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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장세표 선생님

오늘에 이르러서야 학교 생활이 참으로 편안하다. 마치 모두 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처럼 학교 생활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수업이 아주 줄어들거나, 급여가 막 올라서 그런 게 아니다. 특별히 상황이 달라진 게 없는데도 학교 생활이 편안하고 즐겁다.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와서 잠시 쉬다가 샤워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올해처럼 많은 학생들에게 사랑받은 게 처음이고, 올해처럼 많은 학생들을 사랑하게 된 게 처음인 것 같다. 그래서 학교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학교를 옮기거나 새로운 학년을 맡게 되면, 학교 분위기학년 분위기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다. 일종의 스테레오타이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도 전혀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대세가 어떻게 움직이느냐는 학생 개개인에게도 교사 개개인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어떤 학교에서든 적어도 나는 들어가기 싫은 학급이 있었다. 되도록이면 상대하고 싶은 학생도 있었다. 이유는 다양한데, 결국 학교 생활에 얼마나 충실한가, 수업에는 열심히 참여하는 가 등등 바른 학생이란 관점에서 봤을 때 그렇지 않은 학생이 많거나, 바른이라는 기준을 좀 심하게 벗어나는 경우에 그랬다. 나는 그런 학생들을 좋아하거나 보살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년의 학생 모두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만나면 반갑고, 누구에게도 인상 쓸 일이 없고, 소리 높여 화를 낼 일도 없다. 자주 약속을 안 지키는 학생도 있고, 가끔 실망시키는 학생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걱정하는 마음으로 좋은 말로만 이야기하게 된다. 이런 내 모습이 새롭다.

나는 무뚝뚝한 듯, 뒤에서 챙겨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내게 그런 선생님이 계셨었고, 그 선생님과의 추억이나 기억은 내가 교사가 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의 성함은 장세표.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여쭙지 않고 여기에 이름을 쓸 수가 있다. 여기에 써서 남기면, 작가가 자신의 책을 남기듯, 선생님의 이름이 좀 더 오래 기록될 것 같다.

딱 체육선생님답게 얼굴이 까무잡잡했고, 키는 180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3학년 때 내 담임 선생님이셨다. 늘 살갑게 정답게 이야기하는 편은 아니셨다. 교실에 들어와서는 고함도 지르고 잘못된 게 있는 호되게 야단도 치고, 매도 들고, 기합도 주셨다. 하지만, 교무실에서 만나면 아주 조곤조곤 나를 감싸듯 말을 해주셨다. 어려운 우리 집 가정 형편도 살펴주시고, 아마도 선생님 덕분에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장학금이란 게 별로 없었고, 받을 만큼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은 우리 동네에 많았다.

나는 장세표 선생님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는 되지 못했다. 나는 장세표 선생님 같은 사람이 아니고, 나는 나다운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데 오래 걸렸고, 어떻게 나다운 선생님이 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아 헤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오늘 "교사로서의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모두 장세표 선생님의 영향 덕분이다.

아마도 중학교 3학년 체육시간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지나가는 말로, "공부 잘하는 놈들은 안 찾아온다. 그 놈들은 지가 잘라서 그렇게 잘 된 줄 알아요."라고 하셨다. "나는 꼭 선생님을 찾아뵈어야지."라고 그때 다짐했다. 졸업 후에는 한두 번 전화를 드렸던 것 같다. 사범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선생님 이름을 찾아 학교로 간 적이 있다. 미리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선생님이 근무하시는 학교에 갔을 때, 선생님은 이미 퇴근하신 후였다. 출장을 가셨다가 바로 퇴근을 하셨는지, 아니면 그날따라 일찍 퇴근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전화로 간단히 인사는 드렸지만, "다시 찾아뵙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몇 해 후 전해듣게 되었다. 장세표 선생님이 돌아가셨다고. 친구한테 전해 들었지만, 어떤 이유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분명히 돌아가셨다는 것만 들었다. 아마 지금의 나보다 더 젊지 않으셨을까.

내가 보았던 선생님은 그때 이미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알고 계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선생님처럼 되고 싶었다. 선생님은 어떠셨을까. 어떤 확신이나 기준을 가지고 학생을 대하셨던 것일까. 알 수가 없다. 그저 나도 내 길을 찾는 수밖에 없다.

오늘 한 학생이 내 얼굴을 간단히 그려주면서, "선생님은 웃는 상"이라 좋다고 했다. 그런가? 몇 해전만 해도 나는 학교에서 웃는 상인 사람은 아니었다. 소복소복 쌓여온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많은 학생들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꽤 긴 시간 동안의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그 연습이 끝날리가 없지만, 오늘은 제법 편안하다. 그래서 장세표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때 한번 더 찾아갔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늘 "제가 이룬 게 제가 잘라서가 아니라는 거"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장세표 선생님 부고

글을 쓰고 구글에서 장세표선생님을 검색하니 부고를 알리는 오래된 인터넷 게시판 글이 있다. 선생님 반가워요. 편히 잘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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