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같은 날씨다. 반팔에 바람막이 정도만 입어도 춥지 않았을 날이다. 아주 오랜만에 이웃에서 가깝게 지내는 가족과 하동으로 향했다. 쌍계사도 가보고, 평사리도 가보고, 동정호도 가봤지만 최참판댁에는 아직 가보지 않았었는데, 오늘 가게 되었다.
아이들은 최참판댁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넓은 뜰에서 투호도 던지고 재기도 차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했다.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도 좇고, 잡기 놀이도 했다. 그 사이 잠시 혼자 최참판댁 안을 살펴 보았다.
토지를 읽었어야 하는데, 여기 오니 당연히 읽었어야 했는 데 읽지 않은 것 같아서 좀 부끄러워 진다. 토지만 읽지 않은 것이 아니다. 태백산맥도 읽지 않았고, 아리랑도 읽지 않았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니지만, 토지만큼은 읽고 싶다는 생각이 오늘 다시 들었다.
오랜만에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 나의 마음과 눈을 끄는 게 뭐가 있나 살펴보다가 이 사진을 찍었다. 대충 딱 맞는 것 같지만 대청마루과 기둥을 맞춰 만든 자리에 틈이 있다. 매일같이 학교가 어떻게 하면 잘 돌아가려나 라는 내 주제가 아닌 주제에 고민을 하는 나에게 힌트가 되어준다. 딱 맞는 건 터진다. 하나의 기능을 위해 혹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틈이 필요하다. 이 틈은 무엇을 은유해야 정확할까? 시간이라는 틈, 친한 관계 사이의 틈, 과업과 과업 사이의 틈. 늘 주먹을 꽉 쥐고 있을 수 없으니, 일부러 주먹을 풀어낼 시간이 필요하다. 학교에는 그런 기회와 시간이 있을까.
뛰어난 장군은 전쟁에서 이기기 전에 전투에서 이기리라. 전투에서 이기면 분명 축하를 했을 것이다. 결국 전쟁이 어찌 될지 모르더라도 하룻밤 전투에서의 승리는 만끽할 만하다. 나는 학교에서의 작은 승리, 작은 기쁨을 누리고 있을까. 그런 방안이 필요하다. 학교의 하루에 필요한 것은 그날의 계획이 아니라, 그 날의 성취가 아닐까. 매일 매일의 성취를 기록하고 축하할 기회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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