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더욱 방과후 수업을 열심히 해야합죠.
학교에는 수많은 공문이 온다. 그렇다고 모든 교사가 모든 공문을 읽지는 않는다. 공람이라는 항목이 있다. 학교로 온 수많은 공문은 예전에는 대개 교감선생님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서 각 업무로 지정되었다. 마치 폴더와 같은 온라인 상의 문서함이 있어서, 내 업무에 해당하는 공문은 내가 접수하여야 한다. 최근에는 교무행정전담주무관이 있는 경우가 많다. 아주 오래전에도 교무실에서 갖은 잡무를 하는 분이 있기는 했다. 그때와 지금의 주무관은 비슷한 듯하지만, 제법 많이 다르다. 아무튼 주무관이 학교의 업무분장을 보고 공문을 배당한다. 그리고 공문을 접수한 교사는 모든 교사가 읽고 앍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공문은 공람을 시킬 수 있다. 그러면, 교사는 교무행정시스템으로 들어가서 자신에게 공람된 공문을 확인할 수 있다.
얼마전 공람 문서함을 보는데, 방과후수업 관련 공문이 와 있었다. 대개 년초에 교육청에서 보내주는 방과후 학교 운영에 대한 지침 이후로는 공문이 없는 편인데, 2학기 전면등교가 되면서 새롭게 안내할 게 있어서 보냈나 하고 열었다. 핵심은 전면 등교를 한다면, 방과후 수업이 코로나 이전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활성화 시킬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방과후 학교는 같은 명칭을 쓰기는 하지만, 그 모습이 많이 다르다. 초등학교의 경우, 다양한 비교과 과목을, 학교밖 강사님들이 와서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방과후 학교는 일종의 돌봄 기능까지 한다. 고등학교의 경우는 교과중심(국,영,수,과)으로 이뤄지며 해당 교과교사가 지도한다.
방과후 학교 활성화에 대해서 교육청의 의견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초등학교이 경우 특히 방과후 수업이 줄줄이 취소되었고, 방과후 수업에 수입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 강사분들의 생계는 분명히 위협 받았다. 방과후 수업을 활성화 시키면 이 분들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학력저하에 대한 걱정이 대단하다. 아직은 위드 코로나에 돌입하지도 않았지만, 일단 사는 사람은 살고 보자라는 심정이랄까, 일단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기 시작하자 학력이 학교를 지배하는 키워드가 된다.
학생들이 학교에 전면 등교하기만 해도 학력이 높아질 거라 예상한다. 온라인 수업 기간 동안 공부가 되지 않는 것은, 학생들의 집중력이 약해서도 아니고, 선생님들이 모두 실시간 수업을 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저 ‘집’이라는 공간은 ‘학교’가 제공하는 것을 모두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또래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수업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휴대폰은 따로 보관하고, 시간맞춰 일어나서 학교에 오는 지 확인한다. 수업의 모습이 어떻든 다양한 지적 영역으로 학생들을 초대한다. 음악도 듣고, 미술도 하고, 체육도 한다. 조금 졸린다고 해서 수업 시간에 잠들어 버리는 학생은 별로 없다. 또래 사이의 압력이 작용한다. 학교와 교실은 공적공간임을 희미하게라도 확인한다. 대개 일관된 규칙과 규정이 있고, 이를 따르기를 강제받는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집과는 분명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고, 좀 더 알아들을 수 있다.
학생들의 학력이 중요하지만, 전체 등교를 시작하자 마자, 아니 시작하기도 전부터 학력 향상만 거의 유일한 목표처럼 말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프다. 코로나 시대의 수업은 어떠한가? 블랜디드 수업 따위의 있어 보이는 외래어를 사용하면서, 새로운 수업의 시대가 열린 것처럼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블랜디드 수업이란 용어는 코로나 이전에도 있었다. 내가 학부에서 공부할 때 배웠으니 아주 오랜 개념이다. 적절한 IT 기술을 전통적인 수업 방식과 섞는 것을 그리 부른다. 다양한 수업 형태의 한 가지일 뿐, 화이자나 모더나처럼 코로나에 대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코로나 시대, 학생들은 대개 한 줄로 앉아 있다. 2m, 1.5m 간격을 지키기 힘든 교실에서 그나마 가장 멀리 떨어져 앉을 수 있는 방법이 시험대형이다. 그렇게 앉은 학생들은 서로 대화가 어렵다. 공문에서 적시하는 바, 되도록 교실 이동 수업도 하지 않도록 권하고 있다. 이동 수업을 할 경우, 하나의 의자와 책상을 여러 학생이 돌아가며 사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실환경에서 어떤 수업이 가능할까. 얼마전까지 유행했던 하브루타니, 배움중심 수업이니 모두 학생들의 활동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들 섬처럼 앉아 있는 상태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마스크도 쓰고 있어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학생의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수업에 들어가는 선생님들은 모두 학력 향상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학생이 삶을 살아가는 데 어떤 도움이 될 지를 고민한다. 한데, 마치 꼬끼오하고 울면 새벽이 올 것처럼, 학력향상 주문만 넣으니 속상하고 갑갑하다. 나만 모르는 것인가? 더 다양한 수업 방식에 대한 충분한 자료나 지원이 제공되고 있는가? 방역 때문에 가끔 점심도 거르며 급식지도 하는 선생님들의 짐을 좀 덜어줄 노력은 하고 있는가.
투닥투닥. 불만으로 끝나버리는 글이 되었다. 주문하지 않아도 수업은 늘 고민한다. 교실에 들어가 학생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공문이 아니고, 나, 교사다.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고민에 대해서 같은 주문만 들어오니 갑갑하다. 내일도 학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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