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외면일기 265

대학동기 회합의 역사적 의의

대학동기들을 근 2년 만에 만나고 돌아가는 길. 서로의 최신 소식을 업데이트하며 기억을 되돌리려 애쓴다. 부모님의 연세를 묻고, 아프신데 없는지 듣는다. 너는 어디 아픈데 없느냐 묻고 나이듦의 팍팍함에 대해 털어놓는다. 너의 새치는 어찌 앞머리만 점령한 것일까, 너는 언제 어느새 염색없이는 견딜 수 없게 되어 버렸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치 식순이 정해진 결혼식의 차례를 지키는 것처럼, 우리는 같은 학번 여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아 본다. 순희, 영희, 지영… 끝끝내 생각나지 않을 이름을 담배 태우러 나갔다가 기억해 내서 들어온다. 그래, 19명 여학생, 7명의 남학생. 후배들 안부까지 묻고 들으며, 각자 가진 조각을 꺼내어 안부의 큰 그림을 누벼본다. 누벼도 누벼도 결국 넝마같은 현재. 대강 마무리..

쓴 자리

일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때가 있다. 학교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재미를 위한 건 적다. 오늘 앞자리 선생님이랑 이야기 하다가, 쏜살같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각자 글을 쓰고 다시 헤어지는 모임은 어떻겠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는 페트리코에서 시작되었다. 페트리코는 비오는 날 흙에서 나는 냄새다. 비를 맞으면 땅에 있던 박테리아가 향을 뿜어낸다. 오늘은 오랜만에 비가 왔고, 비오는 날 땅냄새 이야기를 하다가, 페트리코를 검색했고, 그걸로 글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렇다면 글을 쓰는 모임은 어떤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자의식이 강하면, 자유로운 글이 어렵고, 그래서 교사는 글쓰기를 꺼리고, 생리를 하는 여성은 담고 버리는 과정을 통해 남성과는 다른 순환을 가지고, 덕..

외면일기 - 수업나눔, 강의요청

비가 올 것 같은 하늘. 일단 자전거에 오르면 자전거를 세우고 싶지 않다. 세웠다가 다시 밀고 가는 게 제일 힘들어서 그럴까. 힘차게 타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집에 와서야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은 하늘을 사진으로 담아둔다. 일주일, 이제 이틀이 지났는데도 정말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난다. 학교에서는 늘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잠시 정신을 놓고 여유를 부리면 불쑥 튀어나와 나를 놀래키려는 것처럼, 하나가 마무리되면 하나가 튀어 오른다. 완벽하게 건강한 상태가 없는 것처럼, 완벽하게 평온한 상태도 없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작은 일에도 흔들리게 될 때가 있다. 경상남도교육청에서는 수업나눔 행사라는 걸 운영하고 있다. 어차피 학교에서도 수업 공개는 해야 하니, 누구든 올 수 있게 신청해보는 것도 좋..

일기 쓰는 중

매일 8시 30분에서 9시 사이에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10시가 되기 전에 잠들어야 하니, 일기를 쓰고, 일기를 쓰다가 블로그 글감을 생각하고, 블로그 글까지 쓰고 나면 10시를 약간 넘기기도 한다. 주말에는 그것보다 여유가 있는데, 그 사이에는 유튜브 영상이 끼어든다. 30분에서 1시간 영상을 보고 나면, 더 늦어지기 전에 얼른 일기를 써야 한다. 엊그제는 여행가서 아이들과 한 방에 자느라 일기를 쓰지 못하고 잠들었다. 그래도 어제는 정신차리고 일기를 쓰고 잠들었다. 올 해 일기를 다시 매일 쓰기 시작하면서 이가 빠진 날은 단 이틀이다. 아무튼 계속 쓰고 있다. 일기를 쓰면 더 솔직해 지거나, 더 감사할 수 있거나, 또 반성할 수 있을거라 기대했지만, 딱히 그렇지는 않다. 일기장이라고 해도 매우 솔..

북두칠성과 나 사이의 시차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북두칠성은 이미 과거의 북두칠성이라는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 거리가 아주 멀어지면, 두 대상은 ‘지금’이라는 시간을 공유하지 못한다. 우주까지 갈 필요도 없다. 자전하는 지구 위에 있는 우리는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시차’를 갖게 된다. 사람 사이에도 시차를 겪는다. 이쯤 되면 반드시 물리적 거리만이 우리에게 시차를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누군가는 과거를 살고, 누군가는 내가 모르는 시간을 산다. 같은 곳에 있어도 다른 시간을 사는 사람이 있어, 우리는 서로 대화가 불가능하다. 대화 만이 우리가 같은 시간을 산다는 증거이므로, 대화가 없다면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증언할 수 없다. 아들과 앉아서 화로를 바라보면서, 아들의 얼굴을 훔쳐본다. 꽤 오랫동안 아들이..

