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초3과 라디오 속 팝송

타츠루 2020. 11. 28. 09:04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을 9시 전에 재운다. 이제 아들이 잘 때까지 옆을 지키는 것은 아니니, 정말 '재우'는 건 딸뿐이다. 딸은 9시가 되기 전에 보통 잠이 든다. 아들은 태권도 마치고 와서, 못한 과제를 다 하고 잠이 드는데, 요즘에는 대개 9시를 넘긴다. 잘 먹고 잠을 충분히 자야 클 테니 나는 아들을 자주 채근한다.

 

오늘(2020.09.25. 금)은 그래도 좀 이른 편이다. 잠자기 전 이불을 정리하고, 책상을 정리하고, 양치질을 하고 아들은 침대로 간다. 

"아빠, 책 좀 읽어주면 안 돼?" 

어제 아들이 잘 준비를 마치고 나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읽어줬다. 

"응, 알겠어. 어서 가서 누워." 

아들 방에는 책상 스탠드가 켜져 있고, 나는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한다. 

딱 한 장이 남은 줄 알았는데, 한 장이 더 남았다. 아들은 더 읽어달라지만 그만 읽는다. 

너무 재미있다면서도, 직접 읽지는 않는 녀석. 

내가 읽어주는 게 좋은걸 수도 있고, 자기가 책 읽을 시간에는 더 재미있는 학습 만화를 읽으려고 글밥 많은 책은 그냥 두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늘 낮에 잠시 학교 운동장을 걸었다.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길을 조성해서 몇몇 선생님들도 걷는다. 맨발로 걷는 길이라지만, 모래도, 자갈도, 황톳길도 충분히 많은 양을 길에 깔지 않아서 일까 벌써 많이 딱딱하다. 그래도 오랜만에 팟캐스트 들으면서 맨발로 걸었다. 60 Minutes를 듣는데, 아담 샌들러 인터뷰가 한 꼭지다. 그의 성공담, 인생 이야기를 듣는데, 잊히지 않는 말이 있었다. 'My dad was my hero.' 그리고 잠시 내 아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고, '영웅'은 아닐 것 같아서 잠시 속상해한다. 

 

아무래도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아진 만큼, 아들에게는 손이 덜 간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책임감을 요구한다. 아직 초등학생일 뿐인데, 내가 너무 다그치기만 하는 것은 아닌가 또 반성 모드다. 딸이랑은 몸으로 놀아주지만 이제 아들은 좀 무겁다. 덜 안아주고, 덜 사랑한다 말한다. 내 잘못이다. 

 

책을 읽어주고 아들이 잠드는 사이, 나는 뉴욕타임스도 읽고 넷플릭스로 'Enola Homes'도 잠시 본다. 그리고 아들 방으로 갔다. 어두운 방에서도 아들 귀에 꽂혀 있는 하얀 이어폰이 보인다. 잠들어도 불편할 것 같아서 이어폰을 귀에서 빼주는 데, 음악 소리가 나온다. 이어폰은 던킨도너츠에서 샀던 '라디오'에 연결되어 있다. 어떤 방송인지 모르겠지만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아들이 7살 때 

 

올해 가장 잘 사준 게 라디오인 것 같다. 낮에는 따로 틀어놓는 일이 없는데, 혼자 이렇게 밤에 듣고 있구나. 아들이 구축해 가는 세상을 엿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자랑스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혼자 선택하고 자라기 위해서 얼마나 애쓰고 있을까 가엽고 안쓰럽기도 하다. 

 

아들에게 나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건 분명하다. 

내 아들은 내 영웅이고, 내 삶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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