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학교 관련

학생이라는 초록이들

매일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하고 있다. 아침에 세수하고 나서 면도하듯, 잘 마른 빨래를 곱게 개어 놓듯 누가 하라는 사람이 없어도 내가 해야 해서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매일 글이 술술 나오는 것은 아니다. 술술 나오는 글이라도 술술 읽히지도 않는다. ‘누가 읽고 뭐라 해도 괜찮다. 잘 쓴 글을 빚으려는 게 아니라, 일단 무조건 글을 빚어가며 잘 빚어가겠다 노력해야지’ 라는 다짐으로 글을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줄을 쓰고 그 다음 줄을 이어가기가 힘들 때가 있다. 그러면 책을 꺼내 들게 되는데, 그런 책 중 하나가 ‘글쓰기의 최전선’이다. 글쓰기를 가르치며 자기 글쓰기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고 고민한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나도 무엇에 대해서도 글을 일단 쓰기 시작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본 한 줄의 글이 어떤 글을 써야 할 지 방향을 잡아주기도 한다.

오늘 본 문장은 “작가는 삶에 대한 옹호자이다”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은 학생이다. 나는 어떻게 학생들의 삶에 대한 옹호자가 될 수 있을까.

판단하지 않고 일단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게 가능할까. 세상의 만물은 내가 없어도 존재하기는 한다. 이 아이패드, 내 스마트폰, 교실의 흑판, 책상, 모두 아마 내가 한 순간에 없어져도 그대로겠지. 하지만 아무도 봐주지 않는 다면, 어떠한 것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사춘기 시절,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 집을 나서기 전에 거울을 들여다 보고, 콧 잔등에 난 여드름을 어떻게 가려볼까 고민한다. 내가 스스로 기댈만큼 자라나고 튼튼한 정체감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학교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지만, 모두 충분히 시선을 받지는 못한다. 햇볕 한 줄기를 받기 위해 몸을 뒤틀고 목을 길게 빼는 식물들을 보라. 자라는 학생들도 그렇다. 나는 햇님이 아니니, 내가 줄 수 있는 시선이란 늘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전등만한 불빛이라도 학생들에게 뿌리려고 노력을 할 수 있다.

그 학생은 복도쪽 제일 뒷 자리에 앉아 있다. 코로나 시대, 교실에 짝지 자리는 없다. 늘 시험을 앞두고 있는 것처럼 학생들은 한 줄로 앉아 있다. 마스크를 쓴 채 옆에 있는 학생과 대화하기는 어렵고, 앞뒤로 이야기하려면 한 명은 꽈배기처럼 몸을 돌려야 한다. 이래저리 불편하니 그냥 혼자가 편하다. 혼자라 좋기도 하고, 혼자라 나쁘기도 하다.

교실 맨 구석에 자리 잡은 이 학생은 자리가 너무 마음에 든단다. 내 수업 시간에 한번 엎드렸고, 그 전날 새벽에 늦게 잠에 들어서 그랬다고 했다. 가만 보고 있으면 웃기도 하는데, 대개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다. 일을 하다가 교무실을 벗어나 교직원용 화장실로 향하는 길에 교실 뒷문이 빼꼼히 열려 있다. 늘 그 문은 닫혀 있는데, 오늘은 열려 있다. 한 줄씩 자리를 잡다 보니, 맨 구석 자리 옆 문을 열고 다니면 그 자리에 앉은 학생이 너무 불편할 것 같아서 문을 잠궈두는데, 오늘은 열려 있다. 가끔 크게 숨을 쉬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이던 그 학생의 옆 얼굴이 보인다. 문을 열었으니, 그 작은 틈으로 바람이 들어갈 것 같다. 막힌 코가 뚫리듯 상쾌함을 느낄까?

초록이

늘 학생들의 안색을 살핀다. 이럴 때보면, 휴직하는 동안 식물을 키웠던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식물에게 중요한 것은 적당한 햇볕, 물, 적당한 습도, 통풍이다. 아침마다 일어나 식물의 안색을 살핀다. 본디 말을 하지 못하는 식물이니, 잎의 색깔이나 그 처짐을 본다. 식물을 사면서 물을 얼마마다 한번 줘야 하나요?라고 물었는데, 보름에 한 번이라고 해서, 달력에 표시하고 보름이 될 때마다 물을 줄 수는 없다. 물이 필요할 때 줘야 하는데, 그걸 판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매일 식물의 변화를 살피는 일이다. 볕이 좋은 자리에 앉혀두고, 돌려가며 볕을 잘 쬐도록 도와야 한다. 학생들은 버둥거리고 있지만, 말을 하지 않을 때가 많다. 관찰하고 반응하는 방법이 우선이다. 말을 걸어보지만 돌아오는 답이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거기에 있고, 나의 말을 듣고 있고, 나의 눈을 보고 있다.

학교에서의 생활이란 인생 전체의 여정을 생각하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이 시기에 학교에서 얻어가야 할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 아닐까. 외부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성장하려는 학생의 기운도 필요하다. 누군가는 쉽게 자라는 것 같고, 누군가는 빨리 자라는 것 같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는 걸 학생들은 돌아보기 힘들어 할 때가 있다.

내가 만난 모든 학생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기억으로 남는다. 모두들 각자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그 이야기 속에서 나는 어떤 도움이 되고 있을까. 적어도 내 인생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모든 학생들은 각자 한 꼭지를 담당하고 있다.

'학교 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인정보보호법과 교사 처벌  (1) 2021.04.21
없애자, 개근상  (6) 2021.04.12
학생의 연애는 환영 받나?  (10) 2021.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