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서울 출정.
서울을 벗어나는 틈에 서울로 잠입하려 했지만 서울이 괜히 서울이 아니다. 휴게소에서 쉬는 시간까지 합쳐서 6시간을 바쳐 서울에 들어왔다. 청와대 사랑채가 목적지였는데, 내부 리모델링 중이라 별로 구경은 하지 멋하고 그 옆 서촌과 통인시장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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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를 시켰어야 했다. 들기름 향이 약간 나는 비빔국수가 서울 입성 후 첫끼니다. 온 가족이 ‘미식’이나 ‘대식’에는 관심이 없어서 우리 가족은 늘 눈에 뛰는 집에 그냥 들어간다. 시장안 분식집. 메뉴가 많은데도 금방 나온다. 면이 익을 시간만 있으면 음식이 되어 나온다. 시장이 죽었다지만 지방의 시장에 비하면 서울의 시장은 활황같다. 사람 상대하는 곳이라면 무조건 사람이 많아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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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들이 빌딩숲 사이에 새초롬이 자리잡고 있는 곳. 그 부분이 내겐 서울 같다. 어디서든 자리를 지킨 누군가가 있어서 도시의 수명이 깊어진다. 진주에서 진주다움을 지키려는 사람이 있는데, 지키려는 사람이 너무 적어진 소도시는 슬프고 외롭고 새것만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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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이 지천이다. 호텔 체크인 전 시간이 애매할 것 같아서 커피도 한 잔 한다. 아내와 먹으려고 시원한 라떼. 서울서는 아직도 사투리 쓰는 게 신경쓰이는데, 나란 인간의 피해의식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억양은 하나의 아이덴티이기도 하지만 편견이나 선입견을 주기더 한다. 나는 그런 표식이 싫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중립 따위가 있을까 싶지만, 사투리는 내게 편하면서도 서울에 올 때마다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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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시내버스를 탄 건 20년도 더 된 것 같다. 미포에서 대힉로까지 160번 버스가 제일 편하고 빠른 이동수단이라 버스를 탔다. 진주에서도 시내버스를 타본 적이 없는 딸에게 버스 공부를 시킨다. 정류장을 보고 버스 안내 방송을 듣고 내리기 전 벨을 누르는 것까지. 마치 해외여행 온 듯한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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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재미있게 읽은 책 ‘블편한 편의점’을 각색한 동명의 연극을 봤다. 공연을 보기 위해 대학로를 거니는 사람들의 인파에 놀랐고, 더 가까이 있다면 이런 공연을 더 쉽게 누릴텐데 생각했다. 예전에 올라와서 봤던 ’시간을 파는 상점‘보다 배우들의 나이가 좀 많았고, 그런 분들의 연기를 보고 있으니 직업으로 연기를 하면 산다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젊은 사람들의 연기란 ’직업인으로서의 삶’이 아닌 것 같다는 내 편견이 드러났다.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배우를 보고서야, ‘직업인으로서의 배우’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독고‘라는 배역이 극의 상당부분을 끌고 갈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배역를 맡은 분들의 캐릭터는 모두 매력 있었다. 노래로 대사를 표현하는 부분이 캐릭터마다 한 두번씩는 있었는데 듣기에 좋았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정리하고 나니 10시가 넘었다. 참 긴 하루였다. 내일은 어찌 하루를 보내볼꼬.
서울에 오면 만나고 싶은 분들이 있는데, 가족과 올라와서 그런 시간을 갖기란 불가능하다. 나 혼자 서울에 오게 될 기회가 생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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