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 816

빚쟁이 아들

엄마 아무 것도 하지마. 라고 말하고 부산으로 갔는데, 엄마는 이미 김밥을 싸놓고, 우리에게 보낼 동치미, 파김치, 김치찌게, 순두부 등등... 을 준비했다. 우리는 7만원짜리 해물탕+칼국수를 사갔다. 마치 건달이 자리값을 받듯, 당연한 듯 주섬주섬 엄마가 싸둔 것들을 받아 왔다. 고개 숙이고 감사해 하고 해야 하는데, 그런 인사는 짧다. 나는 계속 받기만 하고, 엄마와 아빠는 자꾸 주기만 하는데, 늘 더 고맙다는 사람은 엄마와 아빠라 나는 당황스럽다. 내가 아무리 고마워해도, 엄마, 아빠가 나에게 우리에게 고마워 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렇게 평생 빚쟁이로 살게 되는 것일까. 먹은 게 너무 많아 먹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배부른 인간처럼, 받은 것이 너무 많아 받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

Anne pro 2 키보드를 사고 팜레스트를 사고..

이런 게 문제다. 무언가를 살 때는 대개 “사야한다”는 생각으로 산다. 내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조심해야 할 부분”은 열심히 보지 않는다. 사고 나서 포장을 뜯을 때까지는 욕구가 충족되어 가는 기쁨, 그런 것을 느낀다. 뚜껑을 열고 나면, 열정이 식듯, 새제품이 헌제품이 되는 것처럼 빠르게 욕구가 줄어든다. 단점은 후두둑 떨어져서 내 발등을 찍는다. 앤프로2는 포커 배열 키보드다. 숫자를 비롯한 몇 가지 키가 사라진 텐키리스보다 작다. 방향키가 사라졌다. 펑션키도 다른 키와 조합해서 써야 한다. 그걸 알고 샀는데도, 내가 자주 한글문서를 작성한다는 점은 잊었었나 보다. 아니, 생각해보면 잊지는 않았다. 한글 표를 만질 때, 자주 쓰는 키가 ctrl 키와 방향키다. 이 키로는 그 기능을 쓸 ..

일상사/Stuff 2022.04.22

일을 떠나는 퇴근

하루 종일 일을 한 것 같은데, 반드시 끝냈어야 하는 일은 끝내지 못한 것 같다. 그러고 나서 퇴근 하는 길은 뒤가 찜찜하다. 커피잔을 새로 샀다. 일 하는 책상에 앉아서 그런가, 예쁘던 찻잔도 후져 보인다. 그래도 하루에 커피 두 잔을 내려 마시며, 여유를 한껏 부린다. 하루에 한 번은 일부러 밖으로 나가서 학교 건물을 한 바퀴 걷는다. 마치 섬전체가 교도소인 감옥에서 단 한 번 운동을 허가받은 독방죄수처럼, 하늘 높이 뜬 햇볕을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딱 한번이다. 그래도 집으로 오는 길, 내 몸에 내 털처럼 달라붙은 일을 떼어 낼 수 있는 시간이다. 페달질을 하다 보면, 붙어있는 일들을 떼어낼 수 있는 것 같고, 따라오는 일을 제쳐낼 수 있을 것 같다. 일터에서 집까지 빠르게 움직여서 거리를 만들..

꾸준함의 힘

"열심히 하지마." 내가 자주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다. 열심히는 정의하기 힘들고, 계측할 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 열심히 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저, 넋놓고 있지 않도록 꾸준히 해야 할 일을 정하고 해나가면 된다. 그러고 뒤돌아 보면, 내가 무엇을 했는 지 파악할 수 있다. 오늘 학생들과 수업을 위해 작성한 내용이다. 나는 대개 100단어가 안되는 수능 지문을 보면서 제법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난이도가 높은 문제일수록, 지문 만으로는 해독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나름 조사를 하고, 원문도 찾아보고 모자란 부분을 보충한다. 그리고 명쾌하게 경계를 찾아내면 수업 준비가 즐겁다. 수업 준비를 위한 나의 작업흐름(work flow)는 정해져 있고, 수업을 준비하겠다고 마음 먹고, 시간만 있다면(요즘 가장 ..

