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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태풍 오마이스는 지나가고

태풍 오마이스는 지나가고..

'내일은 자전거 타고 출근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 게 어제다. 비가 많이 온데도 기껏해야 내 출근길을 걱정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이기적인 인간인가 싶은 생각도 잠시 했다. 그래도 금세 너무 비가 오지 말아야 할 텐데 하며, 농사짓는 분, 저지대나 산지 근처에 사는 분들 걱정을 했다. 이 나이쯤 되면, 예전보다 쉽게 누군가를 걱정하게 되는 것 같다. 걱정이라기보다는 '염려'가 더 맞는 말이려나.

어젯밤, 물을 쏟아내는 것 같은 비를 아파트 7층에서 내려다보다가, 그나마 열려 있던 문을 다 닫았다. 거실문 닫고, 안방 밖에 있는 베란다 창문을 닫았다. 이중창의 밀폐는 대단하구나. 소음도 소리도 없다. 밖에 내리는 비는 소리 없이 끝없이 움직이는 gif 이미지 같다.

진주는 비가 많이 오면 강변 수위로 금방 확인할 수가 있다. 강변을 끼고 산책로가 있는데 쉬이 잠긴다. 그런 때 강변에서 자전거라도 타면, 물이 찰싹 거리는 소리가 마치 밤바다 해변에서 파도를 피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나라에 크고 작은 태풍이 피해를 끼친 적이 있지만, 요즘에는 다행이 다수의 이재민이 생기는 일은 적어졌다. 국민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자주 집이 잠기고 가게가 잠겨서 집을 잃은 '수해민' 소식을 볼 수 있었다. 작은 방에 앉아 9시 뉴스를 보면서, 나는 속으로 '참 다행이다. 우리 집은 멀쩡해서.'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린이들에게 재해나 위협은 언제나 즉각적인 위협으로 느껴진다.

89년 7월 29일 태풍 주디 관련 기사

내가 기억 속 큰 비와 태풍은 아마도 1989년 7월 28일에 우리나라에 상륙한 태풍 주디가 아닐까 싶다. 부모님은 늘 맞벌이를 하셨고, 아빠는 자주 늦었고 엄마는 가끔 늦었다. 그날은 정말 비가 많이 왔는데, 나는 우산을 들고 엄마를 마중 나갔다. 버스 정류장까지 한참 걸어갔다. 나는 분명 엄마를 걱정하고 있었고, 비가 많이 와서 발목까지 잠기는 데도 겁은 나지 않았다. 그 당시 태풍이 오거나 장마철이 되면 부산뉴스에서는 늘 '사상공단' 이야기가 나왔다. 자주 잠기고 피해가 계속되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사상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 학장이었고 저지대는 사정이 딱히 다르지도 않았다. 하수구에서 물이 넘치는 일은 잦았고, 우리 동네에 있던 재래시장인 '엄궁시장'은 하나의 물길이 되기도 했다.

엄마를 기다리는다가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빗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슬리퍼였다. 예전 기억에는 내 슬리퍼가 떠내려간 것 같았는데, 그럴리는 없을 것 같다. 그 긴 길을 슬리퍼 없이 되돌아 걸어왔다면 그 기억은 고통스럽고 힘겨워 잊혀지지 않을 텐데 그런 기억이 없다. 그때의 나는 엄마를 만났을까?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나는 집으로 왔던 것 같다. 사상공단에서 일하던 아빠도, 더 멀리서 일하던 엄마도 아무 일 없이 집으로 왔다.

자연의 힘은 어쩔 수 없다지만, 늘 이전보다 더 강력한 폭우나 태풍이 오는 게 아니라면, 비슷한 지역의 비슷한 피해는 막아낼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어디선가 누군가 최선을 다 하고 있을거라 믿지만, 누구도 다치는 사람 없고, 누구도 보금자리를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30년 전 신문을 보니 태풍으로 20명이 사망이나 실종되었단다. 지금은 좀 사정이 나아진 거겠지?

내일은 자전거 타고 출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