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는 작은 도시다. 진주에는 동만 있다. 구는 없다. 진주는 좁은 도시다 아침에 초전동에서 만난 사람을 저녁에 평거동에서도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얼마전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앞에 고구마를 파는 트럭 장수 아저씨가 왔다. 아내도 아이들도 - 나만 빼고 - 고구마를 좋아하고 잘 먹는 탓에 슬리퍼를 끌고 나가서 샀다. 우리 집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면 잘 보였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사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아저씨는 사가는 사람들에게 덤으로 고구마를 몇 개씩 떠 끼워줬다. 내려가 보니, 맛도 볼 수 있게 익힌 고구마를 작게 썰어 놓았다.
“아저씨, 위에서 보고 잘 팔리길래 왔어요.” (아저씨가 몇 개 더 넣어준다.)
“많이 더 넣어주시는 것도 보고 왔습니다.”
“많이 파세요.”
그렇게 아저씨는 점심때쯤 시작한 장사를 해가 지고도 한참 지나서까지 계속했다. 다 팔고 갔을까? 창 밖을 내다보며, 진주에서 유명한(이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진주 아지메 까페에서 유명한) 트럭장수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팔천순대였던 것 같다. 그리고 요즘에는 꽃을 싣고 다니면서 팔고 다니는 아저씨도 인기가 있다고.
우리 어릴 적에는 정말 뭘 실고 다니면서 파는 아저씨가 많았던 것 같다. 계절 과일은 모두 트럭에서 살 수 있었다. 수박 장수가 오면, 아저씨는 예의 그 능숙한 칼질로 수박 위에 삼각형으로 칼을 찔러 넣어 맛을 볼 수 있게 해줬다. 그렇게 잘라 먹는 게 특히나 맛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마트에 직접 가는 일도 없지만, 마트에서 가지런히 썰어 놓은 것과는 분명 다른 맛이다. 참외, 자두, 포도 등등. 야채 장수도, 다라이 장수도 있었다.
오늘 학교를 마치고 차를 몰고 나오는데, 괜시리 늘 다니던 방향이 아닌 길로 가고 싶어졌다. 그렇게 내려오는 데, 작은 흰색 트럭이 있다. 어떤 여자분이 꽃을 사가는 데, 신문지에 그냥 싸여 있다. 차를 세우고 다가갔다. 오늘 딸이 퇴원한 날이라, 왠지 집에 꽃을 사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수고했고, 딸도 수고했다. 꽃 한 다발이라면 모두의 기분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래도 아내한테 들었던 그 꽃트럭 같았다. 아마도 다마트 흰색 트럭인 것 같았다. 트럭 안은 나무를 덧대어 삭막한 쇠 느낌이 없었다. 꽃은 종류별로 모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떻게 파세요?”
“포장은 안되구요, 그냥 다발로 팝니다.”
올망졸망 작은 봉우리로 맺힌 장미를 샀다. 아저씨가 이름을 말해줬는데, 기억하지 못한다. 꽃을 사면서, 제법 유명하신 꽃장수 아니시냐 물으며, 얼마전 아내와 트럭에 꽃 파는 분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하니, 자기가 맞을 거란다. 작은 트럭이었지만, 제로페이, 카드 결제까지 다 된다. 책을 파는 사람에 대해 갖게 되는 환상이나 기대보다 꽃을 파는 사람에 대해 갖게 되는 환상이나 기대가 더 크지 않을까. 함부로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평할 수 없지만, 매일 꽃을 보는 일이라니, 익숙해져서 무뎌 진다고 해도, 그럼에도 제법 괜찮은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살아있는 생명이며 금방 시들어 버리니 잘 파는 수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리라.
물론 일곱 살 딸을 꽃으로만 축하할 수는 없다. 나라문구에 들러서 슬라임을 샀다. 아들도 섭섭해서 토미카도 한 대 샀다. 이제 슬라임은 유행이 다 지난 듯 하지만, 우리 딸은 지금이 한창이다. 집에 와서 꽃을 꺼냈을 때 좋아하기는 했지만, 슬라임을 꺼내자 아빠 최고라는 얼굴이다. 며칠 만에 가족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니 그저 행복하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쉬는 데, 나만 들을 수 있는 먼데소리가 들린다. ‘찹쌀떠억’. 딸에게 들리나 물어도 안 들린단다. 아들이 태권도에 다녀오고, 그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진다. 이제는 다 들린다. “찹쌀떠억, 망개떠억” 아들이 사먹고 싶다고 엄마한테 돈을 받아 나간다. “그럼, 아빠가 저 아저씨랑 사진이라도 찍어줄께.” 하고 옷을 갈아 입고 나서는데, 아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내려가니 벌써 찹쌀떡은 샀다. 아저씨에게(라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나보다는 젋은 것 같더라) 같이 사진 좀 찍어도 되나요? 흔히 보기가 어려워서. 라고 묻고 사진을 찍었다.
교련복 같은 윗도리에, 옛날 교복모자를 쓰고, 이름은 모르겠지만, 돌리면 소리가 나는 무언가를 쥐고 아저씨는 소리를 지른다. 왼쪽 어개에는 종이와 테이프를 바른, 분명히 떡이 들어 있을, 아이스박스를 지고 있다. 무거운 걸 지고 긴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찹쌀떡을 외치는데, 그 소리가 참 우렁차다. 나는 또 멋대로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생각하는데, 아무튼 좋은 소리를 들려주니 좋더라.
아들은 그렇게 사온 찹쌀떡이 너무 맛있다며 연거푸 몇 개를 집어 먹는다.
지금 시간은 8시 56분. 찹쌀떡 소리는 사라지고, 아파트 뒷편 작은 개울에서부터 개구리 소리가 엄청 들려온다. 세상 모든 곳이 평화롭진 않을 텐데, 오늘 여기 진주의 한 구석에는 평화가 깃들어 있다. 우리집만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개구리들도, 찹쌀떡 아저씨도, 꽃트럭 아저씨도, 고구마트럭 아저씨도, 다른 진주 사람들도, 다른 대한민국 사람들도, 다른 지구사람들도, (저 멀리 우주인들도) 오늘 밤 평화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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