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 816

복숭아를 깍습니다

복숭아를 무척 좋아하는 아내는 복숭아 털 알레르기가 있다. 복숭아가 담긴 플라스틱 용기가 지나가기만 해도 아내는 팔이며 손이 간지럽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는 복숭아를 좋아한다. 그러니 나는 사오고 씻고 깍아야 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복숭아를 깍아 먹은 적이 없다. 우리 엄마는 복숭아를 씻어서 조각으로 잘라 줄 때는 있었어도 깍아주지는 않았다. 출장 갔다가 퇴근하는 길에 하나로 마트에 들렀다. 올해 복숭아는 처음 산다. 우리 가족은 모두 단단한 복숭아를 좋아한다. 손으로 눌러볼 수 없지만 단단한 놈을 잘 골랐다. '단단하다'고 쓰여 있을 때도 있었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다. 뒤집어서 꼭지 부분을 잘 봐야 한다. 꼭지가 이쁘지 않으면 맛도 없다. 복숭아를 깍아 주니 아내는 고맙다며 먹는다. 나는 과피에 붙은 ..

오늘만 살아선 안된다

갑자기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생각하고 있지 않고 생각하게 되지도 않았을 사람. 이름을 잊고 그 얼굴을 잊어가던 사람. 그런 사람이 있는데, 누군가와 이야기하다가 결국 생각나는 사람. 몇 해 전 같이 근무했다가 올해 또 같이 근무하게 된 선생님이 있다. 지난 학교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우리는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꺼내고 얼굴도 떠올리고 그들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했다. 누구는 이름만 누구는 성만 기억날 때도 있지만 결국 같이 있던 사람들을 많이 기억해 낸다. 그 선생님을 기억해내는 데는 시간이 더 걸렸다. 그 선생님과는 안 좋은 기억이 있다. 같은 업무 부서였다. 나는 배구하다가 새끼발가락이 부러지게 되었고 수술까지 하게 되어 학교를 비웠다...

나의 오버나이트 오트밀

언제부터 오트밀을 먹기 시작한 지 몇 달이 되었다. 이제는 약간 종이 씹는 것 같은 식감에도 익숙해 졌고, 달지 않은 식사에도 굉장히 익숙해졌다. 왜 오트밀을 시작했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 아침을 차려 먹기 번거롭다는 것. 귀찮다고 말하려니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귀찮다고 말하는 건 어딘가 잘못된 것 같아서 저어된다. 하지만 밥 한 끼를 먹으려면 반찬도 몇 가지 있어야 하고 국도 있어야 한다. 아침밥을 위해 저녁마다 반찬을 하는 것도 아니라 번거로운 일이 여러가지다. 그렇다고 매일 반찬을 사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도 엄마 밥 혹은 집밥에 대한 향수가 있다. 엄마가 칼로 야채 다듬는 소리, 된장찌개 냄새에 눈을 뜨고, 눈을 부비며 앉아 맛있게 아침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밥을 먹어야 식..

딸이 감기에 걸렸다

어제 밤 딸은 목이 아프다고 했다. 그리고 열이 조금 있었다. 오늘 아침 열이 여전했다. 37도를 조금 넘겼지만, 학교로 보낼 수는 없었다. 아침으로 내가 준비한 메뉴는 스프와 참치주먹밥. 딸은 스프만 간신히 먹었다. 가뜩이나 아침을 제대로 먹지 않아서 요즘 아침 메뉴에 신경쓰고 있는데, 오늘 아침은 실패다. 아내와 병원에 다녀왔고, 해열제를 먹고도 열이 37도 밑으로 떨어지지를 않아서, 오후 5시에 다시 병원에 가서 독감 검사를 했다. 독감은 아니다. 검사를 위해 코 안을 찔러서 딸은 기분도 좋지 않다. 샌드위치를 먹이고 좋아하는 젤리와 과자를 사러 집 근처 편의점으로 갔다. 젤리를 먹지 않고 쫄병스낵부터 먹는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여전히 체온은 37도를 조금 웃도는 데도 기분이 안 좋아 보이지는 ..

