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기온 19도 최저기온 5도. 기온은 제법 높지만 이제 가을이라 여름과는 다르다. 그늘을 찾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걸 보면, 계절은 바람에서 시작되고 바람에서 끝나는 게 아닌가 싶다. 오전에 아들이 풋살 가느라 나는 아내에게 보드게임을 배웠다. 학급활동비로 보드게임을 샀는데, 나도 모르고 학생들도 모르는 보드게임이 있다. 내가 배워서 가르쳐 주기로 약속했다. 점심은 간단하게 먹고 오후 외출을 가기로 했다. 지난번에 남일대해수욕장까지 간 적도 있었지만, 멀리 가니 차가 너무 막혔다. 오후 나들이는 1시간 이내의 거리로 가는 게 좋겠다 싶었다.
오늘의 장소는 의령이다. 이미 몇 번 가본 적이 있지만, 오늘의 포인트는 오리배. 4인 탑승 가능한 오리배는 30분에 1만원이다.
우리 네 가족은 좌측 앞에는 아들이, 우측 앞에는 내가, 좌측 뒤에는 아내가, 우측 뒤에는 딸이 앉았다. 아내와 내가 대각으로 좌우를 나누어 균형을 맞췄다.
오리배는 자전거 페달처럼 생긴 것을 밟으면 되고 그 페달로 전진, 후진 모두 가능하다. 방향 전환은 중간에 있는 기어봉 같은 것으로 하면 된다. 초등 4학년인 아들도 페달을 밟을 수 있을만큼 앉은 자리에서 페달까지의 거리는 딱 어중간했다. 좋게 말하면 적당.
물은 아주 얕다. 빠져도 내 가슴 정도 밖에 오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배를 띄우니 제법 두둥실 기분이 난다. 예전 한량들이 왜 뱃놀이를 했는 지 알 것 같았다. 물론, 페달질을 하지 않고 그냥 둥둥 떠 있을 때 말이다. 무엇이든 일이 되면 재미는 극도로 멀어진다. 긴팔 티셔츠 한 장 입고 배를 저어 가는 데, 땀이 조금 났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해를 등지기만 하면 금새 땀이 식었다.
오리배는 상당히 연식이 있는 것 같았다. 21세기에 오리배라니 기묘하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물가로는 차박이나 차크닉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텐트를 펼치고 캠핑을 하는 사람도 있다. 분명 유료 캠핑장은 아닌데, 물도 있고 뒤로는 남산도 있으니 제법 훌륭한 박지가 되겠다. 화장실이 멀지 않은 곳으로 자리만 잡는다면 정말 훌륭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아내가 어떤 블로그 포스트를 보여줬었다. 노지 차박을 하고 쓴 후기였는데, 그 장소가 바로 여기였다. 몇 번이나 의령에 와 봤으면서도 왜 여기는 보지 못했던 것일까? 나도 차박 준비를 해와서 하룻밤 묶어 가고 싶었다. 꼭 물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고, 구름다리가 밤에는 더 예쁘다고 하기도 하고, 남산에서 내려오는 공기가 참 맑아서 그렇기도 하다.
30분은 충분한 시간이었다. 사람이 영 없으면 무한정 타게 해준다는 소문도 있던데, 여유있게 둥둥 떠있을 요량이 아니라면, 페달질하며 열심히 타기에 30분은 충분하다.
오리배에서 내려 구름다리로 올랐다. 약간 출렁여서 별로 무섭지는 않았는데, 다리 아래가 철망(?)처럼 아래가 훤히 보여서 좀 아득하긴 했다. 아들도 딸도 어려움 없이 건넜으나 아내는 좀 무서워 했다. 다리에 올라가서 다른 사람들이 쳐놓은 텐트를 보며, 다음에 나도 한번 꼭 와야지 생각했다.
은행나무와 그네와 널띄기가 있는 곳으로 와서 또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에게는 가져온 킥보드를 꺼내 주었고, 발포 매트도 가져와 앉아서 간식도 먹으며 더위를 식혔다. 그 사이 해는 산 뒤로 넘어가 추울거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은행은 꽂꽂히 서서 이쁜 자태를 뽐냈다. 가을에 오기 좋은 곳이고, 오늘 제대로 잘 왔구나.
좋은 시간에 좋은 나무다. 은행잎이 떨어질 때쯤 또 오고 싶다. 내일은 이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있나보다. 사람이 많을테니 내일은 오지 않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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