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외면일기

힌남노야 지나가라

타츠루 2022. 9. 5. 21:50


태풍을 기다린다. 초강력 초강력. 지난 폭우로 놀란 탓일까, 이번 태풍을 기다리는 뉴스의 보도는 조심스럽다. 컨트롤 타워는 지켜야 할 곳을 지키고 있을까.

휴업이 가능할텐데, 경상남도는 내일 온라인 수업이다. 올해에는 사실상 첫 온라인 수업이다. 선생님들은 모두 ‘거의’ 모두 재택근무다. 재택근무의 과정은 다단하고 지난하다.

개인복무에서 기타-기타 선택하고 “재해로 인한 재택근무” 를 기입한다. 장소는 자택. 근무시간은 8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신청할 때에는 ‘재택근무 신청서’를 또 별도로 작성해서 첨부해야 한다. 사인을 해서 신청하려면, 출력 - 사인 - 스캔의 과정이 한번 더 필요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일 재택근무 시작을 하기 전에 개인복무신청 - 출근관리에서 가서 ‘출근’을 눌러야 한다. 4시부터 4시 30분 사이에는 ‘재택근무 업무보고서’를 작성해서 교감선생님에게 보내려 한다. 퇴근 시간에는 또 퇴근을 눌러야 한다. 나는 오늘 하루, 올라오는 재택근무 상신을 결재하느라 대배분의 시간을 보냈다.

담임선생님들은 내일 수업 준비도 해야 했을 것이고, 내일 학생들 온라인 수업 준비도 도와야 했을 것이다. 와중에 내일 온라인 수업을 위한 교내 연수도 있었다. 번갯불에 콩 볶듯, 태풍에 연날리듯, 속도도 파괴력도 대단한 하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태풍은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고 지나가야 한다. 준비가 많음에도, 태풍이 싱겁게 지나가길 바란다.

우리집 창문은 닫을 때마다 착착 소리가 난다. 외부와 내부를 엄격하게 분리한다. 하나의 밀봉된 상자가 되어, 바람 잘 틈을 주지 않는다. 태풍이 오고 있는지 체감도 어렵다 집 안에서는.

어릴 때 다세대 주택에 살 때는 창문에 테이프를 붙여도 취객을 쥐고 흔드는 것처럼 창이 흔들렸다. 우박이 떨어지는 것처럼 비가 창을 두들겼다. 물 흐르는 소리에 잠을 깨고는 했다. 이 높은 아파트에 앉아 있으니 그 옛날이 아득하다.

힌남노의 경로를 살펴보니, 내일 새벽이 고비인 것 같다. 우리 땅에 발을 들이자마자 수증기를 잃고 바람을 잃고 사그라 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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