인구감소와 자전거

오랜만에 브롬톤 출근 요즘에는 제이미스 오로라로 출퇴근 중이다. 왼쪽 가방에는 갈아입을 옷을 넣고, 오른쪽 가방에는 아이패드, 지갑 등을 넣고 다닌다. 그리고 프론트랙에도 무엇이든 올려 놓을 수 있어서 편하다. 그리고 브롬톤보다 직진성이 좋다. 제이미스 오로라를 타면서는 손을 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최근에 거금을 들여 브롬톤 재도색도 했으니 더 잘 타고 다녀야 하는 게 맞는데, 지금은 아끼는 기간이라 할 수 있겠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되면 비도 자주 올텐데, 앞뒤 휀더가 있는 브롬톤이 비오는 날에는 딱이다. 비 오는 날을 위한 별도의 생활차를 구할까 싶기도 하지만 자전거를 세워둘 곳도 없다. 무게가 가벼운 자전거는 아니지만, 사이즈 때문에 마치 '가벼운' 것처럼 느껴진다. 제이미스 오로라도 무겁기 때문..

일상사/자전거 2023.05.24

합천에서 찾은 데이트의 추억

아마도 아내와의 첫 데이트는 영화관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해인사였던 것 같다. 그 겨울에 왜 해인사에 갈 생각을 했던 것일까. 아내와 나는 진주에서 버스를 타고 해인사에 갔다. 하늘은 흐렸고, 우리는 추웠다. 해인사 버스 터미널에 내렸을 때 호객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고, 우리는 식당 한 곳으로 들어가서 아마도 산채비빔밥을 먹었을 게다. 그리고 해인사를 보고 내려왔을 때, 다시 몸은 차가워졌다. 그래서 터미널 옆 매점으로 들어갔다. 석유난로가 있었고, 따뜻한 무언가를 얻어 먹으며 기다리다가 버스를 타고 진주로 왔다. 아이들이 생기고 합천을 해인사를 여러번 갔다. 그런데 해인사 버스터미널까지 올라간 건 그 데이트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그렇게 아이들과 맛있는 밥을 먹었다. 아내와 나는 잠..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출근]] 길에 친구에게 전화가 와 있었다. 아침부터 무슨 전화인가. 불안한 예감이란 불안한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걱정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 이미 불안하다.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치매가 발병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었고, 요양병원에 계시다는 말도 이미 들었었다. 그리고 갑자기 돌아가셨다.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소식을 올렸다. 오늘 같은 날을 대비하겠다는 모임은 아니지만, 조금씩 회비도 모으고 있었다. 개인별로 부조할 만큼의 금액에 상당하는 돈을 부조하기로 했다. 친구의 의견을 들어 화환도 보내기로 했다. 일하면서 친목회 총무를 하면서 알아둔 꽃집에 연락을 했다. 그날 밤 친구 둘은 장유에서 진주로 넘어왔다. 저녁을 먹었지만, 장례식장에서 또 저녁을 먹었다. 이런데서는 ..

혼자만의 존 윅

시험 기간의 마지막 날, 내 생일이기도 했다. 생일이라고 친구들을 모아놓고 축하하는 일 따위는 이제 없다. 가족들과 저녁 시간을 보내기 전 약간은 필사적으로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한다. 존 윅4 1편이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깟 개 때문에... 라고 시작할 만하지만, 누군가를 빡치게 만드는 건 어떤 것에 애착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존 윅4 에서는 또 다른 개 때문에 약간의 전환이 일어난다. 이야기 구성에서 몇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존 윅의 액션. 주짓수와 총기를 합친 씬이 좋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인상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영화 속에서 서로 이름을 불러주는 캐릭터들의 모습이었다. 특히 존 윅이 윈스턴을, 윈스턴이 "조나단"을 부를 때 좋았다...

세탁기에 넣으면 안되는 것

딸은 갑자기 울고 있었다. 일어나자 마자 왜 딸은 울었어야 했을까. 오빠랑 싸웠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선생님에게 받은 쿠폰 때문이었다. 짝을 바꾸는 날, 자신이 원하는 짝을 선택할 수 있는 쿠폰이 바람막이 재킷 안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걸 나는 빨았고, 딸은 그걸 아침에 일어나서 알게 된 것이다. 진심으로 울 일이 있고 되돌릴 수 없는 일도 있다. 선생님에게 대신 말해주겠다고 엄마가 안심을 시켰지만, 딸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중에 아내가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단다. 그리고 딸이 일어난 일을 이미 선생님에게 이야기 했단다. 장하다,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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