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1 - [여행/국내] - 여름방학 단 이틀의 휴가 - 지리산 둘레길 3코스
여름방학 내가 가진 혼자만의 휴가는 '지리산 둘레길 3코스'였다. 재미가 있기는 했지만, 좀 힘들었다. 하루가 지나고 나니 겨울에 한번 더 가보는 것도 가능했다 싶지만, 다시 반복하고 싶을 만큼 빼어난 코스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오늘의 코스는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 학교 선생님이 추천한 구제 옷집에 가보고 싶다는 게 일단 목표이긴 했다. 필요한 옷은 '파타고니아'에서만 산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약간은 포멀한 옷은 파타고니아에서 살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필요한 옷(셔츠나 카디건)이 있지 않겠나 싶어서 일단 목적지를 거기로 정했다. 이동수단이 자전거인 만큼 샤방 라이딩이기도 하다.
집안일도 하고 추위를 대비하고 나서니 이미 11시다.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 고민했다. 밭밭이라는 베트남쌀국숫집을 지도 앱에 저장해 뒀는데, 어제 미분당에서 쌀국수를 먹은 터라 연이틀 쌀국수를 선택하는 건 내키지 않았다. 흠. 일단 뭐라도 보이면 먹거나 아니면 왠지 '돈가스'가 먹고 싶은데..라고 생각하면서 일단 진주시내로 향했다. 그러다가 연안도서관 앞을 지나게 되었고 '송기원 진주냉면'을 보았다. 리모델링하기 전에 한번 가보고 잊고 있었는데, 딱이다.
아마도 한 4년 전 쯤이었다. 진주토박이 후배에게 이끌려 여기 왔었다. 여름이었고 손님이 너무 많았다. 앉은뱅이 테이블에 사람들이 주욱 늘어 앉아서 먹고 있었고 굉장히 소란스러웠던 것 같다. 공장처럼 먹고 빠지는. 적어도 겨울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 싶어서 들어갔는데, 매우 조용했다. 일단 내부가 굉장히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갈비탕 메뉴도 있어서 다음에 가족들과 다시 와야지 생각했다.
물냉은 2가지, 섞음 한 가지가 냉면메뉴로 있었다. 나는 그냥 기본. 따뜻한 육수가 곁들여져 나왔는데 맛이 있었다. 냉면은 다른 진주냉면에 비해서 차분한 편이다. 냉면육수가 좀 적은 것 같고. 가격은 1.2만. 육전은 부드러웠다. 면은 아주 탱글 한데 그렇다고 너무 질기지는 않아서 또 좋았다. 처음 먹을 때는 '이게 무슨 맛인가'했는데, 먹다 보니 편안했다랄까. 다시 먹으러 와도 좋을 것 같았다. 유치원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과 온 손님 두 팀이 있었다. 약간 모자란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릇을 모두 비우고 나왔다. 잘 먹은 한 그릇이다.
이제 잠시 강변을 따라 시내를 향한다. 나는 이름을 모르는 새들이 자맥질을 한다. 뭐 그리 먹을 게 있을까. 깨끗해 보이지도 않는 물에서 쉼없이 일한다.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는데도 날아가지 않는다. 이렇게 가까이서 강을 보고, 강에 앉은 철새를 볼 수 있다는 건 진주 남강의 장점이다.
드디어 도착. 자전거를 타느라 오른쪽 바지를 접어 올렸다. 가게 안에는 큰 거울이 있어서 저렇게 거울없이 찍은 것처럼 내 모습 전체를 찍을 수 있었다. 옥스포트 소재의 셔츠를 찾고 있었다. 사장님과 이야기하며 두 개를 골랐다. 브랜드는 큰 상관이 없고, 그저 '새 옷을 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가게는 아주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옷도 상태가 좋다. 105 사이즈에 해당하는 셔츠들이 적당하게 나에게 맞았다. 청자켓을 입고 찍은 사진은 없지만, 청자켓도 하나 구입. 이런이런. 생각보다 소비가 많았다. 하지만, 제품은 딱 하나씩 있다. 마음에 들면 그냥 사기로 했다.
