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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노을과 자퇴길

해질녘 퇴근은 따뜻하다. 칼퇴가 제일 즐겁지만, 아름답기는 해질녘이 그렇다. 요즘에는 7시 30분이 해지는 시간이다. 밤인데도, 하늘은 저녁이라 마음도 몸도 헷갈린다. 오른쪽 바지단이 펄럭여서 두 번 접었다. 이렇게 그냥 바지를 입고 타다간 금방 못 쓰게 될텐데. 엉덩이를 보면, 안장에 닿는 엉덩이뼈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기름값이 출렁여도 자전거 타는 나는 일단 기름값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출장만 없다면, 아예 차도 없어도 될텐데. 늠름하고 믿음직스러운 나의 출퇴근 머신도 한방. 하늘보다 강이 멋지다. 하지만 하늘이 없다면, 멋진 강도 없다. 세상은 음과 양으로 설명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생각은 굉장히 냉철한 관찰에 의한 것이 아닐까. 자연도 사람 사이의 관계도 밀고 당기기..

일상사/자전거 2022.05.19

배제의 교무실

늘 도움이 되는 글을 볼 수 있는 서울비님의 블로그. 대개 생산성에 대해 잘 다루시는데, 오늘은 교무실의 배타적인 문화에 대한 글이 있다. https://seoulrain.substack.com/p/014-?s=r 이란 책을 읽고 정리한 생각인 것 같은데, 아래 부분에는 공감하게 된다. "사람은 안 바뀐다"를 습관적으로 공유하는 조직이 처하게 되는 위기 상황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무례하고, 불성실하며, 음흉하기까지 하다고 손가락질 하면서 특정한 누구누구와는 앞으로 더 이상 협력할 수 없다고 말하곤 하지요. 학교 사회는 "사람의 변화 가능성"에 기반해야 한다. 학교에서 가장 많은 규모를 차지하는 학생들이 그렇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면, 학교의 존재 가치란 무엇인가? 규율과 규칙으로 통제하고자 한다면, ..

양귀비 출근길

활짝 핀 양귀비. 출근길, 치마를 펼친 것처럼 바람에 하늘 거리는 양귀비 꽃. 닥종이 같은 꽃잎이 햇볕에 반쯤 속을 드러낸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는 길,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 차를 탈 때보다 덜 서두르는데도, 웬만해서는 자전거를 멈추게 되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은 멈춰서 햇볕에 제 아름다움을 뽐내는 양귀비 꽃을 잠시 본다. 세상에는 내 관심을 바라는 대상이 많고, 나도 그렇다. 사람들이 꽃 같아서, 내 눈도 손도 바빠 가끔은 피로해서 그냥 나도 길가에 핀 꽃이되 눈에 띄지 않는 꽃이었으면 한다.

고등학교 영어수업 모둠 활동 - 단어 찾고, 문장 읽기

드디어 모둠 수업을 해보고 있다. 수업이 강의식으로 흐를수록, 학생을 통제하려고 애쓸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학생을 깨워도, 결국 강의가 시작되면 잠들게 되기 쉽다. 독해를 하려면, 결국 스스로 영어를 해석해 봐야 하겠지만,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에서 수업을 듣기만 해야 한다면, 하루 종일 적정 수준의 집중력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지난주부터는 전략을 좀 바꾸고 있다. 수업 시간 수업을 듣기 위해서 참아야 하는 시간을 줄이고, 참여 하는 시간을 늘리려고 하고 있다. 참여가 많으면... 진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몇 가지 전략을 섞어서 진행하고 있고, 상당히 성공적이라 생각한다. 우선 더 많은 학생이 수업에 참여하고,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더 활기차게 참여한다. 진..

아들과 딸로 채우는 주말

주말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정말 소중하다. 집에 있으면 티격태격하고, 심심해 를 연발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같이 나서면 다 좋은 시간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가족이 다 같이 연암도서관에 갔다. 코로나 동안 새롭게 단장한 도서관은 이용하기가 더 좋아졌다. 나도 책을 두 권 빌리고, 아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빌리고, 딸도 학교 독서 인증제 때문에 필요한 필독도서를 몇 권 빌렸다. 몰려오는 잠을 참아가며 책을 읽다가 딸이 음료수 사달라고 해서 레모네이드를 하나 주문해서 나갔다. (인스타는 하지 않지만) 인스타그램 감성의 사진을 찍어볼까 싶어서 딸에게 마시는 음료를 좀 들어 달라고 했다. 저 작은 손. 음료를 찍어뒀다 생각했는데, 딸의 손을 또 사랑하게 된다. 딸은 마시다 음료를 남겼고, 남은 건 ..

