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외면일기 265

2023년 회고

가족 회의에 앞서 올 한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리해봤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사진을 살펴보면서 나에게는 또 어떤 일이 있었나 정리했다. 적어도 사진 속의 나는 가족과 함께 무언가를 하거나, 학교의 일 때문에 어떤 일을 하거나, 나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집, 일터, 제3의 장소라는 분류를 통해서 파일 정리에도 활용하고 있다. 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 한 해를 정리해보는 게 좋겠다. 키보드를 꺼내어 이 글을 쓰기 전에 우선 일기에 써봤다. 한 해의 마지막 일기장을 채우려고 하니, 일단 아쉬움부터 밀려온다. 더 했어야 하는 일, 더 잘 했어야 하는 일을 정확히 떠올릴 수 없으면서도 아쉬움이 가장 큰 정서로 남았다. 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 하는데, 아쉬움을 가지며 나를 채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최참판댁에서, 매일의 성취

여름 같은 날씨다. 반팔에 바람막이 정도만 입어도 춥지 않았을 날이다. 아주 오랜만에 이웃에서 가깝게 지내는 가족과 하동으로 향했다. 쌍계사도 가보고, 평사리도 가보고, 동정호도 가봤지만 최참판댁에는 아직 가보지 않았었는데, 오늘 가게 되었다. 아이들은 최참판댁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넓은 뜰에서 투호도 던지고 재기도 차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했다.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도 좇고, 잡기 놀이도 했다. 그 사이 잠시 혼자 최참판댁 안을 살펴 보았다. 토지를 읽었어야 하는데, 여기 오니 당연히 읽었어야 했는 데 읽지 않은 것 같아서 좀 부끄러워 진다. 토지만 읽지 않은 것이 아니다. 태백산맥도 읽지 않았고, 아리랑도 읽지 않았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니지만, 토지만큼은..

추석날 만나는 고향 친구

햇수로 35년은 되었을 친구를 만났다. 고향친구라고 해야 이제 별로 남지 않았지만, 떠나왔다기 보다는 멀어졌다. 나는 반드시 자주봐야 ‘친구’라고 기억하지 않지만 관계란 자주 봐야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아이들 몸이 안 좋아지면서 서울여행도 급히 끝내고 본가에도 가지 못하게 되면서 부산에서 보기로 했던 이 친구를 보지 못할 뻔 했다. 우리 부모님이 이사를 한 같은 동네에 그 친구의 부모님도 살고 계셨다. 어릴 적 집 앞에서 만나듯 오늘은 걸어서 나와 만났다. 나 혼자서 부산에 갔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부산에 가야 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을 부산에서 먹었다. 차례도 지내지 않는데, 우리 먹으라며 나물, 튀김, 탕국까지 했다. 유튜브를 보고 배웠다며 새로운 스타일의 ..

좋아하던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리스트'가 끝나고..

악당을 연기하는 기분은 어떨까? 매력적인 범죄자가 있을까? 적어도 James Spader 가 연기한 범죄자는 매력이 있었다. 와인부터 예술작품까지 취향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으며,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감쪽같이 선물을 준비하고, 그러면서도 전세계에 펼쳐져 있는 범죄조직을 관리하는 사람. 나는 제법 많은 밤을 그가 출연한 The Blacklist를 보면서 보냈다. 2013년부터 제작 방영되었다지만 나는 한참 후에 이 시리즈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넷플릭스에서 매주 월요일 새로운 에피소르로 나오기를 기다렸다. 초반과는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졌고, 제작비도 줄어들었는지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자원도 너무나 줄었다. 그래도 James Sapder 혼자서도 극을 끌어나갈 수 있었다. 줄거리 ..

8월 넷째주 사진들

독서당 정글북에서 지난 주말을 보냈다. 복층형방은 겨울에나 좋을 것 같다. 더운 기운이 몰려들어 밤에 잠을 잘 수는 없다. 나무 그늘아래 있는 9호방이 좋아 보이더라. 그래도 브롬톤을 가지고 가서 잘 놀았다. 아들을 타게 해봤는데, 안장만 낮추고도 잘 타더라. 브롬톤을 타다보면 익숙해진다. 장마 때에는 머다가드가 있는 브롬턴만 타다 보니 오랜만에 제이미스 오로라에 앉아 출근을 하려니 자세가 어정쩡하다. 금요일 멀고도 먼 서울 출장길. 브롬톤을 대동했다. 때마침 타이어가 약간 찢어졌길래 BB5구경도 했다. 고교학점제.. 갈 길이 멀다. 서울에는 차도에 ‘자전거 우선도로’라고 쓰여 있었다. 차도를 달리는 게 좀 겁은 났지만, 그래도 좋더라. BB5 에서 나와 서울역으로 가는 길, 한강을 따라 달린다. 서울 ..

