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카눈은 오늘 9시 통영에 상륙한다고 한다. 신식 아파트인 우리집에서는 밖에 비가 쏟아져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나는 선풍기 소리를 퍼붓는 빗소리로 착각하고 몇 번 눈을 떴다. 어제 저녁 먹은 수박 탓도 있다.
지금 4시 56분, 바람도 많이 불고 비도 많이 온다. 점멸하는 신호등이 태풍에 대비하라는 신호 같기도 하다. 태풍을 대비해서 미리 대피한 사람들도 있다는데, 걱정없이 방에 누워 밖을 구경하고 있으니 감사한 마음이다.
아들은 오늘도 일찍 일어났고 학원 숙제를 하고 있다. 나도 다시 잠들기를 포기하고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미국 여행기를 마무리 해야 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마실 녹차를 준비하면서 아들에게 먹일 토스트도 준비한다.
아들은 녹차를 마시지 않는다. 약간 떫은 맛이 싫을 만도 하다. 엊그제는 처음으로 깻잎절임을 만들었다. 1900원짜리 깻잎 한 묶음을 사니 보름을 먹을 만한 절임을 만들 수 있었다. 불도 쓰지 않고 집에 있는 재료만 써서 만들었는데 풀이 다 죽기 전에 먹어보니 알싸한 맛이 좋다. 집에서 엄마가 해주던 절임이 생각났고 잠시 내가 대견하고 또 항시 엄마에게 감사하다.
아침에는 당분이 높은 게 좋지 않겠지만, 아들은 누텔라를 좋아한다. 누텔라만 발라서 주기에는 심심해서 오트밀에 넣어 먹으려고 산 갈아놓은 견과류를 집어 넣었다.
아들은 학원 숙제를 조금 하더니, 쉬하러 나온 동생을 따라 동생방으로 간다. 어제 딸의 방에 침대를 넣었다. 아들은 새 침대가 탐나고 부럽다. 아내가 깬다면 아이들을 다시 재우겠지만 그냥 둔다. 요즘 특히 오빠가 자주 쌀쌀맞게 굴어서 싫다는 딸에게 '오빠와의 편안한 시간'도 필요하다. 아들이 오빠로써 잘 해주길 바란다.
상륙하는 태풍이 발을 딛자 마자 힘이 빠져 조용히 우리 나라를 지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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