대학동기 회합의 역사적 의의

대학동기들을 근 2년 만에 만나고 돌아가는 길. 서로의 최신 소식을 업데이트하며 기억을 되돌리려 애쓴다. 부모님의 연세를 묻고, 아프신데 없는지 듣는다. 너는 어디 아픈데 없느냐 묻고 나이듦의 팍팍함에 대해 털어놓는다. 너의 새치는 어찌 앞머리만 점령한 것일까, 너는 언제 어느새 염색없이는 견딜 수 없게 되어 버렸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치 식순이 정해진 결혼식의 차례를 지키는 것처럼, 우리는 같은 학번 여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아 본다. 순희, 영희, 지영… 끝끝내 생각나지 않을 이름을 담배 태우러 나갔다가 기억해 내서 들어온다. 그래, 19명 여학생, 7명의 남학생. 후배들 안부까지 묻고 들으며, 각자 가진 조각을 꺼내어 안부의 큰 그림을 누벼본다. 누벼도 누벼도 결국 넝마같은 현재. 대강 마무리..

익룡발자국전시관에 거북이

익룡발자국전시관에 발자국이 있는 작은 짐승들이 왔다 거복이, 도마뱀, 배.. 이름은 들었으되 기억은 못한다 4살 난 거북이 앞에 자리를 잡고 지켜본다 고개를 박고 물을 마시는 거북이 한 꿀떡 두 꿀떡 넘어가는 시간이 한 4초 입에 담은 물이 목을 넘어가는 게 보인다 입에서 목까지의 거리는 3초 이상 이 글을 때리며 내가 커피를 넘기는 시간은 촌급 나는 얼마나 쾌속으로 사는가 느리게 사는게 장수의 요령이리라

쓴 자리

일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때가 있다. 학교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재미를 위한 건 적다. 오늘 앞자리 선생님이랑 이야기 하다가, 쏜살같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각자 글을 쓰고 다시 헤어지는 모임은 어떻겠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는 페트리코에서 시작되었다. 페트리코는 비오는 날 흙에서 나는 냄새다. 비를 맞으면 땅에 있던 박테리아가 향을 뿜어낸다. 오늘은 오랜만에 비가 왔고, 비오는 날 땅냄새 이야기를 하다가, 페트리코를 검색했고, 그걸로 글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렇다면 글을 쓰는 모임은 어떤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자의식이 강하면, 자유로운 글이 어렵고, 그래서 교사는 글쓰기를 꺼리고, 생리를 하는 여성은 담고 버리는 과정을 통해 남성과는 다른 순환을 가지고, 덕..

고등학교 영어교사에게 독해수업이란?

우선 독해의 넓은 의미를 영어 수업 시간에 발견하기 어렵다. 독해란 영어 문장을 읽고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글을 읽고, 문맥을 이해하고, 나의 삶에 비추어 배우거나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고등학교 영어수업의 독해란 어떤 형태로든 결국 평가와 대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수업 방식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대입에 도움이 되느냐" 영어가 절대평가가 되었어도 이런 변명은 바뀌지 않았다. 절대평가가 되었다고 1등급이 수두룩하게 나오지 않는다. 이건 난이도 조절에 성공한 것일까, 학생들의 학업성취가 낮아진 것일까. 아니면 절대평가 전환이 무색하게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것인지도 모른다. 소위 창의적인 수업을 하다가는 시험 진도에 허덕일 수가 있다. 시험 진도를 확보하려..

appeal 의 뜻에 대해 어필해보기

어필하다? appeal? 수업을 하는데, appeal to 라는 표현이 나왔다. 대개 학생들이 보는 지문에서 appeal 은 늘 to 와 함께 나온다. 그리고 책들은 예외없이 그 뜻을 "~에 호소하다"라고 써둔다. 이걸 우리 말로 설명해 주더라도 학생들에게 그 내용이 가서 닿을리 만무하다. "호소하다"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도 아니고, 가끔이라도 쓰는 단어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이도, '어필'이라는 단어는 일상어로 사용된다.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것을 보니, 제대로 단어 대접을 받고 있다. '어필'이 우리말에서 사용됨으로써 생기는 문제가 있다. appeal 을 대체할 우리말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appeal 은 '어필한다'고 할 때 그 어필이야. 라고 말했더니 그거 한자어인 줄 알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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