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순간에 뜻하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그건 우연이거나 기적이다.
오늘 아침에는 요즘 매일 그런 것처럼, 자전거를 금산교를 지나서 새로 난 자전거 도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야 해서 힘주어 페달을 밟는 구간, 영상 3, 4도에서 내 밭은 숨이 따뜻한 입김이 되어 나온다. 내 앞에 있던 까치는 총총 걷다가 폴짝 뛰어서 내 왼쪽으로 빠져 나가 앉았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까치가 내뱉은 입김을.
자전거를 세운다고, 다시 뒤돌아 본다고 그 입김을 다시 볼 수 없다. 앉아서 까치가 다른 입김을 내놓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 그래서 아무 것도 보지 않은 척하며 나는 계속 페달을 밟는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장면을 잊지 말자." 일기를 쓰다가 가까스로 그 장면을 생각해 냈고, 내 생각은 왜 그 장면이 인상 깊었는 지에 대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까치의 입김은 낯설다. 살아있는 것이긴 하나, 내가 보게 되는 까치의 모습은 평평하다. 날고 있는 까치, 울어대는 까치. 이제는 참새보다 더 자주 보게 되는 새. 하지만 내가 볼 수 있는 모습 밖에서, 까치가 어떻게 사는 지 나를 모른다. 까치가 나를 모를 것처럼, 나도 까치를 모른다.
내게 까치란 동물은 날거나 울거나 하는 모습이다. 그 이상의 까치의 모습은 없어서, 결국, 까치의 많은 생활상이 나에게는 낯설어 보일 게 분명하다. 오늘의 입김처럼.
살아있는 것은 모두 소중하다고 쉽게 말하지만, 쉽게 말한다고 해서 쉬운 게 없다. 내가 까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내가 내 학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같을 리가 없다. 내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 같을 리가 없다. 생명은 소중하지만, 그 소중함에도 차이가 있다.
나의 동질감, 연민, 공감이란 나와 비슷할 수록 더 발휘된다. 물론 일단 나에게서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발휘 될 게 분명하다. 연민이나 공감이 더 넓게 퍼지려면, 나는 더 예민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까치의 입김을 살필 수 있는 인간. 비둘기의 고단함을 생각하는 인간, 쥐의 궁핍함을 생각하는 인간.
정서의 확장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든다. 높은 산은 골이 깊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다른 생명에 공감하고 타인의 슬픔에 예민할 수 있다면, 기쁨도 즐거움도 더 깊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막장드라마 따위에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다면, 내 감정은 더 좋은 곳에 더 많은 사람에게 쓰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본 게 정말 까치의 입김일까. 그 곁에 사람도 없고, 다른 짐승도 없었으니 까치의 것이 맞을 것 같긴 한데... 내일 아침 다시 확인해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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