한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서 그렇다. 산타를 믿는 사람에게 산타는 있고, 산타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산타는 없다. 우리는 실제로(이 단어 선택 자체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달리 다른 단어를 쓸 수 없어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많이 믿는다.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는 것, 우리가 본 적이 없는 것들도 그것이 있다고 확신하거나, 없다는 게 확실한데도 믿는다. 우리는 중력 안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중력을 체험하지 못하지만, 믿는다. 우리는 사랑을 본 적이 없지만 사랑을 믿는다. 해리포터도 호그와트도 가볼 수 없지만, 해리포터를 믿는 사람만이 해리포터를 즐길 수가 있다.

믿음의 문제

나는 아직도 산타가 있다고 믿고, 언젠가 산타가 나를 다시 찾아와 주면 좋겠다. 아빠가 산타였는 지 아닌지는 모른다. 아마도 그랬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우리 아빠가 "내가 산타다."라고 말한 적도 없다. 그 점이 아빠에게 고맙다. 오로지 믿음에 의해서만 힘을 가지는 게 세상에는 많고, 사실 세상 대부분의 것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은 우리가 믿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 결국 더 많은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고, 돈보다 더 가치로운 것들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호의를 베풀면 호의를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우리 가족들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는다. 교사의 노력으로 학생이 변할 수 있다고 믿으며, 한 사람이 변하면, 우리 세계에 조금의 변화가 생긴다고 믿는다. 이때 믿는다라는 단어를 생각한다라고 써도 별 달라지는 바 없는 것 같지만, 생각한다는 모호하고 모자란 표현이고, 믿는다가 맞는 표현이다.

아들에게도 그래서 그렇게 말했다. 아들에게 말한 덕분에 대강 생각이 정리되었다. 말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아빠는 산타를 믿는다. 어떤 사람들은 산타가 있다 없다를 따지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아. 산타를 믿느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산타를 믿는 사람에게는 늘 산타가 있어. 산타를 믿지 않는 사람의 삶에는 산타가 없지. 아들은 해리포터를 좋아하잖아? 적어도 해리포터 책을 읽을 때에는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와 론과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믿잖아.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거야. 나는 아들이 산타를 믿으면 좋겠어. 신이 있느냐 없느냐 따지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밝혀내기 어려운 문제야. 신을 믿느냐 안 믿느냐, 그게 중요하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궤변

누군가는 궤변이라 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궤변을 세우고 싶다. 실제라는 의미는 보기보다 협소하다. 인간은 자신의 관점에서 현실 혹은 외부의 자극조차도 재구성한다. 실제하지 않는 것들이 스토리를 만들어 우리의 기억에 자리 잡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재생되기도 한다. 우리의 기억을 조작하는 데 가담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면, 가차 없이 믿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 하는 말이다.

산타할아버지, 그러니 저에게 선물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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