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3. 발행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어떤 것이 더 위험할까? 의심과 확신.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나만 남자, 나머지는 여자. 나보다 먼저 교직에 들어왔으니 경력도 더 오래 되었다. 집에서는 아이를 키우며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친다. 중학교에 근무하는 친구,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친구.
몇 년 만에 만나는 거냐는 당연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일단 배를 채우고 커피와 자몽차를 시키고 일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학교폭력으로 엉망이 되어가는 교실 이야기, 교권을 찾아보기 힘든 학부모의 교권 침해 사례, 그러다가 수업을 준비하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학교폭력이며 교권침해 사례보다도 내가 관심을 가진 건 수업을 준비하는 마음에 대한 고민이었다. 고등학교에 오래 근무하다가 중학교로 옮겨가 이제 3년째 수업을 하고 있는 친구는 수업을 준비할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단다. 교과수업만 18시간이고, 교과외 2시간 수업이 더 있다. 내일 4시간이나 5시간 수업을 해야 한다. 한 반에 일주일에 세 번. 나머지 시간은 모두 수업 준비로 보내도 힘들텐데, 수업과 수업 사이는 담임이며 업무로 가득차 있다. 교실 풍경은 왠만하면 조별활동 혹은 학생 중심이 되는 활동으로 채우는 분위기라 그만큼 노력과 수고를 들여야 하는데, 그 준비가 만만치 않다. 교과서 하나 들고 들어가서 수업하고 나가셨던 예~전의 선생님들은 정말 수업에 있어서는 고민도 수고도 별로 필요하지 않은 세대를 살아가지 않았겠구나까지 생각하게 된다.
수업이 많고, 준비할 양이 그만큼 많은 것이 고민의 핵심은 아니었다. '내가 가진 역량'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내 역량에 대한 의심. 나는 의심이 확신보다 건강하다 생각하고, 고로 확신이 의심보다 위험하다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 최신의 학문적 경향이나 교수방법은 아니더라도, 그나마 '최근의' 교수방법이나 지식을 탑재하고 현장에 배치된다. 간신히 교과지식과 교수방법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만 가지고 투입되어, 모든 학교 생활을 온 몸으로 이겨내야 한다. 그래도 젊은 패기와 약간의 무모함, 혹은 자신감, 주변으로부터의 격려 덕분에 생활을 이어간다. 에너지를 쏟아붇고, 기대를 주고, 그 기대의 일부는 보람으로 나머지는 실망으로 되받아 다시 내일을 준비한다. 책도 읽고, 연수도 다닌다. 방학이라고 여유는 없다. 이런저런 연수에 쫓아다니려면 온전히 일주일 휴가를 지내기도 어렵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제 중견 교사의 대열에 들어선다. 정년퇴직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 50을 넘으면 '원로'교사의 자리로 밀려나게 된다. 40대는 어중간하다.
'선뜻 누구에게 묻는 게 힘들어 진다' 는 친구의 말에 '나도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휴직과 복직을 번갈아가면서 하는 중이라 나는 업무중에 기억나지 않는 게 많고 되도록 물어보려고 한다. 하지만, 이 정도는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으면 좋을텐데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하다. 하지만, 학교의 업무는 모두 기억하기에는 그 내용과 절차가 방대하다. 그리고 작은 변화가 변화무쌍하다. 생활기록부 입력할 경우, 년도를 기록할 때, ~가 아니라 -를 사용하라는 지침까지 내려올 정도다. 해마다 바뀌는 그런 세부사항을 기억하기는 불가능하고, 기억하는 것이 무용하다.
배움이 가장 절실한 시기가 있을까? 교사라면, 현장으로 발령받기 전이 가장 많은 양의 지식을 습득하고 실천해 봐야 한다. 하지만, 임용고사의 합격은 현장을 위한 것과 딱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니다. 교실 현장에 대한 고민은 결국 교실에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그 시점에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배우고 실천하면서 실수하고 실망하기도 하면서 성장한다.
40대에 들어서면서는 스스로 완숙함을 느끼면 좋겠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수많은 성공사례와 우수교사들이 있는 것 같지만, 성공사례만 모아두니 모두 쉽게 수업에서 성공감을 갖는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
친구의 고민에 대해 생각하면서, '교사공동체'에 고민하게 되었다. 담임업무든, 교과든 공통의 고민을 가진 사람이, 서로의 고민을 듣고 서로의 성장을 돕기 위한 공동체가 필요하다. 교사는 수업을 하러 들어가지만, 원활한 수업이 안된다면, 교실은 고립의 공간이 된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학생들을 이끌어야 한다. 그런 고립이 반복되어서는 안되고,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은 동료집단이다. 수다로 스트레스를 푸는 동료모임도 있겠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수업에서의 불만족은 결국 수업에서의 만족으로만 해소될 수 있다.
친구들에게 대뜸, 우리가 떨어져 있더라도 전문가공동체를 만들자 말하긴 했지만, 어찌해야할 지 방법은 생각하지 못 했다. 하지만, 답이 유일하다면, 일단 그 답을 밀고 나가야 할 수 밖에. 멀지 않은 때, 친구들과 다시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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