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건 참 싱거운 일이다. 시간의 경계란 인간이 만든 것인데, 거기에 두는 의미가 내가 체감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 해를 보내는 행사를 거하게 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의식을 함으로써 새해에 대한 기대는 고조된다. 해맞이를 갔던 것은 고등학생 때와 대학생 때가 아니었던가. 친구들과 몰려가서 새해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해를 기다리던 우리는 서로를 바다에 밀어넣었다. (고등햑생은 그래도 된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하기 좋은 일은 무엇일까. 떡국을 먹어야 했지만, 그건 내일로 미뤘다. 우리집 떡국 당번은 아내인데, 어제 코로나 백신 3차를 맞고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어묵과 무를 끓인 육수에 중면을 넣은 국수를 끓였다. 요즘에 하는 음식마다 일단 아내가 잘 먹고 아이들도 먹어주니 나는 바짝 자신감이 차 있다.
다시, 새해 처음으로 해야 할 일로 돌아와야 한다. 아침에 잠을 깨고 휴대폰 날씨앱을 보니 영하 8도다. 자전거를 타면 시속 20킬로에 육박하고, 덕분에 체감온도는 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코로나 덕분에 띄엄띄엄 듬성듬성 모이는 모임이지만, 마음 속에서는 한번도 그만둔 적이 없다. 사람이 많이 모이지 못해도, 나는 군불을 지키는 사람의 마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게 될 날을 준비하고 있다. 6시 30분부터 나갈 채비를 하면서, 늘 새벽커피 모임에 와주는 분에게 연락을 했다. 약속은 미리 잡아야 하는 것이지만, 번개처럼 요청한다.
커피드립백을 준비하고,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담고, 커피를 내릴 때 쓸 머그도 준비한다. 파타고니아 캐필란 에어 바지를 이너로 입고 그 위에 방풍 바지를 입는다. 캐필란 에어 크루를 상의 이너로 입고, R1 풀오버를 입고, 나노에어 후드 재킷을 입고, 바람막이를 챙기고 털모자도 챙기고, 방한 장갑도 준비한다.
좀 늦은 것 같아서 조금 경쾌하게 페달질을 하니 금방 몸이 데워진다. 좀 더 열심히 달리면 땀이 날 기세라 조절하며 달린다. 7시 30분이면 해가 뜬다는데, 이미 해가 밝아온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일출을 보기에 좋은 장소는 아니다. 애초 일출에 별 관심이 없다. 좋은 사람 만나서 커피를 마신다. 이게 새해 첫 날 하기 좋은 일이다. 혹은 해야 하는 일이다.
만나서 커피를 준비한다. 앉아 있으니 엉덩이부터 얼어붙는 것 같아서 앉았다 섰다 이야기를 하며 커피로 몸을 녹인다. 해야 할 이야기는 많지 않지만, 할 이야기는 충분하다. 새해의 시작이 좋다. 별다른 목적 없이 커피만 나누는 이 #새벽커피 모임을 할 수 있었으니까.
올해는 작년보다 더 나아지지 않을까. 그럴 것 같다.
2020년은 코로나에 강타 당하고 넋을 놓았다면, 21년에는 기대와 실망에 당하며 혼란스러웠다. 이제는 기대하는 법, 너무 실망하지 않는 법, 그러면서 해야 할 일을 찾는 법에 익숙해지지 않았을까. 사람들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그 기대만큼은 당췌 채우기 어렵지만, 그래도 작은 불씨를 가지고 기다린다. 불씨만 지키면 큰 불을 만들 수 있다.
밖에서 노는 영상 업로드를 위해 묵혀둔 채널 하나를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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