떨치려는 퇴근길

오늘은 좀 늦은 퇴근이다. 할 일이 끝도 없이 있는데, 그 할 일을 정리하지 못해서 조금은 시간은 허투루 보내고 왔다. 그래도 앞에 앉은 사람, 옆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하는 게 모두 일이다. 아니, 그런 대화가 모두 내 일의 일부다. 퇴근하는 데, 손톱달 혹은 눈썹달이 따라온다. 나도 모르게 페달을 빨리 밟다가 잠시 멈추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달려야지 생각하는데, 금방 땀이 나려고 하고, 그러다 보면 집 앞까지 도착해 있다. 이제는 밖에서 자전거를 탈 때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지만, 날이 지면 나오는 하루살이들 때문에 버프는 해야 한다. 눈으로 입으로 잘못하면 하루살이를 삼켜 버릴 수도 있다. 집으로 와서 오늘 보고 들은 것들을 일기장에 써본다. 어떤 사람의 지친 표정, 어떤 사람의..

제자리 걸음

내가 와서 봐주길 바라는 우리 동네 양귀비꽃 아침에 식빵, 점심 때는 파스타면을 사러 간 걸 빼면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어떻게든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서 어딘가로 갈 수가 없었다. 음음. 이건 좋지 않은데. 매일 남아서 업무를 더 하는 것도 좋지 않은 일이지만, 주말마다 집에서 일을 더 해야 하는 것도 좋지 않다. 니체는 나는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강하게 한다. 라고 했다는 데, 그저 니체가 강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때마침 오늘 아침에는 일을 미루지 않는 방법이라는 짧은 영상을 봐서 그런가,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하기 전에 일을 좀 더 해둬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일을 하기는 했으되 많이 하지는 못 했다. 그리고 유튜브나 보면서 월요일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곧 내려가는 볼만한 영화 - 몰리스 게임

제시카 차스테인 이름이 어렵다. 얼마전에 너무나 시끄러운 고독의 저자 보흐밀 흐라발 이름이 역시나 훨씬 기억하기 어렵지만, 제시카 차스테인도 기억이 잘 되는 이름은 아니다. (Chastain은 그녀의 엄마가 결혼 전에 사용했던 성이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제로 다크 시티"에서였던 것 같다. 거기서 얼굴이 익게 되자, 인터스텔라에서도, 마션에서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작은 체구인데도 불구하고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주연이 아니었음에도 인터스텔라에서나 마션에서 그녀의 연기는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뚜렷이 구분된다. 그리고 제로 다크 시티보다도 '미스 슬로운'에서 그녀의 연기가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몰리스 게임 몰리스 게임은 실제 인물인 몰리라는 여성의 자서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영화..

일을 떠나는 퇴근

하루 종일 일을 한 것 같은데, 반드시 끝냈어야 하는 일은 끝내지 못한 것 같다. 그러고 나서 퇴근 하는 길은 뒤가 찜찜하다. 커피잔을 새로 샀다. 일 하는 책상에 앉아서 그런가, 예쁘던 찻잔도 후져 보인다. 그래도 하루에 커피 두 잔을 내려 마시며, 여유를 한껏 부린다. 하루에 한 번은 일부러 밖으로 나가서 학교 건물을 한 바퀴 걷는다. 마치 섬전체가 교도소인 감옥에서 단 한 번 운동을 허가받은 독방죄수처럼, 하늘 높이 뜬 햇볕을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딱 한번이다. 그래도 집으로 오는 길, 내 몸에 내 털처럼 달라붙은 일을 떼어 낼 수 있는 시간이다. 페달질을 하다 보면, 붙어있는 일들을 떼어낼 수 있는 것 같고, 따라오는 일을 제쳐낼 수 있을 것 같다. 일터에서 집까지 빠르게 움직여서 거리를 만들..

꾸준함의 힘

"열심히 하지마." 내가 자주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다. 열심히는 정의하기 힘들고, 계측할 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 열심히 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저, 넋놓고 있지 않도록 꾸준히 해야 할 일을 정하고 해나가면 된다. 그러고 뒤돌아 보면, 내가 무엇을 했는 지 파악할 수 있다. 오늘 학생들과 수업을 위해 작성한 내용이다. 나는 대개 100단어가 안되는 수능 지문을 보면서 제법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난이도가 높은 문제일수록, 지문 만으로는 해독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나름 조사를 하고, 원문도 찾아보고 모자란 부분을 보충한다. 그리고 명쾌하게 경계를 찾아내면 수업 준비가 즐겁다. 수업 준비를 위한 나의 작업흐름(work flow)는 정해져 있고, 수업을 준비하겠다고 마음 먹고, 시간만 있다면(요즘 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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