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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나의 하루를 관장하는 신이여

9시 31분. 집이 엉망인 채로 커피를 간신히 내려서 식탁에 앉았다. 내 집중력은 딱 휴대폰 화면 크기만 하고 내 필력은 딱 접이식 키보드만 한 것 같다. 노트북을 꺼내면 또 ‘시간 죽이기’ 모드에 돌입하고 딱 이 모드가 좋다. 


딸 등원길에 아파트 상가 안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멘토스를 하나 샀다. 700원. 그 옆을 보니 멘토스 초코도 있다. 그렇다. 초코는 무조건 팔리니까. 하지만, 멘토스는 초코를 내놓으면 그 정체성을 잃게 되는 거 아닌가? 된다고 모든 걸 팔면, 뭐든 파는 가게가 된다. 아, 그것도 나쁠 건 없겠다 싶다. 딸은 그렇게 산 멘토스를 처음에는 그냥 집에 갖다 두라고 했다. ‘먹을 게 아니면 왜 샀어? 그냥 하나 먹고 가. 나머지는 집에 둘께.’ 하고는 입에 하나를 넣어줬다. 멘토스 한 알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딸은 0.5센티 정도 하늘로 솟아오른 것 같았다. 사람을 으쓱하게 하는 순간 정말 우리는 약간 떠오르지 않을까. 행복한 순간은 평소의 내 높이에서 약간 가라앉을 때도 있지만 대개 내가 있는 높이에서 더 높은 곳으로 뜀박질을 하거나 떠오르는 느낌이 있다. 웬일로 킥보드를 타고 갔는데, 덕분에 더 빠르게 유치원 문 앞에 도착했고, 딸은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먹을 것과 장난감은 유치원 출입금지’이다. 이렇게 룰을 따르는 딸이 고맙다. 하지만 나는 딸에게 ‘그냥 여기서 먹어봐.’했다. 딸은 조금 오물오물하더니 ‘안 되겠어.’ 하는 표정이다. “아빠한테 줘. 아빠가 먹을게.” 물티슈도 없고 그렇다고 길거리에 뱉을 수도 없다. 딸은 가벼운 마음으로 유치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 나에게 손을 한 번 흔들어줄 만큼의 여유는 생겼다. 딸에게서 받은 멘토스를 먹으며 걸어왔다. 

 


집은 엉망이다. 보통 때 같으면 로봇 청소기가 일을 마치고 충전하려고 다시 돌아가고 있어야 하고 나는 느긋하게 앉아 좀 멍때리거나, 휴대폰을 잡고 뭔가 찾아볼 게 없나 생각해볼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딸이 입고 갈 체육복이 덜 말라 있었고 나는 그걸 어떻게든 말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제습기 위에 체육복을 잘 널어놓고 체육복이 마를 때까지 딸의 등원을 늦출 수밖에 없었다. 

 


시간도 살아 있는 게 아닌지, 하루도 의식이 있는 게 아닌지, 아님 내가 너무 빈틈이 많은 건지 아이들이 일찍 일어나면 밥이 없거나, 밥 먹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서로 다투느라 등교, 등원 준비에 시간이 걸린다. 아이들은 늦게 일어나면 또 적당한 속도로 밥을 먹고 서로 다투지도 않는다. 아침에 아들 받아쓰기 한판 하고 있으면 딸은 혼자 잘 놀고, 아들을 보내고 나면 딸은 나에게 찰싹 달라붙는다.


오늘은 딸이 아내가 나가는 6시 30분에 일어나더니, 엄마가 가는 것을 보고 엄마 보고 싶다며 나에게 안겨왔다. 다시 눕히고 있다가 내가 다시 잠들었다. 왜 이렇게 무거워지나 싶어서 봤더니 아들도 내 옆으로 와서 눕는다. 딸이 깨워 일어나니 7시 20분. 부랴부랴 그제 사놓은 두부를 데치고 전자렌지로, 식판에 밥을 뜨고, 식판에 브로콜리, 두부, 베이컨 조금, 버섯볶음을 올리고 둘을 앉혔다. “늦게 일어났으니 빨리 먹어야 해.” 라며 딸의 입에 밥을 퍼넣고 나는 김치찌개 한 그릇을 떠 전자레인지에 2분 데워서 그 위에 밥을 턱 얹고 비벼서 먹는다. 딸은 브로콜리만 열심히 먹는다. “밥 먹어야지”하면 “먹고 있는데”한다. 


