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2 - [여행/내가 사는 진주] -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나불천 자전거길 | 진주 | 자전거길
내게 짧은 라이딩이란 없다. 동네 농협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그 1킬로미터도 내게는 긴 라이딩이다. 가장 먼거리는 옷을 입고 자전거까지 가는 그 3미터. 장을 보러 가는 라이딩은 아무도, 아니 적어도 우리 가족은, 그게 라이딩인 줄 모른다. 나만 그것을 라이딩으로 생각한다. 내게는 소중하며, 잠시간 혼자 되어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이다. 아무리 익숙해져도 자전거 위에서 균형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대단한 일이고, 그로써 즐거운 일이다. 자전거를 타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처음으로 한쪽으로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타게 되었던 그때의 성취감을 자꾸 재현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뒤에 이어지는 시원한 바람, 내가 힘으로 갈 수 있는 그 거리는 다 부가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또 틈을 내어 라이딩을 하러 갔다. 아내는 묻지 않지만, 나는 늘 괜찮은 구실을 구슬려 내어 꺼내놓는다. 가방을 새로 달았는데, 어떤지 테스트 라이딩을 해야 한다는 게 오늘의 이유였다. 실제로 그렇기도 했지만, 반드시 따로 시간을 내어 테스트 해야 하는 지는 모른다 나는 잘.
요며칠 자가용을 타고 출근해서 그럴까, 새벽 아침의 그 쌀쌀맞음이 없는 시간이라 그럴까 페달을 밟고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는 데 기분이 좋아진다. 늘 끓어오르고 있는 온천을 마음에 담고 있다가 자전거에 올라타면 즐거운 소리를 내며 지글지글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은 특히 더 그랬다. 출근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 아무리 일터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보람을 찾는다 하더라도, 결국 오라는 시간에 도착해야 하는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 누군가를 피할 수 없으라면 즐기라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을 즐길 수 있을 지 나는 의문이다. 그런 출근이 아니라, 나는 서두를 필요도 없는데, 신나는 마음에 페달을 출근길 보다 더 빠르게 돌아간다.
어디로 갈까. 그저 사람이 없는 쪽으로 가야지 싶어서 시내쪽이 아니라, 산청쪽 방향으로 달렸다. 남강의 아래쪽으로 아래쪽으로 달려간다. 이런 좋은 날씨에, 나만 자전거를 탈 리가 없다. 인사하며 지나가는 사람, 인사할까 고민하다 지나가는 사람, 인사하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 자전거 탄 사람들이 많다. 나는 빨라진 페달질 덕분에 "먼저 가겠습니다" 예의바르고 분명하게 말하고 다른 자전거를 지나간다. 그래봐야 시속 25킬로 정도 밖에 안되는 속도다. 늘 바람은 나를 향해 부는 것 같아서 고개를 숙인다. 목이 아픈 것 같으면 고개를 든다. 아, 이런 느낌으로 페달링 해야 하는 거야. 생각하면서, 아, 이런 페달링 느낌에 대해 글로 써야지. 생각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브롬톤만 타던 꼿꼿한 나의 몸은 이제 제법 숙여 자세에 적응하고 있다. 드롭바의 후드를 잡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는데, 내 몸이 조금씩 유연해지고 있거나, 자전거가 나를 위해 작아지고 있나 보다. 그러고 보니, 페달링에 대해서 만이 아니라, 피팅에 대해서도 글을 써야지 생각했다. '셀프 피팅에 필요한 것'이라고 제목도 정했다. 멍때리며 자전거 탈 때, 가장 바쁘게 생각들이 튀어 나온다. 중요하고 의미있지만, 시급하지 않은 것들이 이 틈에 흘러 나온다. 이런 생각을 더 하려면, 출근길은 더 여유있고 더 길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2021.08.08 - [일상사/자전거] - 제이미스 오로라 엘리트 드레스업 진행 중
'일상사 > 자전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는(buying) 인간이 되어 가는 중 (1) | 2021.11.25 |
---|---|
투어링 자전거 자출 준비 중 - 설리 프론트랙 (2) | 2021.11.13 |
새 자전거랑 친해지려 해맞이공원 가는 길 (4) | 2021.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