손목이라는 마음

아마도 어제부터였던 것 같다. 왼쪽 손목이 아프다. 물건을 잃어버리고, 어디에서 잃어버린 것인지 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손목에 나타난 통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찾아보려고 마음 속을 뒤져 본다. 특별히 무거운 것을 든 적이 없고, 어디간에 부딪힌 적도 없다. 떠오르는 이유는 새로산 기계식키보드 뿐이다. 보통의 키보드보다 높이가 높아서 손을 약간 들듯이 한 채로 타이핑을 해야 한다. 정확히 그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생각나는 이유는 그것 하나 뿐이다. 근육이나 관절이 아프면 금세 알 수 있다. 자전거를 탈 때, 안장이 적정한 정도보다 낮으면 오르막을 오르면 바로 무릎에 무리가 온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랜만에 달리기를 하고 나면, 더 안 좋은 발목이 아플 때가 있다. 둘째를 자주 안아 줄 때는 오른쪽..

마리우풀의 보평

출장이 있는 날이라 느즈막히 일어나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다. 밥을 천천히 먹고, 아이들이 일어나 밥 먹는 걸 쳐다본다. 갑자기 시무룩해진 딸은 엄마가 머리를 어떻게 할거냐 묻는데도 답이 없다. 오늘은 아내가 먼저 출근할 수 있도록 해주려고 했는데, 아내가 먼저 출근 하기는 했으나, 아이들 챙기느라 그리 일찍 가지도 못한다. 오랜만에 차를 몰고 학교로 가서 수업에 쓸 자료를 출력하고, 수업에 들어가고, 조는 아이들을 깨우고, 수업이 없는 시간 시험 문제를 편집한다. 3교시 마치고 쉬는 시간에는 출장가면서 마실 커피를 내리고, 4교시가 끝나자 얼른 급식소로 가서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차를 타고 창원으로 달린다. 뒤에 앉는 게 마음 편하겠지만, 안경도 없이 화면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앞쪽에 자..

진주에서 아이와 주말 보내기

주말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이건 모든 부모의 공통된 숙제다. 아이들과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많다. 날씨도 중요하고, 아이의 성향도 중요하고, 부모의 성향도 중요하다. 그리고 나서, 주변에 어떤 아이템이 있느냐도 중요하다. 너무 춥거나 더우면 챙길 것이 많다. 추우면 몸이 움츠러 들고, 갑작스런 온도변화에 대비해서 아이를 잘 입혀야 한다. 요사이 느끼는 거지만, 어른들의 옷이야 워낙 기능이 빵빵해서 걱정이 없는데, 아이들의 옷은 그렇지 않다. 그러니, 더 신경써서 옷을 입히고 여분의 옷이나 방항용품을 준비하는 게 좋다. 너무 더운 날도 걱정이다. 차 안에 들어가면, 실내에 들어가면 시원하기는 하지만, 에어컨이 너무 강하면 아이가 여름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늘..

새로운 그라인더

한 달이 넘게 새벽커피 모임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니고, 실내에서 만나는 것도 아니지만, 오미크론이 급증하면서 새벽커피 모임을 잠정 중단했다. 이제 코로나 신규확진자가 내리막으로 확실히 돌아섰으니 이제 모임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끝났나 싶어도, 끝끝내 끝나지 않던 코로나인데, 이제 일상으로의 복귀가 가능할까? 뉴노멀이라는 용어까지 나왔었는데, 이제 마스크를 벗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면역에 자신이 생겼나 보다. 언제든 코로나 같은 감염병이 또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우려였는데, 그런 걱정은 이제 하지 않는 것 같다. 혹여나 새로운 감염병이 나타난다고 하면, 사람들이 코로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조심스럽게 접근할까 의심스럽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자신..

일상사/Stuff 2022.04.09

오랜만의 출장- 교육연구정보원 - 창원대 - 의령소바

오랜만에 출장이었다. 출장 때문에 수업을 바꿔서 하느라 월요일에는 23456 수업을 연이어 해서 죽을 맛이었지만, 금요일 혼자 가는 출장길은 놀러가는 느낌도 들었다. 일찍 창원에 도착하니 연수원 안 주차장에 차 세울 곳이 여유가 있다. 차를 세우고 연수등록부에 사인을 하고 자리를 잡아두고 다시 나왔다. 오전 내내 앉아 있어야 하고, 운전 하느라 또 앉아 있어야 할테니 좀 걷고 싶었다. 연수원과 연구정보원만 한 바퀴 돌려고 하다가 창원대로 난 길을 걸어 올라 갔다. 벚꽃은 이제 지고 있다. 그래도 멀리 보이는 메타세콰이어도 좋고, 떨어지고 있는 벚꽃도 좋다. 우리 아들은 여기서 처음 혼자 걸었다. 더 젊은 나와 아내가 있었고, 더 젊은 우리 엄마, 아빠도 함께였다. 아들과 숨바꼭질도 하고 편의점에 들러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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