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외면일기

빨간머리 앤은 괴로워

타츠루 2019. 4. 23. 14:05

 

수영을 마치고 오면 점심을 먹으면서 넷플릭스의 영상을 본다. 퍼니셔를 끝냈고, 겁쟁이 페달을 끝냈다. 지나친 액션이 등장하는 드라마나 그림이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은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맞다면 힘들지 않게 볼 수 있다. 오늘은 빨간 머리 앤을 틀었다. 시즌 1의 에피소드 1까지는 봤었다. 하지만 앤이 학교에 등교하면서부터 보기를 그만뒀다. 

앤이 부딪히게 될 문제들이 학교에서 일어날 일이라서, 아니면 앤이 너무나 착한 소녀라서, 모든 일에 너무나 열심히인 사람이라서, 이유를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빨간머리 앤은 보고 있기가 어렵다. 

너무 쉽게 빨간머리 앤에게 감정 이입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시를 읽으며 독백을 하고, 세상을 노래하는 아이. 그 아이가 사회로부터 받는 비난과 멸시는 너무나 부당하다. 그럼에도 지금의 우리도 그러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이나 규준(norm)이라는 것은 '정상의 범위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위험하지 않은가. 그 범주 안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이유는 거기에서 벗어나면 지탄받거나 무시되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야 온전하고 건강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고립되는 인간은 무엇이 원인이 되어 그 고립이 시작되든 그 고립 때문에 더 비인간화되거나 아프게 된다. 고립된 사람은 끌어내고, 고립될 위기에 처한 사람은 구해야 우리 사회는 건강해진다. '모든 것을 가진 능력 있는 나'조차도 나이가 들면 '젊은 세대'로부터 고립될 수도 있고, '건강한 사람들' 밖으로 나앉을 수도 있다. 

겁쟁이 페달을 보면서 새롭게 알게된 것이 있는 데, 로드 경주에서 '무리'가 가지는 힘이었다. '무리' 안에서 달리면 우선 바람의 저항을 덜 받기 때문에 힘을 들이지 않고 빠른 속도로 나갈 수가 있다. 하지만, 무리 뒤에 쳐지면 무리를 앞질러 가기는 어렵다. 무리에서 벗어나면 혼자 바람을 맞으며 페달을 굴려야 한다. 규준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세력을 만든 사람들이고 그 세력 덕분에 그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범위에서 '사회의 무리'가 형성된다. 여기서 뒤쳐지면 누구도 구해주지 않는다. 인생은 경주가 아닌데, 경주를 만들어 버린다. 도태된 사람들을 게으름을 비난받기도 한다. 튀는 인간의 위협을 무리는 용납하지 않는다. 

앞으로 빨간머리 앤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온전히 혼자가 아니라 친구와 가족이 있어서 그나마 괜찮은데, 너무나 많은 문제를 이 연약한 소녀가 헤쳐나가야 하는 걸 지켜보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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