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관련

학생들을 위한 필사집 제작기 | 우리는 이미 쓴다

타츠루 2021. 7. 15. 21:11

대개 모든 모험은 내 작은 경험과 또 작은 의지에서 비롯된다. 다른 경험을 한 사람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모험은 시작된다.
높은 산을 오르고, 먼 바다를 항해 하는 것만이 모험이 아니다. 해보지 못한 일에 뛰어드는 일, 그건 모두 ‘얼마간의’ 모험이라 할 수 있다.

필사를 해본 적이 있었고, 학생들과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생각은 혼자만 생각해서는 ‘괜찮은 생각’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른 여러 생각에 파묻혀 그냥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 생각을 구조하려고 국어 선생님 한 분에게 아이디어를 얘기했다.

학생들에게 좋을 작품을 고르고, 필사를 다 하면 선물도 주고, 생활기록부에 쓰려고 합니다. 어떨까요?
선생님은 ‘우리 시’도 넣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어시를 넣고, 번역시를 넣고, 영어시를 넣고. 아, 학교에 특색 사업비가 있으면 그것으로 제대로 된 책을 만들면 어떨까? 필사집이라고, 시와 노트가 같이 붙어 있는 형식의 책도 많으니 그렇게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



그렇게 우리는 책을 만들기로 했다. 관련 부서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께도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들의 찬조작품, 교장선생님의 여는 글도 받았다. 시를 열심히 고르고, 제목도 궁리했다. 출판사로 가서, 제작 의도를 설명하고 기본적인 구성을 정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매주 출판사로 가서 디자인 시안을 보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서 한 달만에 책이 완성되었다. 1, 2학년 학생들에게는 모두 나누어 주고, 담임 선생님들에게는 모두 책을 드렸다. 필요하다는 분이 계시면 책을 드렸다.

제작을 시작하면서는 학생들 시험이 끝나고 나서 바로 받을 수 있도록 재빨리 만들고 싶었다. 그 계획보다는 약간 늦었지만, 그래도 아주 빠르게 작업했다. 내가 열심히 한 것은 아니고, 국어선생님이 정말 열심히 해주셨다. 그리고 완성된 책을 드디어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이러이러해서 만들었으니, 하루에 한 두개씩 필사해보고, 나한테나 국어선생님에게 가지고 오라고. 과제가 아니지만, 학생들 대부분은 열심히 책을 뒤적여 보고, 선생님들의 작품도 보고, 시도 읽어보았다. 한번 읽고 이해되는 시는 아니었고, 한번에 해석이 되는 영어시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학생들은 정성껏 필사를 하더라. 그 모습에 놀라고 보기 좋아서 학생들에게 허락을 구하고 사진도 좀 찍었다. 몇 몇 학생은 벌써 필사를 다 해버렸다.

모여서 필사하는 학생


자신의 글을 쓰는 것도 분명 의미있는 일이지만, 좋은 글을 따라 써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좋아하는 그림을 기름종이(나는 미농지라고 불렀었는데)를 대고 베껴 그린 적이 있지 않나. 그렇게 얻은 그림도 마치 내가 그린 그림 같다. 마음에 드는 그림을 따라그리는 것처럼, 마음에 드는 시를 따라 쓴다.

학생의 필사


어제는 내가 아는 지인 몇 분에게도 책을 드렸다. 글쓰기를 위한 목적으로 모였으니, 분명 좋아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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