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장화, 내게는 없던

타츠루 2019. 9. 3. 09:47

아침부터 호우주의보, 경보를 알리는 '긴급재난 메시지'가 두 건이나 왔다. 그래도 비가 쏟아붓듯 내리는 것도 아니고, 새벽에 가득하던 천둥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밤인 듯 흐린 하늘 덕분에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어려웠다. 아들과 딸은 내 침대로 뛰어들어 내 옆을 괴롭힌다. 결국 일어나서 날씨를 확인하려 뉴스를 본다.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오레오즈를 그릇에 담고 셋이서 같이 티브이를 본다. 성폭행, 감금 폭행, 차량 털이.. 역시 범죄만이 New스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아침부터 약간 주변이 무서워졌다.

 

오늘은 바람도 부니 딸아이한테는 비옷을 입혀야지. 반바지에 반팔티, 비옷까지 입힌다. 다른 건 다 빠른데, 기저기 떼는 게 늦은 딸은 어제도 기저귀가 넘치도록 오줌을 쌌고 덕분에 옷을 입히기 전에 샤워도 시켜야 했다.

 

비옷은 혼자 잘 입고 똑딱이 단추도 너무 잘 채우는 딸. 신발을 뭐 신지 보니 적당한 게 없다. 비가 오면 신발은 길을 적신 물 때문에 하늘에서 내리는 비 때문에 젖을 수밖에 없다. 딱 맞는 장화가 있으면 좋은데, 오빠가 신던 약간 큰 장화 밖에 없다. 장마 소식을 들었으면 장화를 샀었어야 하는 데, 나는 뭘 했나 싶었다.

 

어릴 때 가장 갖고 싶었던 것 중 하나(그렇다, 갖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가 장화였다. 내 발에 딱 맞는 장화. 헌데, 장화는 없는 집에서 엄마가 실컷 사주기에는 정말 애매한 아이템이다. 아이들의 발은 자고 일어나면 자란다. 장화를 사면 한 철을 신는다. 한 철이라지만 횟수로 따지면 몇 번 되지 않는다. 차라리 운동화를 사서 비가 와도 운동화를 신기고 양말이 좀 젖어도 참으라고 하는 게 낫다. 나는 그랬다. 장화를 신은 적은 있지만, 빠르게 자라기 시작하면서 장화는 내게는 없는 물건이었다. 비가 내린 운동장에는 작은 물웅덩이가 많았고 나는 그 속에 발을 집어넣고 싶었다. 하지만, 내일도 신어야 하는 운동화를 신고 오늘 그 웅덩이에 발을 담글 수는 없었다. 될 대로 돼라 싶다가도 결국 젖은 신발은 내 발 몫이니 참아야지.

 

부모가 되면 내게 부족했다고 생각하는 걸 아이의 생활에 퍼담으려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레고를 사고, 토미카를 사뒀다. 서점에 가면 책은 늘 사주고, 주말마다 차를 몰고 어디든 놀러 간다. 자전거는 사달라고 하면 사주고 헬멧도 사고 장갑도 사고 썬글라스도 사줬다. 내가 모자라다 느꼈던 부분에 대해서는 아들에게 충분할 만큼 끼얹고 있다.

그런데도 딸한테 장화는 못 사줬네. 이번주 내내 비라니 오늘 사면 며칠 신을 수 있으려나. 딸은 장화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나는 조심히 걷는 모습이 나 같아서, 나라면 만나는 물웅덩이마다 풍덩풍덩 거리고 싶을 것 같아서 마음속으로 딸아이 발에 장화를 신긴다. 노랑이어도 좋고 핑크여도 좋겠다. 딸한테 물어보고 오늘 저녁에라도 장화를 사러 가고 싶다. 아내가 허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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