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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관련

얘들아, 나 다른 학교 간다. (고등학교 교사의 전보)

공립교사들은 자리를 옮긴다. 한 학교에는 대개 5년까지 있을 수가 있다. 한 도시에 근무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그래서 5년간 한 학교에 근무를 다 채우는 것을 '학교 만기'라고 하고, 한 지역에서 보낼 수 있는 시한(진주와 창원은 8년, 그 외 지역은 10년)를 다 채우면 '지역 만기'라고 한다. 만기가 되면 다른 학교로 혹은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한다. 도시마다 특색이 있고 사람마다 선호하는 환경이 다를 수는 있지만, 인기 있는 지역이 있다. 진주와 창원을 8년 연한으로 정해준 것은 두 도시가 서부경남, 동부경남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수의 변화가 없다면, 교사의 수는 일정할테고, 이동할 시간이 되어 이동을 원하면 서로 순환하게 된다. 하지만, 학생의 수는 급감하고 있다. 그러면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줄어든다. 사람 수보다 모자란 의자를 두고 뱅글뱅글 돌다가 신호에 따라 앉는 게임을 생각해 보자. 앉지 못하는 사람이 술래가 되는데, 교사가 이동하는 경우 그 술래는 도시 밖으로 나가야 한다. 원치 않는 지역에, 예상 못한 학교에서 근무하게 된다. 갈등이 일어날 게 분명하고 그 갈등은 조정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이 비슷하기 때문에, 지역도 학교도 교사는 '지원'하게 된다. 근무하면서 얻은 '점수'를 가지고 줄을 세우고 이동하게 된다. 기본적인 점수는 근무지와 관련있다. 외진 곳에서 근무할수록 그 지역에서 받을 수 있는 '지역 점수'가 높다. 자신의 교육활동이나 공적으로 다른 가산점을 얻을 수도 있다. 영어성적, 부모 공양, 다자녀, 표창 등 제법 다양하지만, 그저 학교에서 수업 열심히 하고, 학생들 열심히 돌보면 누가 알아서 주는 점수는 아니다. 나는 이런 점수들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아서 지금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매번 학교를 옮길 때는 '특별전형'이라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옮겼다. 그래서 따로 모은 가산점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의 경쟁으로 학교를 옮긴 것.

 

뭐, 어디에든 경쟁이 있으니... 블라블라 ...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새로운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니 생각이 많아졌다. 무엇이 들어있을지 모르는 마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 기분이다.

 

새로운 학교에 가면 그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지 못해서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학교를 옮긴다는 것은 제법 급격한 변화다. 우리나라 법률이 정하는 대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다들 고만고만한 배경을 가진 교사들이 모여있지만, 학교마다 특징이 있다. 성적이 좋은 학교, 나쁜 학교 따위의 특징이 아니다. 경험하고 그 속에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있다. 교실에서의 수업은 혼자서 진행해야 하지만, 교실에 들어가기 전 모든 과정은 같은 교과의 다른 선생님들과, 다른 반 학급 담임선생님과, 다른 부서 선생님과의 협업을 통해 진행된다. 학생들의 분위기도 다양해서, 어떤 학교든 그 학교 학생들의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게 있다. 그건 그냥 말로 들어서 이해하거나 적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것도 겪어봐야 안다.

내 머릿 속

올 한 해의 경험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올해 나는 학교에서의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 '수업이 변해야 학교가 변한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수업만 변한다고' 학교가 변하는 것은 또 아니다. 교사는 더 많은 일을 하고 있고, 또 해내야 한다. 그래서 고민이다. 생각해야 할 변수가 너무 여럿이라 무엇부터 꺼내어 생각을 정리해야 할 지 모르겠다. 로또 번호는 어떻게 뽑는지 본 적이 없는데, 지금 내 머릿속은 '주택복권'에서 번호가 적힌 공이 투명한 구 안을 돌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하나를 우선 잡아내야 하는데, 너무 빠르게 돌고 있어 하나를 잡아채지 못한다.

 

어떤 학교든 결국 비슷한 부분은 있다. 대입제도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어떻게 하면 학생들 성적을 올릴지 고민한다. 결국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러한 태도는 평소의 생활 태도와 관련이 있다. 학생들의 좋은 생활습관을 위해서 어떻게 지도할 지 궁리한다. 학부모의 요구와 참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끌어낼지 고민하게 된다. 학생들도 달라지고 있고, 학생들 변화에 교사는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느 학교나 다 똑같다'라는 말도 맞는 말이기는 하다.

 

아마도 혹은 결국 다른 학교로 가기 위해 신청할 것이다.(이를 '내신서를 작성한다'라고 한다.) 그리고 이 지역의 다른 학교로 가게 되겠지. 어디로 가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참 어려워서 또 간절히 바래본다. 최선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겠지만, 세상에 그러기가 쉬운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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