자전거로 출퇴근 할 때는 출근 복장도 자전거 타고 퇴근할 때를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아무래도 티셔츠나 스웻셔츠를 선호했는데, 이제는 아마도 '그리고 분명히 슬프게도'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냥 이쁘게 입자.
옷집 가게 사장님은 AES커피를 추천했지만, 인스타그램에도 나오지 않는 걸 보면 그 사이 폐업을 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냥 가본 곳으로 간다. 수류헌. 처음 생겼을 때 왔을 때는 '셀카를 찍어대는 사람들'(상당수는 여성)로 북적거리던 카페인데, 오늘은 조용했다.
커피에 브라우니까지 시킨 건 사치다. 그래도 자전거를 타니 보급을 해줘야 한다. 라테를 마시려 했으나, 핸드드립 전문이라고 손메모가 있길래 굳이 핸드드립을 주문했다. 수류헌 블랜드. 아주 강한 개성은 없었지만 깔끔함이 좋았다. 좀 가벼운 느낌. 브라우니는 '바나나'를 재료로 쓴 것 같았다. 초코를 뚫고 바나나맛이 났다. 내 입이 잘못된 걸까. 그렇게 앉아서 하루 독서 시간 30분을 채웠다. 지나가는 고양이도 구경하고, 마당 '아마도' 배롱나무인 것으로 생각되는 나무도 구경했다. 대개는 다들 일하는 주중 한 잔. 마치 혼자 쉬고 있는 것처럼 여유롭다.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하고. 제대로 혼자만의 시간이다.
38c 두꺼운 바퀴로 승차감이 좋다. 리어랙은 떼어 내고 오늘은 작은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탔다. 편안히 앉아서 페달질을 하면 세상이 내 쪽으로 밀려 들어온다. 무엇이든 싣고 갈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 주차 걱정이 없고 달리기만 하면 바람이 분다. 자전거 타기 좋은 날이었다.
마지막으로 롯데몰에 들러 흡흡. 카디건고 하나 구입했다. (이런이런) 나는 춥지 않게 입는 걸 좋아하는데, 셔츠에 니트까지 입으면 식당에만 들어가도 땀이 나는 경우가 많다. 니트는 내게 좋은 답이 아니다. 카디건을 입으면 벗거나 체온 조절을 할 수 있어서 좋다. large 사이즈 카디건이 두 개인가 있었는데, 체중이 약간 불면서 불편해졌다. 그건 아내에게 줘버렸기 때문에 나는 필요한 걸 구입해야 했다. 파타고니아에서 카디건을 팔지 않으니 사지 않고 있다가 고심 끝에 오늘 구입. 아내가 좋아하는 스콘도 사서 집으로 향한다.
뒤에서 바람이 조금 밀어주고 뿌옇고 하늘도 맑고 밝아졌다.
오늘은 딱 하루 겨울 방학 동안 나 혼자에게만 내어준 날. 이런 날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하다. 방학 때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을 때도 있었는데, 두 해 전부터는 매일 학교 출근이고, 짧은 가족 휴가 때만 쉴 수 있었다. 그러니 나 혼자 누리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 우리는 모여 살지만, 결국 혼자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싫어하는 것,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 대한 인식이 나의 취향이고, 취향에 대해 알면 또 다른 사람과 나누고 공유하기가 더 쉬워진다.
2월에도 할 정도 이런 시간을 가질 수가 있을까? 늘 바쁠 필요가 없다. 해야 할 일이 많은 것과 바빠서 정신이 없는 건 다르다. 진짜 중요한 일, 내게 의미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하려면 '바쁘지 않은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1월 1일, 한 해 계획을 모두 세우지 않더라도 괜찮다. 하지만, 적어도 작년에 이루지 못했고 올해만큼은 시도해보고 싶은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자기 만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봐야 한다. 딱 그 부분만큼 내 일상 속 내 삶의 밀도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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