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라 블록의 영화 ‘언포기버블’을 보고
잘 보는 영화와 좋은 영화
나는 존 윅, 테이큰, 아저씨, 페이백처럼 아저씨 혼자서 다 부시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영화들이 좋은 영화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전혀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영화를 보면서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선과 악이 명확하고, 따라서 나는 ‘선’의 편에 서서 ‘악’을 응징하는 모습을 감상하면 된다. 고민이 필요없다는 지점에서, 내가 갈등할 부분이 없다는 점에서 아무런 생각없이 볼 수 있는 영화다.
좋은 영화는 이제 나의 마음을 괴롭힌다. 조마조마 해서 영화를 멈추게 되고, 나는 저 사람에 비해 어떠한가 반성하게 한다. 무서워서 멈추고, 걱정이 되어 멈추고. 이제 집에서 보는 영화가 일상화 되었고, 영화의 재생과 멈춤은 내가 통제할 수 있게 되어서 영화는 수십번도 멈춘다. 주인공의 아픔을 같이 느끼다 보면, 그 아픔을 잊게 될 때까지 며칠간 영화를 멈춰두고 잊어준다. 그 영화의 흐름을 따라 마음을 쓰다 보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지고 외로워질 것 같아서 영화를 멈춘다.
언포기버블
‘용서받을 수 없는’
3일 만에 간신히
이 영화는 3일 만에 볼 수 있었고, 오늘 마지막 남은 20분을 보면서 영화를 다 보아 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산드라 블록에게만 집중한 영화였다. 그녀의 연기만으로도 모든 걸 끌고 나갈 수 있었다. 넷플릭스가 사랑하는 여자배우가 있고, 그 중 한 사람은 산드라 블록이다. 그리고 그녀는 강력하다. 최근 내가 영화 공부를 위해서 반복해서 다시 보고 있는 영상은 ‘블라인드 사이드’이다. 갈 곳없는 흑인 청년을 가족으로 맞이해서 가장 유능한 미식축구 선수로 성장시킨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 영화 속에서도 산드라 블록은 ‘멋진 액센트’(나는 특히 그녀가 y’all 을 발음 하는 게 좋다.) 아이 앞에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에서 매번 감탄했다. 눈물을 보이지 않는데, 목소리가 젖어 매어 드는 장면들. 처음 그녀를 영화 스피드에서 봤을 때는, 젋고 예쁜 여자배우이면서도 키아누 리브스랑 참 잘 어울리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녀는 그 이상이었다. Gravity 에서의 연기는 또 어떤가.
영화 속에서 그녀는
동생을 잃고, 20년을 복역하고, 동생을 찾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받는 갖은 업신여김을 견뎌낸다. 모성애란 반드시 엄마의 것이 아님을 영화는 드러낸다. I raised her. 모성애란 마음의 한 형태가 아니라, 누군가를 키워내는 그 행동 아닌가. 임신과 출산으로 모성을 얻게 되는 게 아니라, 육아와 보육의 과정에서 모성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여동생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싸운다. 싸울 때는 마치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싸우고, 분을 이기지 못할 때는 헐크처럼 울부짖는다.
1시간 30분 만에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안 사실이지만, 동명의 영국 드라마를 영화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넷플릭스는 영화를 1시간 30분 남짓 되는 길이로 만들었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로는 2시간 혹은 2시간 30분에도 익숙해졌는데, 넷플릭스로 보는 영화 만큼은 그렇지 않다. 넷플릭스는 사용자들의 데이타를 분석해서 가장 적절한 러닝타임은 1시간 30분 전후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1시간 30분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 짧은 시간 안에 필요한 것은 다 담아냈다. 존 번설 같은 내 최애 배우가 나오지만, 오로지 루스(산드라 블록)가 동생을 찾으러 떠나는 행보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 외의 것들은 과감히 버린다. 그렇게 만드니 1시간 30분으로도 영화가 가능했으리라.
루스가 아니더라도 모두 모자란 게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버지를 잃은 두 형제와 그들의 불안한 가정사. 새로운 가족을 만나 잘 성장했지만, 과거의 파편화된 기억에서 괴로워 하는 모습, 과거를 숨겨서 가족을 보호하려는 사람. 오해가 반전이 되고, 잠시 화면을 안 봤다가는 중요한 사건을 놓치고 지나가버릴 수도 있다.
이 영화는 좋은 영화입니다
루스는 내게 포기할 수 있는 것, 지키고 싶은 것, 가장 소중한 것들이 무엇이고, 내게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잃으면 어떨 것 같으냐고 상상하게도 만든다. 나는 괴로움에 영화를 멈추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딴짓을 한다. 상상하기 싫은 것들을 물어보지만, 그럼으로써,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고로 잊고 있는 것들을 손꼽아 보게 한다.
나는 당연히 산드라 블록이 영화 속에서 혼자 모든 적을 때려 부셔도 좋아하겠지만, 이런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얼굴 표정이나 목소리에는 혼이 빼앗기는 것 같다. 좋은 영화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자주 잊는 것들을 상기시켜주는 알람이 되어 준다. 딴짓만 하게 두지 않고, 생각을 하라고 밀어 부친다. 휴.
버드 박스는 별로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모두에게 추천한다.
- 산드라 블록을 좋아한다면
- 뛰어난 연기를 보고 싶다면
- 존 번설을 좋아한다면
- ‘즐기는’ 영화는 충분히 봤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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