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아빠만의 육아'라니요?

타츠루 2019. 6. 27. 10:42

 

딸은 어제 머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어제처럼 묶어달라고 한다. 머리를 묶을 시간을 얻으려면 밥 먹는 것도 씻는 것도 서둘러야 하는데, 딸은 그럴 생각은 없어 보였다. "고개를 약간 들고 가만히 있어 봐."라며 30번은 말한 것 같다. 말하면서도 '그래, 가만히 있는 게 쉬운 턱이 없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지 않으면 이 초보 미용사는 머리를 묶기가 너무 힘들다. 괜히 어제 열심히 묶었나 어제의 나를 마음속으로 혼내고 있는데, 머리 고무줄은 자꾸 터진다. 유치원에서 하고 온 것들을 모아둔 통에서 꺼내어 묶다 보니 이미 꼬일 만큼 꼬여서 내 손에서는 터지기만 한다. 고무줄이 끊어지는 만큼 내 의지도 끊어....... 간신히 머리를 다 묶고 달래어 유치원으로. 중앙 통로에서 딸은 푹신하고 하얀 눈밭이나 복숭아뼈까지 닿는 아주 빽빽한 잔디에 앉듯이 그렇게 가볍게 앉는다. (매일 봐도 신기한 저 가벼움) 그리고 장화를 하나씩 벗고 나를 보는데, 옆에서 선생님이 묻는다. "머리 이쁘네. 누가 해줬어?"(물론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나는 울타리 밖에서 쳐다보니 한 7m 떨어져 있으려나.. 하지만, 맥락과 작은 소리와 입술을 보며 듣는다. 그러니 외국어를 공부하면서도 '입술'이나 '입'모양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딸은 "아빠가요.". 선생님은 "아빠가?!" 선생님은 못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적잖이 놀라는 기색이다. 딸은 장화를 들고 복도로 들어가 자기 신발 자리에 넣고 교실로 들어가기 전 나를 한번 보며 자근자근 하지만 확실히 그리움을 담아서 손을 흔든다.

 

돌아오는 길에 비도 쳐다보고, 어제 숲에 풀어준 장수풍뎅이 수컷 한 마리도 생각하며, '아빠만의 육아'를 생각한다. 여기서 '아빠만의 육아'는 요즘 쏟아져 나오는 '아빠 육아의 효과'라든지 '아빠가 키우면 아이가 이렇게 달라진다'라는 류에서의 그 '아빠만의' 이다. 마치 '아빠'만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무엇이 있으면 '아빠'가 그것을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말하는 책들. 나는 이런 책들이 어떤 필요에 의해 쓰이고 팔리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그 효과보다도 그런 언어가 가질 수 있는 차별성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지금 알라딘에서 '아빠, 육아'로 검색하니 167개의 결과가 있구나. (2019.6.27. 목요일 기준) 목차를 봤을 때 대개의 내용은 아빠가 사용하는 언어나 놀이방식이 엄마의 그것과는 다르고, 그로 인해 아이가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니, 아빠들아, 육아에 당장 참여해라. 이런 식이다. 이게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이것이 전제하고 있는 바는 '아이를 키우기 위한 온전한 가정은 남성인 아빠와 여성인 엄마로 이루어진 구성체' 아닌가? 몇 주 전에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학교에서 숙제를 받아왔는데,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 조사해서 발표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 중 '한부모 가정'(이 용어도 적합한지 이제 좀 의심스럽다.)도 있었다. 아들은 그 주제를 선택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가족 형태'라든지 '가장 표준적인 혹은 평균적인 가족 형태'를 일단 '옳은 것'으로 두면 나머지는 모두 '옳은 것이 아닌 것' 혹은 '되도록 지양해야 할 것'이 된다.

 

다시 육아서로 돌아오자. 저 책을 읽은 아빠 중 얼마간은 "그래, 아빠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하니 육아에 더 참여해야겠어."로 태세 전환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대부분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아내가 저런 책을 사주며 읽으라고 하는 경우라면 이미 참여를 안 하는 상태에다가 다른 사람이 권한 책을 읽고 마음이 변할 것도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에. 저런 책을 읽는 사람은 이미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데, 내가 뭔가 해줄 건 없을까. 책으로라도 찾아보자.'라는 상태의 아빠가. 이미 육아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은 아빠. 남성들을 육아로 참여시키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저런 책은 '온전한 가족의 형태'를 강제하는 기능은 충실히 시행한다. 아빠가 없는 집의 아이는 맛보지도 못한 '결핍'을 선 경험하게 된다.

 

한 아이가 자라는 데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빠만이 줄 수 있는' 가치라는 게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우리가 살아가게 될(지금 살아가는 세상이 그렇다고 보기에는 모자라서) 세상은 고정된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벗어나는 벗어나야 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아빠만의' 따위라는 수사로 시대를 역행해서야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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