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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엄마의 초록이들, 차례없는 추석음식, 문방구와 엄빠의 목소리

엄마가 키우는 초록이


추석 연휴는 시작되었지만, 추석이 되기 전에 부산 집으로 왔다. 엄마는 오기 전날 전화를 해달라고 했다. 우리 오늘날에 맞춰서 음식을 하겠다고. 어제 엄마에게 전화를 했었고, 집에 들어서는데 기름 냄새가 가득했다. 우리 집에서는 차례를 지내지도 않는데, 엄마는 우리 먹이고, 싸서 보내려고 이렇게 음식을 했다. 아빠는 두부를 굽고 있었다.

엄마가 키우는 초록이들은 그 레퍼토리가 더 늘었다. 제법 나무 같아 보이는 녀석도 있다. 엄마의 고향은 강원도다. 어려서 일을 많이 해서 밭일이 싫었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일을 잘하고, 뭐든 잘 키운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이런 화초를 키우지 않았다. 직장에 다니며 딸 둘, 아들 하나 키우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하루는 고단 했을 테니. 어쩌면 조금은 여유가 늘어서 다 가능한 일이지만, 나는 이제 엄마 옆에 붙어사는 아들이 아니다. 자주 오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고, 아마 엄마는 나와 아이들이 자주 보고 싶을 것이다.


동그랑땡, 새우튀김, 고구마튀김, 오징어튀김

엄마는 음식솜씨가 좋다. 그런데도 유튜브로 틈만 나면 음식 관련 영상을 본다. 편하고 좋은 조리법 영상을 보고서는 아내에게 링크를 보낸 적도 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손을 씻고 오징어튀김, 새우튀김을 손에 쥐고 아내와 아이들을 먹인다.

“오징어는 껍질까지 벗겨서 더 부드럽다.”

오징어 튀김을 씹으면 껍질 때문에 오징어가 튀김옷을 홀딱 벗고 입 안으로 그냥 들어가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껍질이 없으니, 앞니로 한번 끊어무니 탁 끊긴다. 새우튀김은 겉이 빵가루로 되어 있어 아삭한 맛이 더 하다. 아주 맛있는 새우깡 맛이다. 새우깡은 맛있는 튀김의 향을 잘 살려낸 모양이다.


콩나물과 도자리나물

“콩나물을 너무 많이 주더라.”

시장에서 콩나물을 샀는데, 좀 많이 받아왔나 보다. 생으로 좀 줄까 하더니, 삶아서 풀이 죽으니 그냥 다 무쳐 버렸다. 콩나물 무침은 아삭하고, 도자리나물은 부드럽다.


고구마줄기무침

고구마 줄기에는 마늘을 잘 빻아 넣어 시원한 맛이다. 나는 약간 맵게 하는 걸 좋아하는데, 추석 음식이니 그냥 심심하게 만들었다. 저 큰 냄비에 했으니, 오늘은 가져갈 반찬이 많다. 엄마, 아빠는 집에서 엄마, 아빠를 위해서 반찬을 만드는 경우가 별로 없다. 나는 음식 사진을 찍어서 우리 가족 밴드에 올렸다. 누나와 동생은 엄지손가락을 들며, 좋아라 한다. 모두 모여 왁자하게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몸은 멀지만 마음만은 가깝게.’ 란 생각만 해도 역설이 아닌가.


아빠가 구운 두부



깻잎 안에 동그랑땡 소를 넣어 구웠다.


그냥 깻잎에 옷을 입혀 구운 게 아니라, 동그랑땡 소를 넣어서 구웠다. 깻잎의 강한 향은 죽고, 동그랑땡 소 덕분에 담백하다.

코로나라 부산으로 와도 밖으로 가서 놀 수가 없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따라 나가서 슈퍼마켓에서 ‘새콤돌콤’을 손에 가득 쥐고 왔다. 아들은 자꾸, 문구점에 가자고 한다.
“타투 스티커 사고 싶어, 아니면 포켓몬 카드 뽑고 싶어.”

또또문구사, 옛날 문방구



나는 낮잠을 한 숨 자고, 아이들을 태워 옛날 살던 동네로 문방구 탐방을 간다. 가게 안에서 파는 다양한(?) 제품 때문인지, 예전에 여쭤보니 가게 안 사진을 찍는 것은 좀 꺼려하셨다. 그래서 오늘은 밖에서 쳐다보며. 딸은 스티커를 열심히 스티커를 구경하고 이것저것 만져본다. 아들은 용, 전갈 등등 무서운 타투 스티커가 없다는 걸 알게 되자 포켓몬 카드를, 하나씩 주물럭 거리며 고른다. 이 가게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도 이 자리에 있었다. 주인아저씨가 같은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같지 않겠지?) 파는 물건이야 몇 가지 없지만, 대충이지만 빽빽하게 깔아놓은 물건을 보면, 옛날 기억이 떠오르고, 또 그런 옛날은 모두 좋았던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딸에게 부탁해서 내 사진도



딸은 얄궂은(?) 수첩, 스티커, 색종이를 샀다.(총 3000원), 아들은 자기 용돈으로 포켓몬카드를 몇 개나 샀고. 가게를 나와서 아들, 딸도 문구점 앞에 세우고 사진을 찍고, 나도 딸에게 부탁해서 사진을 찍었다. 날이 갈수록 사진으로나 영상으로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더 해진다.

오늘 어디선가 글을 읽다가, 부모님 목소리를 녹음해 놓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는 분들의 답글을 봤다. 그래, 그렇다. 나는 사춘기가 지나고 나도 모르게 성인이 되어 버렸을 때, 내 어릴 적 목소리가 궁금해졌다. 얼굴의 변화는 사진으로 남아 있어 그 사진으로 내 모습을 다시 구성해볼 수 있는데, 목소리는 그렇지 않았다. 아들이 아주 어릴 때는 에버노트를 한창 쓰던 때라, 녹음을 많이 해서 두고는 했다. 딸의 목소리는 많이 녹음해 두지 못했는데, 영상과 녹음된 음성은 어떤 차이가 있다.

오늘은 그래서 우리 아이들 밥을 차려주고 옆에서 밥 먹는 걸 지켜보는 엄마와 아빠를 영상으로 찍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든 김에, 추석에 내려오지 못하는 딸들에게 영상 인사라도 하라고 엄마와 아빠의 얼굴과 목소리를 담았다. 더 많은 기억은 더 많은 기록 덕분에 강화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한 해가 또 가고 있다. 나만 생각하던 때를 벗어나서, 내 주변 사람도 생각하게 되고부터는 늘 지나가는 시간이 아쉽다. 함부로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되는 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