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외면일기

2025년 1월 15일. 지하서재로 송무교수님 뵈러.

타츠루 2025. 1. 29. 12:17

송무 교수님은 특별한 날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연락을 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했던 게 언제였을까? 같이 잠실 롯데월드에 놀러 갔었을 때일 수도 있고, 포항으로 여행을 갔었을 때일 수도 있다. 아니면 연구실에서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지나가는 말로 하셨던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왜 그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해마다 맞이하는 설날, 추석, 스승의 날을 맞이하면서도 '교수님께는 반드시 연락할 필요는 없겠지'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근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그렇다면 연락을 했어야 했는데, 특별한 날이 아닌 날이라고 달리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연락을 해야 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가 있고, 연락을 하지 않는 데에 별 다른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그냥 '사는 게 바빠서'였겠지. 인간은 얼마나 긴급해 보이는 일에 휘둘리기 쉬운가.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 지나가면 잡을 수 없는 시간과 기회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우리는 잠시 지난 후의 시간에 매달려 정신을 빼앗기기 일쑤다. 그러니 '늘 바쁘면' 결국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뜻이다. 

교수님이,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한번 보러 온 건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아닙니다.'라고 말했는데, 길게 이유를 덧붙이지 못했다. 그냥 '그런 생각도 잠시 하기는 했습니다.'라고 말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씀에 교수님이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생각하고 골몰하다 보면 대화의 전개가 자연스럽기 어렵다. 그저 정직할 수 있는 게 가장 좋다. 예상한 답만 내놓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과 굳이 더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을까. 그냥 거울에 대고 이야기를 하면 된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우연히 펼친 책에서 재미를 발견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것처럼,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시작한 대화에서 기대 밖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데 있다. 이야기의 진행이 뻔한데, 구태여 그 이야기의 진행을 기다릴 필요가 무엇이 있을까? 술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지루함은 어쩌면 내 시간의 소중함에 대한 자각일 수 있다. 늘 새로운 걸 맞이할 수 없지만, 구태의연한 걸 참고 있을 필요도 없다.

아무튼 나는 교수님의 연세를 생각하게 되었고, 때마침 일주일 중 하루 정도는 시간을 뺄 수 있었다.(학교 일이 뭐가 그리 바쁘다고...) 작년까지는 하루도 학교를 벗어나기 힘들 만큼 바빴고 여유도 없었다. 상황이 무르익어 교수님을 찾아뵐 시간이 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교수님을 언젠가 찾아뵈어야 하는데, 계속 미루고 있었던 나'를 떠올리고, '이제는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쓰다 보니 그 답이 더 맞을 것 같다.

내 주변의 상황은 시간이 지나면서 시시때때로 변한다. 나만 나이 드는 게 아니라, 아이들도 훌쩍 크고, 부모님도 노쇠하고 있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많아졌고, 해야 하는 것도 많아졌다. 일상은 바쁘지만, 많은 것들에 익숙하거나 능숙해졌고, 그러니 틈을 내려면 틈을 낼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송무 교수님을 만나러 갔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아니지만 중요한 일을 하기로 했다. 

진주에서 눈을 보며 출발

교수님과 약속을 하자마자 바로 고속버스를 예매했고 진주에서 6시 30분에 출발했고, 서울에서는 20시에 진주로 출발하는 편을 예매했다. 서울까지는 3시간 50분 정도 걸렸다. 책도 읽고 영상도 잠시 보고. 눈을 감고 쉬기도 하고. 버스 전용차로를 달리니 너무나 빨랐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교수님 댁까지 갔다. 143번 버스를 타면 교수님댁 근처까지 갈 수 있었다. 일부러 버스를 탔다. 지하철은 빠르고 정확하지만, 밖을 볼 수가 없다. 잠시라도 서울 구경하려면 버스를 타는 게 좋겠다. 갈아타지 않아도 되니 이동의 난이도도 낮았다. 지하철을 잘못 갈아타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타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북한산보국문역 근처에 내렸다. 빨간 목도리를 한 교수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올겨울 들어 거의 첫 한파가 닥친다고 했지만, 그 한파가 아직 한반도에 상륙하기 전이었다. 나는 지나치게 추위를 대비해서인지 전혀 춥지 않았다. 혹시나 너무 추우면 교수님이 나와 계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너무 춥지 않았고 걷기에도 좋았다.

교수님은 하루 시간을 내어 와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서울까지 그리고 교수님 댁까지 거의 5시간 정도 걸렸는데, 전혀 아깝지 않았다. 게다가 버스를 타고 이동하니 운전을 해서 서울에 가는 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편했다. 이동의 편이 덕분에 서울에 도착해서도 피곤하지 않았다. 이후의 시간은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거의 이야기를 하면서 보냈다. 처음으로 교수님의 아내분도 뵙고, 너무나 쉽고 빠르게 나는 편안한 마음이 되어 버렸다. 

교수님은 손녀 걱정을 하셨고, 아직도 좋은 학교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등등에 몰입해야 하는 세태를 마뜩잖게 생각하셨다. 인공지능이 몇 사람 분의 지식 노동자를 대신하게 될 세상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교수님은 고민은 하시되 지나치게 걱정하거나 완벽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점심을 대접 받고 가지고 간 화장품 세트를 드리고, 2024년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책인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도 선물해 드렸다. 교수님께서는 새롭게 번역한 햄릿과 달과 6펜스를 주셨다. 요즘에는 젊고 유능한 번역가가 많아서 본인은 번역 작업을 이제는 하지 않으신다고 했다.

건평 17평인가 되는 땅덩이에 4층 정도로 지은 교수님의 집구경도 했다. 지하에는 지하서재라는 바가 있고 위로는 아들 내외 집, 아내분 방, 거실 공간, 교수님 공간, 그리고 다락방이 있었다. 교수님이 혼자 사용하는 공간에서는 눈덥힌 북한산을 볼 수 있었다. 차 한 잔 두고 책을 읽으면 고즈넉하기까지 할 것 같았다. 구조상 마치 B-17의 선회 포탑 기관총 사수(Ball Turret Gunner)자리처럼 유리로 둘러 쌓인 구조라 건물에서 한 움큼 빗겨선 구조도 좋았다.

지하서재
교수님의 책이 자리잡은 지하서재
지하서재에서 나와 교수님

책 이야기도 하고, 영화 이야기도 하고, 영어 교육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정릉천을 걷고 천변풍경이라는 재미있는 동네 카페에도 갔다. 교수님은 보여주고 싶은 곳이 더 있었지만, 때마침 문이 닫혀 있었다. 교수님 댁도 조용했고 정릉천도 조용했다. 서울의 복잡함에서 완전히 벗어난 곳은 아니었지만, 골목길에 차가 적었고, 소음도 적었다. 그런 입지라 지하서재 바 운영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하셨다. 내가 서울에 있었다면 사람들을 몰고 몇 번 찾아갔을 터인데. 교수님이 진행하는 시 공부나 독서 모임에도 갔을 텐데 아쉽다.

저녁까지 얻어먹고 버스를 타러 오는 길에 교수님은 지하철역까지 바래다 주셨다. 나는 아직 서울 지하철이 어렵고 지도앱을 잘 살펴보며 노선을 옮겨 탔다.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Perfect Days'를 봤다. 혼자 여행 다녀오며 보기에 좋은 영화였다. 집에 돌아오니 12시가 넘었다. 충분히 알찬 하루를 보낸 시간. 다음에는 언제 찾아가서 뵐까. 특별하지 않은 때 무심하게 들를 날을 손꼽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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