8월 셋째주 사진들

독서모임가서 연필을 선물 받았는데, 내 필통은 너무 속좁다. 연필이 삐져나왔다. 이번주는 비예보가 꾸준히 있어 브롬톤으로만 자출을 해야 했다. 비는 오지 않았다. 학생 대상 강의 때문에 진명여중에 갔었다. 분위기가 좋았다. 중학교 근무할 때 참 재미있었지. 바쁘면 글씨가 엉망이 된다. 종치면 바로 마친다!! 내 모토다. 그러기 위해 서둘렀다지만, 글자의 형상이 아니네.

태풍 카눈이 오지만 편안하기만 한 새벽

태풍 카눈은 오늘 9시 통영에 상륙한다고 한다. 신식 아파트인 우리집에서는 밖에 비가 쏟아져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나는 선풍기 소리를 퍼붓는 빗소리로 착각하고 몇 번 눈을 떴다. 어제 저녁 먹은 수박 탓도 있다. 지금 4시 56분, 바람도 많이 불고 비도 많이 온다. 점멸하는 신호등이 태풍에 대비하라는 신호 같기도 하다. 태풍을 대비해서 미리 대피한 사람들도 있다는데, 걱정없이 방에 누워 밖을 구경하고 있으니 감사한 마음이다. 아들은 오늘도 일찍 일어났고 학원 숙제를 하고 있다. 나도 다시 잠들기를 포기하고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미국 여행기를 마무리 해야 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마실 녹차를 준비하면서 아들에게 먹일 토스트도 준비한다. 아들은 녹차를 마시지 않는다. 약간 떫은 맛이 싫을 만도 하다...

오늘만 살아선 안된다

갑자기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생각하고 있지 않고 생각하게 되지도 않았을 사람. 이름을 잊고 그 얼굴을 잊어가던 사람. 그런 사람이 있는데, 누군가와 이야기하다가 결국 생각나는 사람. 몇 해 전 같이 근무했다가 올해 또 같이 근무하게 된 선생님이 있다. 지난 학교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우리는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꺼내고 얼굴도 떠올리고 그들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했다. 누구는 이름만 누구는 성만 기억날 때도 있지만 결국 같이 있던 사람들을 많이 기억해 낸다. 그 선생님을 기억해내는 데는 시간이 더 걸렸다. 그 선생님과는 안 좋은 기억이 있다. 같은 업무 부서였다. 나는 배구하다가 새끼발가락이 부러지게 되었고 수술까지 하게 되어 학교를 비웠다...

나의 오버나이트 오트밀

언제부터 오트밀을 먹기 시작한 지 몇 달이 되었다. 이제는 약간 종이 씹는 것 같은 식감에도 익숙해 졌고, 달지 않은 식사에도 굉장히 익숙해졌다. 왜 오트밀을 시작했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 아침을 차려 먹기 번거롭다는 것. 귀찮다고 말하려니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귀찮다고 말하는 건 어딘가 잘못된 것 같아서 저어된다. 하지만 밥 한 끼를 먹으려면 반찬도 몇 가지 있어야 하고 국도 있어야 한다. 아침밥을 위해 저녁마다 반찬을 하는 것도 아니라 번거로운 일이 여러가지다. 그렇다고 매일 반찬을 사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도 엄마 밥 혹은 집밥에 대한 향수가 있다. 엄마가 칼로 야채 다듬는 소리, 된장찌개 냄새에 눈을 뜨고, 눈을 부비며 앉아 맛있게 아침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밥을 먹어야 식..

합천에서 찾은 데이트의 추억

아마도 아내와의 첫 데이트는 영화관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해인사였던 것 같다. 그 겨울에 왜 해인사에 갈 생각을 했던 것일까. 아내와 나는 진주에서 버스를 타고 해인사에 갔다. 하늘은 흐렸고, 우리는 추웠다. 해인사 버스 터미널에 내렸을 때 호객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고, 우리는 식당 한 곳으로 들어가서 아마도 산채비빔밥을 먹었을 게다. 그리고 해인사를 보고 내려왔을 때, 다시 몸은 차가워졌다. 그래서 터미널 옆 매점으로 들어갔다. 석유난로가 있었고, 따뜻한 무언가를 얻어 먹으며 기다리다가 버스를 타고 진주로 왔다. 아이들이 생기고 합천을 해인사를 여러번 갔다. 그런데 해인사 버스터미널까지 올라간 건 그 데이트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그렇게 아이들과 맛있는 밥을 먹었다. 아내와 나는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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