밥을 먹고 나면 아들은 혼자 준비한다. 8시가 되면 씻기 시작하고 10분이 되면 옷을 입는다. 빠진 게 없나 준비하고 학교에 들고 가야 할 것은 전날 밤 집 출입구에 둔다. 빠진 거 없이 모두 가지고 등교. 무전기를 들고 나가며 학교 들어갈 때쯤에는 다 왔다고 연락한다. “아들, 응답하라. 아빠, 오늘 도달 간다. 오버” “뭐라고?” 다른 말은 잘 알아들으면서도 좀 길어지면 자꾸 “잘 안 들려.” 한다. 이런. “그냥 잘하고 와. 오버.” 짧은 교실을 마치면 ‘***학생의 등교가 확인되었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가 온다. 


딸 양치질을 시키고 세수를 시킨다. 혼자서도 양치질을 잘 할 수 있지만, 이제 ‘할 수 있지만 장난치고 싶은 시기’에 왔다. 이 단계는 ‘혼자 할 수 있지만 누가 해주면 좋아’라고 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처음 숟가락을 들고 밥을 퍼먹을 때, 처음 걷기 시작했을 때, 처음 혼자 양치질을 시작했을 때, 딸은 스스로를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며, 내가 도와줄라 치면 내 손을 탁 쳐내며 “내가 할 거야.”했다. 양말도 혼자 신고, 바지도 혼자 입고. 한데, 요즘은 몸을 맡긴다. 하.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고 직접 하라고 가끔 울리기도 한다. 내가 해주며 타이르기도 한다. 아무튼 양치질을 하고 나와서 머리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묶지 않을 거라고. ‘다행이다.’ 나도 이제 제법(?) 머리를 묶는데, 유치원 선생님의 솜씨는 따라 할 수가 없다. 그냥 안 묶고 가면 선생님이 틈을 봐서 머리를 멋지게 땋아주신다. 머리 묶으며 등원 시간을 조정해보려고 했던 나의 계획은 실패. 


아직도 눅눅한 체육복을 가지고 거실로 나온다. 소매, 주머니, 허리 고무줄 부분은 아직 눅눅하다. 드라이기를 꺼내어 센 바람을 틀고 허리 춤에 드라이기 대가리를 넣고서는 양다리로 바람이 슝슝 잘 나가도록 한다. 뒤집어도 말리고 왼쪽 다리 쪽으로 바람을 넣기도 하고, 오른쪽 다리 쪽으로 바람을 넣기도 한다. 마르긴 했으되 옷이 좀 뜨끈하다. 딸이 입었던 칠부 내복을 벗기고 위에는 런닝을 입히고 옷을 입힌다. 세네 번 탈탈 털어서 열기를 좀 덜어낸다. 체육복 위에 무슨 재킷을 입고 갈 것이냐. 늘 하는 갈등이다. “이상해, 이상해” 고를 게 별로 없다. 바람막이를 찾아봐도 없다. 아내에게 문자가 왔지만, 그 문자로는 위치를 찾지 못한다. 조금 두껍지만 핑크색인 재킷을 입힌다. 그렇게 등원. 


그렇게 앉으면 9시 30분. 별 일 없으면9시 20분. 하늘은 나에게 딱 9시 20분 정도부터만 시간을 주고 싶은가 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싶다면 딜을 해야 한다. 무언가를 하지 않거나 미리 하거나. 나의 하루를 관장하는 신이 있는 게 아닌가. 신이여, 9시에 식탁에 앉아 저의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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