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외면일기

마리우풀의 보평

타츠루 2022. 4. 13. 21:12

출장이 있는 날이라 느즈막히 일어나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다. 밥을 천천히 먹고, 아이들이 일어나 밥 먹는 걸 쳐다본다. 갑자기 시무룩해진 딸은 엄마가 머리를 어떻게 할거냐 묻는데도 답이 없다. 오늘은 아내가 먼저 출근할 수 있도록 해주려고 했는데, 아내가 먼저 출근 하기는 했으나, 아이들 챙기느라 그리 일찍 가지도 못한다. 오랜만에 차를 몰고 학교로 가서 수업에 쓸 자료를 출력하고, 수업에 들어가고, 조는 아이들을 깨우고, 수업이 없는 시간 시험 문제를 편집한다.

3교시 마치고 쉬는 시간에는 출장가면서 마실 커피를 내리고, 4교시가 끝나자 얼른 급식소로 가서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차를 타고 창원으로 달린다. 뒤에 앉는 게 마음 편하겠지만, 안경도 없이 화면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앞쪽에 자리를 잡는다. 2시간 좀 넘게 연수를 듣고, 간식을 받아들고 집으로 온다. 저녁을 먹고, 간식을 먹고,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딸이 피아노 치는 것을 본다.

내일은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하는데, 며칠 전부터 자전거 뒷드레일러 변속이 부드럽지 않아서 그걸 손 보러 나갔다 온다. 손 보는 김에 체인을 닦고 기름칠도 한다. 이제 일기를 써야지 생각하고 앉아서 일기장을 꺼냈다가, 아이패드를 열어 뉴스를 잠시 본다.

그리고 이 장면

마리우풀 전투

나의 이렇게 편안한 하루는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그저 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진주에 사는 남자인 나는 총도 필요없고, 탄약 떨어질 걱정하지 않고 오늘 편안히 잘 수 있다. 너무나 무방비로 잠든다. 그리고 같은 하늘 아래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때마침 오늘은 세월호 8주기 되는 날이다. 나는 갑자기 어디가서 좀 울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심정이 된다. 인류애 따위는 없는 인간이지만, 억세게 운이 좋은 인간이라 미안한 마음이 된다.

인류의 진보는 누군가의 희생과 그 희생을 밑거름 삼아 만들어진 법 제도 덕분에 가능했다. 선지자도 선각자도 있었지만, 결국 그를 알아보고 지지하고 함께 싸운 민중이 있기에 가능했다. 힘겹게 쌓아올린 진보도 미치광이 한 둘 때문에 이렇게 쉽게 상처받는다.

무엇을 위해 오늘 기도해야 할까. 전투가 끝나기를 바라고,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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