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28(화) 19:00~20:30
정혜윤 PD 강의
@중소기업진흥공단
정혜윤 작가님은 생각보다 키가 컸다. 그게 내 인상이었다.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궁금함이 제일 컸다. 어떤 차림을 한 사람인가도 궁금했다.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라 겉모습에도 그 이야기의 느낌이 묻어 나올 거라 생각했다. 편하게 웃는다는 점에서, 과하게 꾸민 듯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던 모습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구나 생각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세 가지가 있어요. 혹은 두 가지가 있어요.'식으로 딱 그 개수를 정해서 이야기했다. 마이크를 입에 딱 붙이지 않아서 소리가 작아질 때가 많았고 마이크가 잘 작동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사람들에게 잘 들리는지 궁금해했다. 무대에서 내려와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단어의 사용에 조심스럽고 어떤 단어든 정성을 가지고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직접 쓴 글을 거의 외운다고 했다. 작가님이 이야기한 것 중 메모한 것들을 아래에 정리한다.
거짓이 없는 자기소개
'책과 자연을 좋아하는 PD다'라는 말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거짓 없는 자기소개. ~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말함으로써, 무엇이 나를 만들어 내는 지를 알고 그걸 알면 삶의 힘이 된다. '한다'와 '좋아한다'는 '하지 않는다'와 '좋아하지 않는다'에서 시작되는 스펙트럼이다. 진짜로 한다거나 진짜로 좋아한다는 말은 나를 해방시키는 말이다. '진짜 한다'가 되었을 때, 나는 스스로 해방된다. 우리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우리가 안다.
내가 무언가 하는 모습에서 나는 진짜 그것을 하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수업을 하면서, 일을 처리하면서. 몰입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하고 있는 일을 의미 있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 언급된 책: Bullshit job
이야기로 살고 싶다
"그 이야기 진짜 좋다."는 문장이 좋다는 사람. 이야기를 찾고 싶고 좋은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로 살고 싶을지 결정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일생 동안 1/3은 어떤 일을 겪거나 그렇지 않은 데 쓰고, 1/3은 자고, 1/3은 이야기한다. 이야기는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나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인식하지 못한다. 영상미디어가 지배하는 시대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소비한다. 라디오 PD로 책을 쓰는 일은 고독한 일이다.
책을 읽는 사람도 그렇겠지만 글을 쓰는 사람의 3가지 고독에 대해 이야기했다.
글 쓰는 사람의 세 가지 고독
- 책을 읽어야 한다. : 한 번 읽어선 읽었다고 할 수 없어서 최소 두 번 읽어야 한다. 읽는 동안의 고독
-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 너무 좋은 책을 읽고도 그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고독
- 문장처럼 살아보겠다: 책을 읽고 책대로 살려고 할 때 느끼는 고독
일단 한 번 읽고 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책들을 떠올렸다. 한 번 읽어도 시간이 부족하다 느끼는 데, 두 번 읽을 시간이 있을까? 책 읽는 데 충분히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작가님의 말씀 덕분에 좋았던 책은 한 번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당장 양자오 선생의 '이야기하는 법'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읽는 일과 관련해 고독한 점은 역시나 독서 모임이 답이겠다 싶었다. #먼북소리 에 새로운 멤버가 필요하다면 이런 강연회가 있을 때 모집포스터를 붙여 보는 것도 좋겠구나 싶었다.
우리의 삶은 어떤 단어 위에 구축되나?
- 불안: ~할까 봐
- 혐오/ 무의미(그중 가장 위험한 것은 자기혐오)
- 쇼핑
- 위 세 가지는 워낙 강력하여 우리도 모르게 위 세 가지 이야기를 따라가기 쉽다. 이런 단어들은 우리가 가진 가능성을 알지 못하게 만든다.
하기로 한 일은 한다.
작가는 좋아하는 말이나 문장이 많다. 그의 친구는 정혜윤 PD랑 다니면 잘 익은 포도나무 아래를 걷는 것 같다고 했단다. 잘 익은 포도를 금세 따먹는 것처럼, 정혜윤 PD는 읽었던 글을 인용하는 데 뛰어나다. '하기로 한 일은 한다'라고 생각할 때 자신의 강점/힘을 느낀다고 했다.
작가님은 Alan Walker의 The Drum으로 시작하는 플레이리스트를 가지고 왔다. 마지막 곡은 들국화의 걱정 말아요 그대였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계속 살아야 한다. 살아 있으면서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순응신화의 시대라는 현대,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산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 존재의 위대함이 탄생에 있다고 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한 사람의 생명이 잉태되면서 같이 열린다. 작가의 말도 그 맥락과 유사하다.
