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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교통사고는 피해자의 탓인가

2020년 한 해 동안 일어난 교통사고가 1,247,623건이다. 사망자수는 3,081명, 부상자 수는 2,061,788명. (근거 TAAS 교통사고 분석 시스템 통계) 다른 건 무시하고 대략 매일 3,418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꼴이다. 운전을 할 때마다 1/3418의 주인공을 뽑는 뽑기에 참여하는 것과 같구나. 오늘은 내가 당첨.

부산 집에 한번 오라는 엄마의 문자를 받고 나는 아침도 먹지 않고, (늦게 일어났기 때문에) 혼자 부산으로 가려고 차를 몰고 나섰다. 차들이 가득한 도로를 달리는데, 이미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자전거 출퇴근을 하면서 즐거움이나 체력 같은 양적 보상을 받기도 하지만, 차를 탔을 때 받게 되는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사고난 니로

두 개 차로를 한번에 옮기는 차, 운전 중에 휴대폰을 하는 사람, 시내 주행에서 칼치기하는 인간… 그리고 내가 당한 사고는 진주 공단로터리에서 일어났다. 고속도로 방면으로 직진, 좌회전하면 충무공동 방면이다. 1차로는 좌회전, 2차로는 직좌회전, 3, 4차로는 직진이다. 나는 2차로로 가고 있었다. 이곳은 50km 속도 단속구간이라 나도 그 속도를 지키고 주행했다. 정차 후 주행이 아니라, 직진 중에 신호를 받았기 때문에 정속 주행 중이었다. 그런데, 내가 직진을 하는데, 1차로에서 좌회전을 하던 차가 좀 더 일찍 가려고 내가 주행하는 차선으로 끼어들었다. 그 차가 먼저 끼어들었다면 내가 그 차의 우측이나 후미를 추돌했을 텐데 그렇지는 않았다. 내가 빠져나가는 시점에 그 차를 오른쪽으로 나오려고 했고, 내 차의 왼쪽을 받았다. 나는 그 차 옆을 지나면서, 그 차의 움직임이 이상해서 리어뷰미러로 보는데, 내 차를 향해 방향이 꺾이는 게 보였다. 그리고 쿵.

다행히 차가 심하게 파손된 것은 아니지만, 좌측 앞문, 뒷문, 뒤쪽 펜더가 긁히고 움푹 들어갔다. 나는 부산에 가던 길이었고, 주행에는 문제가 없어서 연락처 받고 사진 찍고, 보험사에 접수하고 일단 부산으로 갔다. 당장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그냥 부산으로 갔다.

분명 내 잘못이 아닌데도, 부산까지 가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다 들었다. 집에서 좀 더 천천히 나올 걸, 그 차선으로 가지 않을 걸… 마치 잠깐만 피했으면 그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처럼 나는 상상하기 시작했다.

부산 가서 엄마, 아빠한테는 말하지 않고 점심 먹고 반찬을 싸서 진주로 돌아왔다. 아내에게도 집에 와서야 그 이야기를 했다. 일단 아내가 출퇴근용으로 쓰는 차라, 렌터카를 신청했다. 수리는 기아 오토큐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일요일이라 내일 맡겨야 한다. 렌터카는 그랜저와 코나가 가능했다. 아무래도 아내가 운전하기에는 좀 작은 차가 편할 것 같아서. 차를 받고는 아내 출근길을 따라 시범주행을 해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원치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피해를 받는 게 사고라면, 이것은 다른 범죄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 내가 피해자가 되는 범죄라면, 나는 그런 피해를 의도하지 않는데도 당할 수가 있다.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에라도 얼마나 나를 자책하게 될까. 갑자기 깜빡이도 없이 끼어드는 차를 피하지 못했던 것처럼, 어떤 피해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나가지 말 걸, 내가 다른 차선으로 갈 걸 후회되는 것을 보면, 사람은 상처나 피해에 대해서 반드시 자신의 책임을 묻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럴 때에는 내 선택이 이런 결정을 불러왔다라고 믿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다.

사기를 당했다면, 사기꾼을 욕해야 하고, 폭행을 당했다면 때린 놈을 욕해야 하고, 성범죄에 노출되었다면 그 범인에게 모든 죄를 물어야 하는데, 사람은 쉽게 그렇게 되지 않는 것 같다. 가끔 연예인 누구누구나 사기를 당하고….로 시작하는 기사를 볼 때가 있는데, 사기꾼 잡고 얼른 털고 일어나면 될 것을 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누구도 그러기 쉽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내가 멍청해서 사기를 당했다’라고 자책하게 되지 않을까. 피해가 크고 상처가 깊을수록 자책도 크고 절망도 심하겠구나.

어떤 사건이나 범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할 것은 피해자가 갖는 그 자책이 아닐까. 그걸 누가 구해줄 수 있을까. 피해가의 피해는 우선 심리적인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게 해결되어야, 부가적인 피해(물질적 피해)에 대한 보상이 의의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