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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아내가 죽고 집을 부수다 | 넷플릭스 영화 | Demolition | 제이크 질렌할

demolition

본 적이 있는데도, 기억이 안 나는 영화가 있다. 넷플릭스에서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의 한 시즌이 끝나버려서, 이제 나는 넷플릭스를 구독해지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좋아하는 배우의 영화를 좀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엊그제 제이크 질렌할소스코드라는 영화를 봤다. 양자영학을 기반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8분이고, 죽은 사람의 뇌를 그 경로로 사용한다. 아무튼, 사람을 구하고, 일종의 평행우주에서 살게 되는 이야기인데, 같은 사건이 반복되는 가운데 문제를 해결하는 영화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엣지 오브 투모로우 아니었나? 아무튼, 과정도 결과도 괜찮은 영화였다. 그래서 제이크 질렌할의 영화를 하나 더 찾아봤다.

제목은 데몰리션. 당장 실버스타 스텔론의 데몰리션맨이 생각나는데. 전혀 비슷하지 않다. 게다가 나는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 속에 중요한 장치가 등장하는 게 회전목마인데, 그것도 본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하면서도, 보는 와중에도 이 영화가 어떤 주제를 담고 있는 지 전혀 기억해 내지 못했다. 한번 보고 그 작품의 모든 내용을 아는 것처럼 책도 한 번 읽으면 쿨(?)하게 던져놓고, 영화도 한 번 보고 지나가 버린다. 이미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까마득해지는 것을 보면, 내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있다면 두 번은 봐야 하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이 이 영화를 어떻게 평했는 지 모르겠다. 주제가 뭐라고 했는 지 모르겠다. 모르고 쓰니,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일 뿐임을 밝혀둔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Davis가 자신의 아내를 끊임없이 떠올리는 영화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었다고 고백하면서도 아내가 없어지고 나서는 원래 살던 대로 살지를 못한다. 무엇인가 엇나갔을 때, 해결하는 방법은 조목조목 뜯어 보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고, 그는 많은 것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조립하는 법은 없다.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지 않으니 이는 파괴에 그칠 뿐이다. 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를 정신병자 취급한다. 그리고 아내를 잃은 이라는 사정을 듣고 나서는 그를 그냥 둔다.

하지만, 그와 진심으로 소통하는 사람이 둘 있다.

이제부터 스포일러 있음. 주의하시오.

아내의 죽음을 확인하지 못하고, 그저 들어서 알게 된다. Davis는 전혀 외상이 없다. 병원에서 출출함을 느낀 그는 자판기로 가서 M&M을 하나 뽑으려고 하는데, 걸려서 나오지 않는다. 병원직원은 그 자판기는 챔피온이라는 회사에서 관리하다고 했다. 연락처를 찍어온 Davis는 아내의 장례식날 밤 장인 집에 모인 사람들을 피해 방으로 가서 그 회사에 편지를 쓴다. 그 편지는 간략한 항의서신이 아니다. 고해성사를 하듯, 정신과 상담의에게 상담을 하듯 자신의 기분과 상황을 토로한다. 그리고 편지는 계속 된다. 그러다가 그 회사의 고객센터 직원이라는 여자로부터 밤늦은 시간 전화를 받는다.

Karen은 마약을 한다. 늘 대마초를 입에 달고 산다. 그녀는 챔피온사의 사장과 같이 산다. 그녀에게는 아들이 있는데, 아들 Chris는 학교에 잘 가지 않는다. 어리지만 담배를 입에 달고 산다. 자신이 동성애자는 아닐까 의심한다. 아무도 믿지 못하며 fuck을 입에 달고 산다.

Davis는 Karen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아주 어린 아이들이 노는 것처럼, 해변으로 가서 같이 뛰어다니고, 밤에는 그림자 놀이를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Chris는 처음에 Davis를 그저 엄마의 새 애인 정도로 생각했지만, Davis의 거침없는 솔직함, 상대를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태도에 마음을 연다. 그리고 Davis가 자기 집을 부술 때는 함께 해머질을 한다.

Davis 주변에는 그럴 듯한 삶을 사는 것 같은 사람이 여럿 보인다. 돈이 많고, 말쑥하게 차려입고 파티를 즐기는 고생한 사람들. 하지만, 그때 그런 사람들은 Davis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한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었다고 말했던 Davis 만이 얼마나 아내를 사랑했고, 어떻게 아내를 더 사랑하지 못했는 지에 대해 씹고 또 씹는다.

파괴는 새로운 관계나 앞으로의 한걸음을 위한 토대가 된다. Davis는 회사 화장실 문을 다 떼어내고, 물이 똑똑 떠어지는 집의 냉장고를 다 분해해내고, 2000달러짜리 커피 머신을 분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 지 찾아내지 못한다. 그리고 집을 부수기 시작한다. 해머로 벽을 부수고 창문을 깨고 불도저로 집을 밀어 버린다.

그렇게 오랜 시간 깨부수고 나서야 그는 아침에 일어나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조깅을 한다. 예전에는 5시 30분에 일어나던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7시 30분에 일어나고, 빈틈없이 양복을 차례 입는 게 아니라 공사장에서나 어울리는 작업복을 입는다.

거의 마지막에 Chris는 Davis에게 폭발물로 건물을 해체하는 장면을 선사한다. 그리고 Davis는 그때 밝게 웃는다. 장인어른을 찾아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내를 위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Davis와 그의 장인은 해변에 다시 설치된 회전목마에 올라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면 늘 그렇게 되는데, 어제도 이 영화를 보면서 자주 멈췄다. 멈추고 나가서 유튜브를 괜히 뒤지고, 잠시 책을 읽다가 다시 영화로 돌아왔다. 어떤 점에서 가슴이 아팠는 지 모르겠는데, 영화를 쭉 이어 볼 수가 없었다.

어떤 영화는 두 사람이 사랑에 이르는 순간을 보여주기 위해서 2시간을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정황을 만들어 간다. 하지만, 이 영화는 더 이상 같이 사랑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다.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편의 이야기다. 결혼이라는 관계가 갑작스럽게 깨어졌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 게 정상적인 반응일까. 슬퍼하고 눈물 흘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슬픔을 이야기하고, 며칠 혹은 몇주 일상에서 벗어나 있다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면 되는 것일까? Davis처럼 알 수 없는 거슬림 때문에 그걸 찾는 과정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은 아닐까.

방황하는 Karen과 Chris에게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Davis. 내 옆에 있는 사람이라면 도무지 나도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저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지 않고 듣기만 해야 할 때도 있겠다 생각을 했다. 내 잘못을 콕집어 나를 바꾸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아닐까. 만약 그런 사람이 죽기라도 한다면, 나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내게 여전히 고맙고 도움이 되는 사람은, 나를 판단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처럼, 그저 내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사람은 아닐까.

넷필릭스 구독은 아마도 제이크 질렌할의 영화를 다 보고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