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

네 개에 1400원 정도.

타츠루 2019. 2. 26. 23:52

원글 : 2018.08.15. 발행

네 개에 1400원 정도. 우리 동네 롯데슈퍼에서는 이 제품을 자주 반값 판매한다. 요플레에는 클래식도 있고 플레인도 있다. '갖은 과일'이 안 들어갔다는 점에서 두 제품은 같은데, 어떤 기준으로 클래식과 플레인을 구분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롯데슈퍼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제품.

하나당 300원 정도다. 대단한 가성비다. 가성비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 결국 가격이란 것은 소비자가 결정할 수 없고, 품질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도도 소비자로서는 한계가 있다. 어떤 것을 사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는 '성능'을 가진 것만 사지는 않지 않은가. 음식은 대개 비쌀수록 맛있다. 비싸다고 무조건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싼 것에서 맛을 찾기는 어렵다. 이건 취미를 위한 갖가지 장비 구입에도 통한다. 아무튼 가성비란 자주 '지름'을 합리화하려는 방편으로 사용되거나, 더 비싼 것을 사고 싶지만 돈이 없는 자의 변명으로 사용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 '가성비로는 최고다'

이 요구르트가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을 해봤다.

덜 달다. 요즘 사먹는 것 중 달지 않은 것은 우유와 물 뿐인 것 같다. 요구르트에 갖은 과일맛이 들어가면서 더 달아졌다. 요구르트에는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다. 딸기, 복숭아, 블루베리.... 오렌지가 들어가는 걸 본 적이 없는 걸 보면, 신맛이 나는 과일과는 궁합이 맛지 않는가 보다. 클래식은 과일맛이 들어가질 않아서 덜 달다. 과학적인 이유는 아니다. 플레인이라고 해놓구선 다른 '안플레인' 요구르트만큼 달게 만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 요구르트의 식감은 굉장히 뛰어나다. 과일알갱이가 들어가질 않아서 식감은 온전히 요구르트의 질감에서 비롯된다. 언뜻보면 그 밀도는 순두부 같다. 하지만, 씹는 느낌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요구르트는 두부보다 더 '한 덩어리'라는 느낌이 든다. 보통 숟가락으로 퍼먹는다. 한 입 넣으면, 혀를 착 감싼다. 그러고도 씹으면 저항이 있어서 좋다. 마시는 음료라면 식감따위가 없겠지만, 요구르트는 분명 씹어먹는 음식이다. 그런 식감이라면 푸딩에 가깝지 않나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푸딩은 단맛에 초점을 맞춘 디저트이니 분명 종류가 다르다. 어쨌든 이 녀석은 요구르트다.

오늘 아들과 롯데슈퍼에 갔다가 이 요구르트를 집어 들었다. 최근에는 장보러 거의 가지 않기 때문에 오랜만이었다. 이 요구르트를 집어 들었고 집에 들어오자 마자 하나 까서 먹었다. 잠시, 충분히 음미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내 작은 감각이라도 깨어나게 만드는 자극을 만나는 순간이 즐겁다. 그 순간은 꽤 길게 느껴진다. 요구르트는 뜯어서 한 입 맛보며, '내가 기억하던 맛이 이 맛이지'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은 꽤 길게 느껴진다. 그걸 맛보던 모든 순간을 다시 리플레이하는 기분이기도 하고, 거기에 새로운 녹화분을 추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월든은 음식을 먹을 때는 음식만 먹고, 숲을 걸을 때는 숲을 걷기만 하라고 했다. 그런 것이 최근 유행한 Mindfulness 이지 않은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만 마음을 다해 집중하는 일. 그래야만 그것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어떤 자극을 상투적인 단어로 말하고, 그 말을 통해 기억하는 일은 부질없고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재미있는' 영화만 봐서는 그 '재미'가 무엇인지 도대체 규정할 수 없다. 음식은 '맛있다'로 표현하고, 책은 '교훈적이다'라 말하면 그 음식을, 그 책을 기억할 방도가 없다.

요구르트 하나 더 까먹는다. 두 개 값으로 이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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