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뒷모습을 찍으려는데, 셔터 소리에 자꾸 딸이 뒤를 돌아본다. 돌아보지 말라고 해도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돌아본다. 오랜만에 둘이서만 외출을 했다. 나는 아침에 코로나 백신 3차(화이자)를 맞고 아내의 허락(?)을 얻고 잔뜩 누워 있다가 오후에는 몸이 근질거려 대출한 도서 반납하기라는 심부름을 하기로 했다. 아들은 피아노 연습하느라 나가지 않는다고 하고, 딸은 기꺼이 같이 가주기로 했다.
가족 네 명의 카드로 빌린 책을 모두 들고 가니 어깨가 무겁다. 날이 차기는 하지만, 덕분에 공기는 청명했다. 아침 식탁에서 딸은 밖을 보면서, 저렇게 날이 좋은데 어떻게 추워.라고 했다. 그래. 너무 맑은 날은 밖으로 나가면 마치 따뜻할 것 같다. 우리 마음속에 맑은 날은 따뜻한 날과 짝을 맞추어 다닌다.
책을 반납하고, 다시 빌려야 하는 책은 재빠르게 다시 빌린다. 아들은 학교에서 내준 숙제로 독서록을 써야 하는데, 그 책은 늘 뒷전으로 하고 다른 책부터 읽다보니 빌린 책을 연장하고, 또 빌려야 했다.
책을 다 빌리고 나니, 딸은 이제 가자고 한다. 가지고 오려고 했던 줄넘기를 두고 와서 놀게 없었다. 연암도서관 안에 있는 카페에서 음료수를 하나 사달라고 한다. 딸은 아기 상어 음료(1000원), 나는 카페라테(2500원)에 샷 추가(500원), 음료를 받아 들고 밖으로 나온다. 그네에 앉아서 마실까. 응. 지난번에는 그네 의자 앉는 게 싫다더니 오늘은 웬일로 괜찮다고 한다. 쇠로 만든 튼튼한 그네 의자에 앉아서 딸은 음료수를 마시고 나는 커피를 마신다. 지난번에 왔을 때, 카페라테를 시켰는데, 분명 투샷일 텐데도 커피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tall 사이즈의 컵인데, 우유가 많았던 것일까. 샷 추가를 하니 딱 적당하다. 웨이닝에서 커피와 메뉴 모두 지원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오늘의 커피에서는 약간 산미가 있었다.
그네에 앉아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세상에서 하늘색이 제일 좋아. 하늘이니까 하늘 색이지. 구름이 너무 이쁘다. 솜사탕을 좀 뜯어서 버려둔 것 같아. 그럼 하늘이 쓰레기통인 거야? 시답잖은 이야기를 즐겁게 하고 사랑해 말한다. 아빠가 딸 사랑하는 거 알아? 물론 알지. 내가 한 살 때부터 100번도 넘게 말했잖아. 딸이 그렇게 말하지만, 요즘에는 매일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말 안 해도 알아도, 말해줘야 해. 사람들은 말하지 않으면 잘 몰라.
내 커피를 마치고 이제 일어섰다. 바로 차로 가지 않고 도서관 옆을 조금 걷는다. 우습게 경사진 길을 걷고 계단을 조금 지나 작은 원을 그리며 도서관 옆을 구경했다. 차에 타고 딸이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튼다.
이건 순전히 나이 탓이며, 나이가 들수록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것 같다. 아니 평생 지금 정도의 감수성을 가졌어야 했는데, 나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지배하던 어린 시절에는 웃음도 눈물도 어설프고 옅었다. 무튼 간에 요즘은 가끔 눈물이 나고, 잘 참지 않으면 많이 날 것 같은 때도 자주 있다.
딸에게 내가 좋아하던 동요를 가르쳐 주기도 하지만, 딸 덕분에 새로운 노래들도 알게 된다. 최근 들어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도토리의 꿈이다. 2011년도 발매된 노래라는 데, 어떻게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까.
도토리의 꿈
아름다운 숲 속에 작고 예쁜 도토리
풀잎에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바람에 실려 오는 산새노래에
멋진 참나무 되는 꿈을 꾼다네
저 하늘 날다가 쉬고 싶을 때면
커다란 가지도 내어 주고
시원한 나뭇잎 그늘 만들어
마음껏 노래하게 해
도토리의 작은 꿈 아름다워서
내 마음까지 행복해져
딸과 음악을 들으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가사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해서 딸이 고쳐주기도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풀잎에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과 '멋진 참나무 되는 꿈을 꾼 다네'이다. 풀잎에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은 율동이 너무 이쁘다. 손을 펴서 눈 위에 경례하듯 올리고 가려진 모습을 표현한다. 그 율동이 너무 이뻐서 저 가사를 자꾸 생각하게 한다. '멋진 참나무' 부분을 들으면서는 자꾸만 도토리에 우리 딸을, 아들을 대입해서 듣게 된다. 내가 모를 꿈을 품고 있는 저 이쁜 씨앗을 옆에서 보고 있자면 눈물이 날 것 같다. 도토리는 참으로 씩씩하기만 해서 또 그 모습에, 그런 태도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세상에는 참 많은 도토리가 있고, 모든 도토리가 참나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들에게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일상사 > 아빠로살아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이 부은 딸과 우리동네 빵꾸똥꾸 (4) | 2021.12.22 |
---|---|
딸의 취학통지서와 나의 국민학교 (0) | 2021.12.07 |
불편한 목과 마음이 출근했습니다 (0) | 2021.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