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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판 사나이 -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타츠루 2021. 11. 6. 21:22

그림자를 판 사나이


원제는 Peter Schlemihls wundersame Geschichte 페터 슐레밀의 신기한 이야기이다.
페터 슐레밀이라는 작중 화자가 샤미소(저자가 아델 베르트 폰 샤미소)에게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림자를 판 사나이로 알려져 있고, 이야기 속 가장 큰 사건은 역시나 그림자를 파는 데서 시작한다. 내가 읽은 책은 열림원에서 ‘이삭 줍기 환상문학’이라는 기획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이다. 그림자를 판다는 설정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끊임없이 금을 퍼낼 수 있는 주머니도 그렇고, 한 걸음에 7마일을 달리는 장화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장치다. 책을 읽는 내내 ‘그림자’가 ‘금화’를 통해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줄거리
어떤 어려움인지는 정확하게 알기 어려우나 슐레밀은 어려움이 있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부유한 귀족을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서 마술처럼 세상 온갖 물건을 꺼내어 대령하는 회색 옷을 입은 존재를 만난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그를 만나게 되고, 그림자를 파는 대신에 마르지 않는 금화가 담긴 주머니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림자가 사라지고 나서 그는 거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부정당한다. 슐레밀이 그림자가 없다는 걸 알게 되자마자 사람들은 재수 없다는 듯, 부정한 것을 보았다는 듯 자리를 피한다. 그는 오로지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하인 한 명 덕분에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 밝은 조명으로 모든 사람들의 그림자를 없앤 파티장에서만 그는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끊임없니 나오는 금으로 사람들의 호감을 산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림자가 없다는 것이 밝혀지고, 모두로부터 거부당한다. 자신에게 충성하던 하인에게 마지막 금 무더기를 두고 슐레밀은 사람의 세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고립된다. 그저 걷다 보니 장화가 헤져서 중고 장화를 하나 사는데, 그 신발을 신고 한 걸음에 7마일씩 걷게 된다. 그리고 자연을 탐구한다. 이제 회색 옷을 입은 존재는 그에게 다가와 그림자를 줄 테니, 죽고 나서의 영혼을 팔라고 한다.

이 책은 김현경 작가의 ‘사람, 장소, 환대’ 덕분에 읽게 되었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대접 받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 성실하게 다루고 있다. 몇 년 간 읽을 책 중 가장 좋은 책이었고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을 때 모두의 평이 좋았고, 함께 읽으면서 더 좋았다. 그 책을 끌고 가는 소재가 바로 그림자를 판 사나이였다. 저자는 ‘그림자’를 사람대접받을 수 있는 전제조건에 비유했다. 고로 어떻게 사람은 그림자를 얻게 되는가? 어떤 사람들이 그림자를 부여받지 못하는가로 논의를 이어간다.

친구여, 자네가 만약 사람들 가운데 살고 싶다면, 부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그림자를 중시하고 그다음에 돈을 중시하라고 가르쳐주게나. 물론 자네가 단지 자기 자신, 그리고 더 나은 자기 자신과 함께 살고 싶다면, 자네에게는 그 어떤 충고도 필요 없겠지만.


책의 마지막 부분이다. 돈을 위해서 우리가 약간의 예상 못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기꺼이 희생할 수도 있는 그림자는 무엇일까? 늘 그것과 함께 할 때는 그 존재를 모르다가, 없어지면 눈에 도드라져 도저히 그것의 부재를 숨기고 살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상실하게 되면, 억만금을 주고라도 다시 찾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쩜 그건 그다지 신경 써야 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자기 자신, 그리고 더 나은 자기 자신과 함께 살고 싶다면..” 다른 충고 따위는 필요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 나 자신과 더 나은 내 자신과 함께 하는 삶은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삶이 아닐까. 오로지 어제의 나와 다른 오늘의 나. 오늘의 나 덕분에 달라질 내일의 나. 사람들 사이에서 살더라도,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마음껏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과연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삶’이라는 게 가능한가에 대해서 의심부터 해야 하겠지만, 삶의 목표가 그것이라면 여전히 그림자나 돈에 대한 걱정이 그다지 커지지 않지 않을까.

작품은 다 읽었는데, 그 뒤의 해설이 길다. 이걸 읽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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