사람들이 MBTI에 끌리는 이유 또한 너무나 불안하기 때문이다. 미래는 알 수 있다. 우리의 상상이 가장 명백한 미래다. 나는 나의 내일을 어떻게 상상하는지 살펴봤다. 하지만 보통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오늘만 사는 때가 많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님에게 매일 밤 잠들면서 어떤 내일을 상상하시나요?라고 묻고 싶었는데, 9시 버스를 타야 하는 작가님을 잡을 수는 없었다. 어젯밤 잠들기 전 분명히 활기찬 내일을 상상해 보자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다 끝내기도 전에 잠들어 버렸다.
새벽같이 일어나기 위해 훈련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조언이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라 는 것이다. 이는 다가오는 내일에 대한 긍정적이고 확고한 상상*을 하고 이를 실현해 내기 위해 *벌떡 일어나라는 말이 아닐까. 어제는 실패했지만, 오늘 밤에는 성공해야지.
작가님이 품고 사는 문장은 무엇인가요?
강연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어지는 식이었다. 위에는 질문을 쓰지는 않았지만..
1번 문장: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2번 문장: 아, 알았어, 몸소 알았어. (톨스토이의 '주인과 하인'에 나오는 문장)
죽느냐 사느냐 문제는 앞서 나왔던 '진짜 한다'와 비슷한 맥락이다. '진짜 산다'라고 말하려면 죽은 것처럼 살 수 없다. 살려면 살아야 한다.
두 번째 문장은 찾아보니 톨스토이의 '주인과 하인'이라는 작품에 나온 문장이다. 돈만 중요하게 생각하던 주인이 추운 눈 오는 밤 모피를 입은 자신의 몸으로 하인을 감싸고 자신은 죽고 하인은 살린다는 줄거리의 이야기다. 아직 다 읽어보지 못했지만, 죽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그는 몰랐지만 이제 나는 알아. 확실히 안다고. 이제 나는 알아'라고 말하는 문장이다. 톨스토이 중단편선(작가정신, 함영준 옮김) 3권에도 '몸소'라는 말은 없다. 어쨌든 책대로 살거나, 알게 된 대로 사는 것, 혹은 진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문장의 의미는 저 작품을 읽어봐야 더 정확하게 알리라.
수목원 청소부
서호주에 가서 거미가 만들어 거미줄 꽃을 보고 삶이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확신하게 되었다는 작가님. 알려지지 않고 주목받지 않더라도 자신이 해야 할 바를 하는 삶. 퇴직 후 자신의 장래 희망은 수목원 청소부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자전거 수리하는 할아버지와 약간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런데 좀 더 자연에 가까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제 했다. 퇴직하게 된다면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라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일이 좋지 않을까? #뉴욕의 하이라인에서 봤던 식물을 가꾸는 자원봉사는 어떨까. 아, 내가 아직 식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쓰는 글에 대해 생각했다. 나도 아름다운 이야기, 누군가 읽었을 때 마음 좋을 이야기를 쓰고 싶다 생각했다. 기록하고 기억하려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싶은 지 생각하지 못했다. 쓰는 나에게 어떤 힘이 되는 글을 쓰는지 인식하지 않았다.
작가님은 자신에게 힘을 주는 부분을 쓴다고 했다. 어쩌면 자꾸 같은 것에 대해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창작집단 이동시(이야기와 동물과 시)의 활동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셨다. 책을 내고도 홍보를 안 한다는데, 정혜윤 작가의 이름으로 책 찾기를 하지 않았나 보다. 아직 안 읽은 책들도 읽어버릴 테다.
왜 여기까지 왔나요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두 시간 타고 가야 닿을 수 있는 제주도의 독립서점에 가서 강연을 기꺼이 한 자리에서 내내 뚱하던 한 청년이 '여기까지 왜 왔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후 강연장에 온 사람들에게도 '왜 여기에 왔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더란다.
나는 마치 황금알을 낳는 보러 가는 기분이었다. 그에 가깝겠다. 이런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어떻게 생긴 거위일까. 배를 가르지는 못하더라도 책으로 못 드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참 가길 잘했다.
책을 읽고 책대로 살고 이야기가 되고
전태일 이야기, 조지 오웰이 인도에서 겪었던 이야기(이 책도 나는 읽었구나), '삶의 발명'에 나온 사형수 이야기까지 좀 더 많은 이야기가 어제 있었다. 꽃받침을 하고 작가님을 보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책 읽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기 위해 나는 여기에 왔겠구나 생각했다. 작가는 책에서 읽은 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우리에게도 그러지 않겠느냐 권하고 있다.
나도 나름 책대로 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침에는 두유에 오트밀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고, 옷은 되도록 안 사는데, 꼭 산다면 파타고니아에서 산다. 사람을 용서하려고 하고 사람을 더 사랑할 방법을 궁리한다. 책 대로 살고 싶고, 책을 더 좋아하고 싶다. 그리고 책 읽는 사람을 더 만나고 싶다.
강연 중 언급한 책
- 삶의 발명. 정혜윤
- 불쉿잡. 데이비드 그레이버
- 전태일 평전. 조영래
- 톨스토이. 주인과 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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