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사/외면일기

학교 종이 ...

clock in an airport

오랜만에 학교에 종소리를 실컷 들었다. 지난주에는 학교에 종이 울리지 않았다. 방송 장비가 고장이 나서 아예 기기를 교체해야 한다고 했었다. 그래서 나흘 정도 종없이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불편했다. 8시 30분 아침 조례 시간임을 알리는 종부터 치지 않으니, 학생들은 제시간에 교실에 가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 늦게 들어오고, 선생님도 수업 시간에 좀 늦기도 한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서야, 학교에 꼭 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 치지 않으니 시계를 자꾸 본다. 평소에도 수업시간에 딱 맞춰 들어가거나 종이 울리면 곧바로 교실로 가려고 애쓴다. 1분씩 늦어도 50번이면 50분이다. 학생에게도 수업 시간에 맞춰 들어오라고 말하니, 교사도 맞춰 들어가야 한다. 종이 치지 않으니 더 신경을 쓰게 된다. 그리고 마치는 시간도 지켜주려고 한다. 교실에 시계가 있지만, 모두가 시계만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니니 수업을 늦게 마칠 수도 있다. 제시간에 들어가서 제시간에 마쳐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자꾸 시간을 쳐다봐야 해서 불편하다고 했다. 휴대폰이 있으니 시계를 차는 학생이 많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걔중 시계를 차고 있는 학생들은 모두 애플 워치나 갤럭시 워치다. 시계라기보다는 또 다른 전자기기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그런 고가의 시계를 차고 있지 않은 학생들은 빼면 시계를 차고 있는 학생은 거의 없다. 교실에 시계가 있지만, 자주 쳐다보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종이 울리지 않으니 학교가 두 배 정도 조용해진 것 같다. 과장은 맞다. 학교는 늘 학생들의 목소리, 발소리로 시끄럽다. 하지만, 우리를 모두 지배하던 종소리가 사라지고, 그만큼 학교는 느슨해졌다.

종소리가 명령에 복종하는 노동자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 시대에 그런 비판 조차 진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소리에 우리가 길들여져있었고, 신호가 되어야 몸을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종이 없으면, 시간을 더 인식한다. 미리 준비하고 시간에 다가간다. 그리고 조용하다.

서로의 편의를 위해서, 정해진 시간에 많은 사람이 이동하기 위해서 종을 만들어 냈을 것이고, 충실하게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오로지 의 신호에 따르게 되면, 우리는 그 소리에 얽매이지 않는가. 종이 치지 않는데, 미리 시계를 보고, 준비하고, 1분 정도 수업에 일찍 들어가고 2분 정도 수업을 늦게 마치는 것도 괜찮았다. 빡빡한 두루마리 휴지에 손가락을 지그시 찔러 넣어 구멍을 만들고 약간 기분 좋아진 딱 그런 기분이다. 다시 종이 고장 나도, 나는 좋겠다.

'일상사 > 외면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세표 선생님  (2) 2021.09.10
책이냐 글이냐  (4) 2021.08.25
태풍 오마이스는 지나가고  (4) 2021.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