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외면일기

휴대폰 없이 한 달을 살아야 한다면.. #글요일

타츠루 2020. 7. 4. 09:29

Photo by Gilles Lambert on Unsplash

 

아들이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충전기에 연결된 휴대폰의 배터리 상태를 확인한다. 100퍼센트인데, 날씨 좀 확인하고 엄마한테 문자 보내고 나면 2% 떨어지고, 3% 떨어지는 걸 자기 몸에서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느끼나 보다.

아들은 코로나 사태 덕분에 휴대폰을 얻게 되었다. 내가 아이패드에 넣어 쓰려고 유심을 하나 개통했는데, 코로나가 닥치면서 혼자 집에 있게 된 아들에게 그 유심을 줬다. 예전에 쓰던 휴대폰을 꺼내어 유심을 넣어줬다. 아들이 연락하는 사람은 나와 아내 뿐이다.

매일 매일 배경 화면을 바꾸고, 매일 매일 화면에 앱을 정리한다. 지금도 좋아하는 '브롤스타즈'라는 게임이 주로 배경화면이 된다. 휴대폰 화면 캡쳐 하는 걸 가르쳐줬더니 너무나 좋아하면서 게임 화면을 캡쳐해서 바탕화면으로 만들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가장 즐겨 보는 '베어 그릴스'도 배경화면의 주인공이다.

나는 아이가 휴대폰 쓰는 것에 별다른 제재를 가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아침마다 매달려 있는 걸 보면 저걸 말려야 하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말리지는 않는다. 어차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게임은 대개 정해진 시간만 한다. 아들에게 휴대폰은 새로운 세계로 연결되는 창이기도 하고, 마음대로 손에 쥘 수 있는 '제법 어른스러운' 장난감이다. 그 기분을 십분 이해한다.

아들이 무슨 링거에 매달리듯 충전기에 연결된 휴대폰을 쥐고 있는 걸 보면서 나도 정말로 열심히 휴대폰을 들여다 보던 때가 생각했다. 이렇게 이야기 하니 마치 오래전 같지만, 1, 2년 전이다. 나는 나의 생각과 기분에도 관심이 많지만, 다른 사람의 그것에도 관심이 많다. 정말로 휴대폰과 모바일 세상이 원하는 인간형이 아닌가. 나는 휴대폰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 혹은 친근한 소수의 사람들의 소식을 탐독하고 통독하고 때론 정독했다. 그렇게 휴대폰을 쓴 세월이 벌써 18년 정도는 되었구나.

인터넷 요금제가 100메가 바이트에 1만원이 넘을 때부터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시작했다. 윈도우 모바일 기반의 휴대폰으로 트위터를 했다. 쓸 만 한 이야기가 없었으니 거의 읽기만 했다. 차라리 그때 책을 읽었던라면... 이라고 후회 하지는 않는다. 온라인의 글읽기는 책읽기와 별로 공통점이 없다. 모든 글을 읽은 행위와 시간을 책을 읽는 시간으로 교환될 수는 없다. 트위터 이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은 정말 나에게는 물같은 공간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작은 물고기가 되고. 물을 어색하게 느끼거나 물의 존재에 대해 새삼스럽게 생각하는 물고기가 없는 것처럼, 나는 물 속에 잠겨 일상을 보냈다.

휴대폰이 잠시 고장난다면, 휴대폰을 대신할 기계를 찾겠지. 휴대폰을 잃어버린다면, 당장 휴대폰을 사겠지. 하지만, 나는 물고기가 아니고, 페이스북은 내게 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데 오래 걸릴까? 그렇지 않다.

나이 들어가며 좋은 점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이 조금씩 더 분명해지는 데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다른 사람과의 차이에 그렇게 겁을 내지 않아도 된다. 내 마음은 언제고 사춘기 때로, 대학생 때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다시 내 몸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내가 '마치 고등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은 정말 그 기분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기분을 '기억'하는 것 뿐이다. 다른 사람의 관심과 사랑, 다른 사람과 비슷해 보이고 싶은 욕심은 사춘기의 나의 많은 부분을 지배했던 마음이겠다. 인스타그램에서 페이스북에서 다른 사람의 관심을 기대하지만, 안다. 사춘기의 나는 이미 사라졌고, 나는 다른 사람의 관심이 없어도 혼자 충분히 충만할 수 있다는 것을.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는 내게 물도 땅도 아니다. 휴대폰은 내 산소통도 내 밥줄도 아니다.

디톡스는 해본 적이 없지만, deSNS는 늘 진행 중이다. 그 강도를 높이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내게 휴대폰은 일상을 살고 업무를 하는 데 더 없이 좋은 도구이기는 하지만, 더 많은 부분, SNS를 배회하는 데 사용되니, 휴대폰을 잃어도 사실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을 지도 모르겠다.

학교에 오니 휴대폰을 볼 시간이 너무나 줄었다. 휴대폰 대신에, 사람을 훨씬 더 많이 본다. 학교에는 사람이 넘친다. 내 관심이 비와 같다면, 학교에는 매마른 땅이 넘친다. 땅 속에 움튼 씨앗이 넘친다. 나는 매일 100명 정도의 사람을 만난다. 수업하러 들어가면 적어도 25명의 사람에게 최소 30분 이상 이야기 한다. 적어도 5명 이상의 학생의 이름을 부르고 질문하고 대화를 나눈다. 15명 이상과는 눈을 마주친다. 교실을 나오면 50명 이상과 눈으로 목소리로 인사한다.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가 가득하니, 휴대폰 볼 일이 적다. 휴대폰을 볼 틈이 없다.

글쎄다. 상상이란 것도 어떤 여지가 있어야 하는데. 휴대폰을 대신할 휴대폰보다 더 뛰어나고 중독성 강한 기계 혹은 어떤 물체가 나오기 전이라면 휴대폰은 내 곁에 있지 않을까. 그런 기계 혹은 물체가 나오기 전에, 그저 휴대폰 따위는 신경쓰지 않을 수 있도록 사람 사이에서 바쁘면 좋겠다. 물론, 실물의 사람 사이에서 피곤이 깊어ㅚ하고 지면, 휴대폰을 열어 배회하고 싶은 마음이 분명 커질 것 같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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