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외면일기

퇴근과 출근 사이

타츠루 2022. 4. 4. 20:41

생일인 것으로 생각되는 하루는 몇 개의 메시지로 시작된다. 나이키에서 생일이니 10% 할인을 해주겠다며 연락을 했다. 이제는 가지 않는 동네미용실에서 생일을 축하한다며 메시지를 보냈다. 분명히 작년에 카카오톡 생일 알람 설정은 꺼둔 것 같은데, 오늘보니 다시 켜져 있다. 얼른 달려가서 설정에서 그걸 지운다. 오늘은 내 주민등록증 생일이다. 꽤 오래전(?) 오늘 내가 태어나기는 했겠지만, 나는 집에서 음력 생일을 지낸다.

특별히 생일날이라고 뭔가 특별한 기분 따위는 들지 않을 것이다. 나이는 새해가 되면 먹어 버리고, 생일이 지난다고 내 나이를 다시금 인식하게 되지 않는다. 다행한 일이라 생각하는데, 나는 늘 내 나이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요즘에는 더 그렇다. 부모님의 나이듦이 걱정이고, 아이들의 자라는 속도에 깜짝 놀란다. 부모님의 나이듦을 막을 수 없는 건, 아이들의 자라는 속도를 막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보다 부모님이 더 빠르게 나이 드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그러니 내 나이는 생각할 것도 없고, 걱정할 것도 없다.

출장이 있어서 수업을 당겨 하다 보니, 오늘 수업은 2, 3, 4, 5, 6. 다행인지 아주 급한 업무는 없었지만, 나는 보고 싶지 않은 사진을 치우는 것처럼, 해야 할 일의 마감일을 내일로 바꾼다. 매일의 나에게 일을 맡기고 퇴근했다.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퇴근해서, 다른 식구들이 먹고 있는 밥상에 바로 앉는다. 물만두, 삶은 양배추, 오징어실채 볶음, 김, 김치, 콩나물국, 쇠고기장조림으로 밥을 먹고 앉았는데, 딸이 사또밥이 먹고 싶단다. 사또밥이 인기가 있어서 인가 아니면 인기가 없어인가 편의점 몇 군데를 돌아도 팔지 않는다. 결국 롯데슈퍼에서 사서 집으로 간다. 노브랜드에서 나쵸콤보라는 걸 사며, 맥주 한 잔 해야 겠다 생각한다.

노브랜드 나초치즈 콤보

나쵸는 얇디 얇다. 진정한 나초는 이런 것인가? 치즈에 찍어먹으려는 데 바스라 진다. 뜯어 놓고 보니 맥주는 칭따오다. 맛은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중국을 생각하며 씁쓸해 진다. 중국의 여러 활약 덕분에 외국어로 중국어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줄어들 정도다. 중국어를 가르치는 아는 선생님 생각이 났다.

그래도 저 큰 맥주를 후다닥 마시며, 오늘은 9시 30분이면 잘 준비를 마쳐야지 생각한다. 내게 충분한 수면시간은 8시간 정도이고, 아침에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잘 먹고, 잘 자는 일. 모래성처럼 쌓인 일은 퍼내는 느낌이 없고, 자꾸 내 발목을 잡아 먹는다. 그러니 내게 제일 필요한 건, 잘 자고 잘 먹는 일.

출근과 퇴근 사이에는 일이 있다. 퇴근과 출근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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