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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코로나 검사 받다

오늘의 풍경

이제는 누구나 한번쯤 아니 두세번쯤 검사가 된 것일까. 그동안 나는 마치 비를 피하듯, 코로나 검사를 피할 수 있었다. 원래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편이 아니었고, 외출은 가족들과 함께 하는 데,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는 가족들과는 실내인 장소로 놀러가 본 적이 거의 없다.

얼마전 아들이 희망검사대상자로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해서 따라갔는데, ‘나도 곧 하게 되려나?’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검사를 받았다. 몸에 이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확진자와 밀접접촉한 것도 아니다. 선제적 전수조사다.

학생들이 오기 전에 먼저 검사를 받을 수 있으면 했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학생들이 오면 인사를 하고, 거리를 유지하고 기다릴 수 있도록 안내했다. 와중에 덴탈마스크를 쓴 학생들에게는 KF92 마스크를 나눠주고, 또 그 와중에 반가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했다.

학생들이 기다리는 사이 먼저 검사를 받았다. 역시나 오랜 비염 환자 생활 덕분일까, 검체 채취를 위해 코 안에 면봉을 넣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우리반 학생들이 모두 검사를 받고 가는 걸 확인하고, 내일 재택근무를 신청하고 퇴근 시간에 맞춰 퇴근했다. 당연히 결과는 음성으로 나올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맞아야 하는 매를 먼저 맞은 것 같기도 한데, 중학교 때부터 벌써 검사를 여러번 받아봤다는 학생들 이야기를 들으니, 코로나의 이란 게 있을까 다시 생각하게 된다. 초행길을 가게 되면 그 목적지가 어디든 멀게 느껴진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가는 길은 먼데,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가깝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목적지, 혹은 종착점이 어디인지 알고 있을 때, 우리는 이 여정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통제하고 있으니 시간 봐서 쉴 수도 있고, 급하면 뛰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정의 종착점이 어디인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 지 알 수 없다면? 움츠러 들 수 밖에 없다. 위험이나 고난을 대비해서 힘을 아끼려면 몸을 잡게 만들고 천천히 걸어야 한다. 그런 걸음걸음은 사람에게서 천천히 진을 뺀다.

우리가 코로나를 견뎌내고 나면, 그 다음에 올 지도 모를 또 다른 사태는 잘 견뎌낼 수 있을까. 코로나 라는 터널을 지나고 나면, 지나간 날들이 쏜 살 같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생각하게 될까. 글쎄다. 글쎄다.

어떻게 느끼든, 그저 얼른 종착지에 닿았으면 좋겠다. 털썩 주저 앉아 좀 쉬면서 머릿 속 조각 모음을 좀 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